[인문자의 글로벌 아티스트, 진솔 이야기 ② | 인간·문화·자연] 말러의 부활에서 요코하마의 새벽으로 - 지휘자 진솔, 일본에서 다시 쓰는 교향곡의 미래
일본 타쿠티카트 오케스트라 제4회 정기연주회 《말러 5.0》 지휘… 니이가키 다카시 위촉 신작 세계초연과 말러 교향곡 제5번을 잇는 새로운 실험
'Ewiger Gesang(영원한 노래)' - 10년의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음악은 계속된다... 한일 음악가들이 함께 묻는 클래식의 내일
2026년 10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의 교향곡 제2번 《부활》이 울려 퍼졌다. 지휘대에 선 진솔은 그날 자신이 10년 동안 걸어온 길의 한 고비를 넘어섰다. 스물아홉 살에 시작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프로젝트가 마침내 완결된 것이다. 한 사람의 꿈이 수많은 연주자의 노력과 만나 이루어낸 결실이었다. 우리는 진솔을 이 시대의 작은 영웅이라고 불렀다. 위대한 예술은 하루의 천재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자신의 꿈을 배반하지 않는 인간의 성실함 속에서 탄생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날 공연에는 특별한 부제가 붙어 있었다. 독일어로 ‘영원한 노래’를 뜻하는 ‘Ewiger Gesang’이었다. 말러리안이 10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청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교향곡 전곡 연주라는 하나의 프로젝트는 끝나지만, 음악을 향한 인간의 노래는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이다. 완성은 곧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마지막 음표는 다음 음악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사진=진솔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4/552779-26fvic8/20261024101127347dedw.png)
이 대목에서 누구든 흥미로운 질문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 말러의 교향곡을 10년 동안 연구하고 연주해 온 지휘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다시 말러를 지휘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활동 무대를 해외로 넓히는 일일까. 아니면 말러라는 한 작곡가를 통해 서로 다른 두 나라의 음악가들이 새로운 예술적 질문을 던지는 일일까.
이번 요코하마 공연을 이해하는 열쇠는 후자에 있다.
말러 교향곡 제5번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작품이다.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해 거대한 음악적 갈등을 통과하고, 유명한 제4악장 아다지에토를 거쳐 마지막 론도 피날레로 나아간다. 특히 현악기와 하프가 만들어내는 아다지에토의 섬세한 아름다움은 말러의 음악 가운데서도 널리 사랑받는다. 영화와 대중문화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것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유명한 선율을 기억하면서도 그 음악이 어디에서 왔고, 작곡가의 정신세계가 어떤 변화를 거쳐 그곳에 도달했는지는 놓치기 쉽다. 한 곡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만 그 곡이 탄생하기까지의 긴 예술적 여정을 읽어내는 데는 인색한 것이다.
일본의 음악 제작자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공연을 구상했다.
말러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하기 전에 제1번부터 제4번까지의 음악적 세계를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들려주자는 발상이었다. 청중이 제5번을 단독으로 듣는 대신, 그 음악에 이르기까지 말러가 걸어온 길을 압축적으로 경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음악으로 만든 사람이 일본 작곡가 니이가키 다카시다. 그는 타쿠티카트의 위촉을 받아 《말러 5.0》을 작곡했다. 작곡가는 이 작품을 제5번에 앞서는 일종의 ‘제0악장’으로 설명한다. 기존 교향곡 앞에 새로운 입구를 만드는 셈이다. 물론 말러가 남긴 교향곡 제5번에 실제로 악장을 추가한다는 뜻은 아니다. 니이가키가 새롭게 작곡한 독립적인 작품을 통해 말러 제5번을 듣는 또 하나의 길을 열겠다는 창작적 발상이다.
이 발상은 단순한 편곡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원작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열고, 과거의 음악을 오늘의 청중에게 다시 살아 있는 질문으로 제시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니이가키가 직접 쓴 작품 해설을 읽어보면 그 구상이 더욱 흥미롭다. 《말러 5.0》은 예상과 달리 교향곡 제1번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먼저 제2번 《부활》의 마지막 악장 도입부가 등장한다. 그 압도적인 관현악의 울림을 지나 제1번부터 제4번까지의 주요 장면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작품은 거기서 순순히 끝나지 않는다. 제4번의 마지막으로 향하는 듯하던 음악이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말러의 선율뿐 아니라 다른 작곡가들의 음악적 기억까지 뒤섞이며 시간의 질서가 흔들린다. 낮은 도(C)음이 길게 지속되는 가운데 음악은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그 끝에서 니이가키가 불러오는 것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여섯 개의 피아노 소품》 작품번호 19 가운데 제6곡의 첫 화음이다. 이 소품은 쇤베르크가 말러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과 연결해 해석되는 작품이다. 니이가키는 이 화음을 통해 낮은 도(C)를 이명동음인 올림시(B♯)로 새롭게 읽는 음악적 전환을 설명한다. 그리고 음악은 멈춘다. 그 뒤 말러 교향곡 제5번의 장송행진곡이 시작된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다소 복잡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 핵심은 어렵지 않다. 니이가키는 말러의 음악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요약집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말러의 선율을 재료로 삼아 기억과 역사, 죽음과 창조가 서로 부딪치는 새로운 음악적 공간을 열고자 한다.
여기서 ‘5.0’이라는 제목도 여러 의미를 갖게 된다. 숫자 5는 말러의 다섯 번째 교향곡을 가리키지만, 소수점 뒤의 0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악장의 번호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술의 세계에서 익숙한 버전 표기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120여 년 전 작곡된 음악을 새롭게 듣기 위한 입구를 상징한다.
제5번 앞에 제0악장을 놓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완성된 작품 앞에 질문을 하나 더 놓는 일이다.
우리는 흔히 고전을 완성된 것으로 여긴다. 베토벤은 베토벤이고, 바흐는 바흐이며, 말러는 말러라고 생각한다. 원전의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고전이 살아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이 그 작품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전은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속에서만 보존되는 유물이 아니다. 살아 있는 연주자의 손과 호흡, 오늘의 작곡가가 던지는 새로운 물음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문화적 생명체다.
니이가키의 작품이 성공적인지는 실제 연주를 들어본 뒤 판단해야 한다. 말러의 음악을 새로운 작품으로 연결하는 시도가 언제나 원작의 깊이를 보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명작의 일부를 짧게 이어 붙이면 감상은 쉬워질 수 있지만,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원작의 긴장과 구조가 희생될 위험도 있다.
![[사진=진솔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4/552779-26fvic8/20261024101128617gddg.jpg)
진솔은 말러의 음악을 단순히 지휘해 본 사람이 아니다. 그는 10년에 걸쳐 교향곡의 여러 세계를 연구하고 무대에서 경험했다. 제1번의 젊은 생명력, 제2번의 죽음과 부활, 제3번의 자연과 우주, 제4번의 천상적 순수함, 그리고 제5번의 극적인 전환을 각각의 작품으로 마주해 왔다.
이제 그 음악들이 하나의 새로운 작품 안에서 서로 연결된다. 지휘자는 니이가키가 만든 음악적 다리를 이해하는 동시에, 다리 양쪽에 놓인 말러의 세계를 온전히 알고 있어야 한다.
진솔에게 이번 초청공연은 그래서 각별하다. 서울에서 말러의 교향곡들을 각각의 거대한 세계로 탐구했다면, 요코하마에서는 그 세계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은 한국의 지휘자가 일본의 오케스트라를 이끈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미 형성된 음악적 신뢰가 새로운 창작의 협업으로 발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타쿠티카트의 이나가키 유이치로(稲垣悠一郎·Yuichiro Inagaki) 대표는 지난 10월 15일 공개한 기획 기록에서 이번 공연의 준비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홀의 공연 일정을 확보한 뒤 어떤 프로그램을 선보일지 고민했다고 한다. 기존의 전문 오케스트라와 비슷한 정기연주회를 반복해서는 타쿠티카트만의 가치를 보여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중 말러 제5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1번부터 제4번까지를 새로운 작품으로 연결하면 어떻겠느냐는 발상을 떠올렸다. 이후 니이가키에게 작곡을 제안했고, 그가 수락하면서 《말러 5.0》 프로젝트가 본격화됐다.
지휘자를 선정한 배경도 인상적이다.
이나가키 대표에 따르면 진솔은 타쿠티카트와 애니메이션 《창궁의 파프너》(蒼穹のファフナー)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2년 연속 함께한 음악가다. 그는 진솔이 정통 클래식에서 게임·애니메이션 음악까지 폭넓게 다루는 지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기에 진솔이 한국에서 말러리안이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하면서, 이번 정기연주회에 그를 초청하기로 했다.
이나가키는 공개 글에서 진솔의 세밀하고 정확한 지휘, 열정적인 음악적 태도, 오케스트라의 장점을 끌어내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다양한 콘텐츠와의 협업에 적극적인 점이 타쿠티카트의 지향과 잘 맞는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오늘날 문화교류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방식을 본다.
과거 한일 문화교류는 정부 기관이나 대규모 문화단체가 주관하는 공식 행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런 교류도 필요하다. 그러나 오늘의 문화 현장에서는 개별 예술가와 제작자들이 공동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작은 협업을 거쳐 더 큰 무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진솔과 타쿠티카트의 관계도 그렇다. 처음부터 말러 교향곡 제5번을 함께 연주하기 위해 만난 것은 아니었다. 두 해에 걸친 애니메이션 음악 공연이 서로의 음악적 역량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고, 그 신뢰가 정통 교향곡과 현대 창작곡의 세계초연으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장르를 구분하는 오래된 위계에 대한 질문도 숨어 있다.
클래식 음악은 고급 예술이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음악은 그보다 가벼운 대중문화라는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 음악의 세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훌륭한 애니메이션 음악에도 복잡한 관현악법과 정교한 감정의 구조가 필요하다. 반대로 클래식 음악이 청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잃는다면, 아무리 위대한 전통을 가졌더라도 점차 소수의 전유물로 좁아질 수 있다.
타쿠티카트 오케스트라는 이런 경계를 적극적으로 넘나드는 단체다. 2020년 10월 창단한 이 악단은 젊은 실력파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협주곡, 실내악, 독주회, 음악 교육, 다양한 콘텐츠 공연을 추진해 왔다. 이번 공연 역시 그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게임 문화가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청중을 만들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대중문화 산업을 형성해 왔고, 그 안에서 음악은 작품의 감정을 전달하는 핵심 언어로 자리 잡았다.
애니메이션 음악을 좋아하던 청중이 오케스트라 공연장을 찾고, 그곳에서 지휘자의 음악적 역량을 경험한 뒤 말러의 교향곡까지 듣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클래식의 미래는 어쩌면 바로 그런 새로운 만남 속에서 열릴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나가키 대표는 《창궁의 파프너》 팬들에게도 타쿠티카트의 사운드를 경험해 보라고 권했다. 공연에는 관객이 자율적으로 후원금을 낼 수 있는 좌석도 마련돼 있다. 익숙한 클래식 관객뿐 아니라 새로운 관객을 공연장으로 초대하려는 제작자의 고민이 읽힌다.
물론 접근성을 높이는 일과 예술의 깊이를 지키는 일은 함께 가야 한다. 말러의 음악을 짧고 쉽게 소개한다는 이유로 그 안의 철학과 구조까지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형식이 예술적 수준을 낮추는 지름길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감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말러리안 프로젝트와 일본의 타쿠티카트 오케스트라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갖는다.
두 단체 모두 젊은 음악가들의 자발적 도전에서 출발했다. 이미 완성된 전통을 단순히 계승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맞는 공연의 형태를 고민한다. 하나는 말러의 거대한 교향곡 세계를 10년에 걸쳐 탐구했고, 다른 하나는 클래식과 현대 콘텐츠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관객을 만나려 한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음악 공동체가 말러의 이름 아래 만나는 것이다.
그 만남이 요코하마라는 도시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요코하마는 일본 근대사의 중요한 항구도시다. 바다를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되며 근대 일본의 변화가 펼쳐진 공간이다. 오늘날 미나토미라이 지구의 현대적 도시 풍경 속에 자리한 음악홀은 과거의 항구가 담당했던 교류의 기능을 문화적으로 이어가는 장소라고 볼 수도 있다.
항구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곳이었다면, 음악홀은 감정과 사상, 문화적 기억이 오가는 장소다. 국경을 넘어온 지휘자와 일본의 젊은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 서는 순간, 요코하마의 항구는 또 다른 의미의 문화적 교차점이 된다.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이 장면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역사적 경험과 기억이 복잡하게 얽힌 이웃이다. 정치와 외교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으며, 문화가 그 문제들을 저절로 해결해 준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역사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의 예술을 듣고, 함께 연습하고,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경험은 양국 사회가 쌓아야 할 신뢰의 한 형태다.
음악은 말이 필요 없는 언어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음악에도 치열한 소통이 필요하다. 지휘자가 의도하는 호흡과 연주자가 이해하는 호흡이 다를 수 있고, 같은 악보를 읽더라도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서로의 차이를 듣고 조정하는 과정이 없다면 아름다운 합주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오케스트라는 국제 협력의 작은 실험실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서 온 지휘자가 일본의 연주자들과 함께 말러를 연주한다는 것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음악적 감각이 하나의 악보를 사이에 두고 만나 새로운 해석을 만드는 과정이다.
이번 공연에서 세계초연되는 《말러 5.0》은 그 협력의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
구스타프 말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에서 활동한 작곡가다. 니이가키는 21세기 일본에서 그 음악을 새롭게 구성한 작곡가다. 진솔은 한국에서 10년 동안 말러의 교향곡을 탐구해 온 지휘자다. 그리고 타쿠티카트는 오늘의 일본에서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는 음악 공동체다.
오스트리아의 음악적 유산, 일본의 현대 창작, 한국 지휘자의 해석, 일본 연주자들의 집단적 표현이 한 무대에서 만난다. 문화는 바로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건너며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우리는 특히 니이가키라는 작곡가의 이력에도 주목한다.
1970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도호학원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2014년 대필 작곡 논란의 중심에 서며 큰 사회적 주목을 받았고, 이후에도 작곡과 연주 활동을 이어왔다. 교향곡과 협주곡뿐 아니라 영화, 게임, 무대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인물이다.
예술가의 삶은 언제나 매끄러운 성공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적 논란과 실패, 비판과 재기의 과정도 한 인간의 예술적 삶을 구성한다. 물론 그 과정에 대한 평가는 작품과 별도로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가 이번에 말러라는 거대한 작곡가의 음악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구성한다는 사실은 분명 흥미롭다.
특히 니이가키는 작품 해설에서 21세기에도 교향곡이 오케스트라 음악의 당연한 중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가 말러 제5번을 교향곡의 대표작처럼 제시하면서도, 동시에 그 작품 자체가 전통적인 교향곡의 틀에서 벗어난 독특한 존재라고 인정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현대 예술이 갖는 생산적인 긴장이다.
전통을 존중하지만 전통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형식을 계승하지만 형식에 갇히지 않는다. 과거의 위대한 작품을 연주하면서도 그 작품이 오늘의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묻는다.
이러한 태도는 음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육도, 언론도, 기업도, 사회제도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원칙은 지켜야 하지만, 그 원칙을 구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발전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인공지능 시대의 문화예술을 다시 생각한다.
오늘날 AI는 방대한 악보를 분석하고, 작곡가의 양식을 비교하며,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말러 교향곡 제1번부터 제4번까지의 주요 부분을 골라 제5번과 연결하는 작업 역시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컴퓨터가 일정 부분 도울 수 있는 시대다.
그렇다면 인간 작곡가 니이가키와 인간 지휘자 진솔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음악적 자료를 조합하는 능력에 있지 않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떤 음악적 기억을 되살리고 어디에서 침묵할 것인가, 과거의 작품을 오늘의 청중에게 어떤 질문으로 제시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 있다.
니이가키가 《부활》의 마지막 악장으로 작품을 시작하고, 쇤베르크의 화음을 거쳐 제5번의 장송행진곡으로 연결한 것은 하나의 해석적 선택이다. 그 선택이 예술적으로 설득력을 갖는지는 실제 음악으로 판단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는 작곡가 자신의 역사 인식과 미학적 판단이 들어 있다.
진솔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악보에 적힌 소리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니이가키의 의도와 말러의 원작 사이에 놓인 긴장을 읽고, 그 긴장이 청중에게 살아 있는 경험으로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기술이 음악의 재료를 다루는 능력을 확장할수록, 예술가는 왜 그 재료를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빨라질수록 인간의 판단은 더욱 깊어져야 한다.
제1탄에서 진솔의 10년을 ‘내공’이라는 말로 설명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공은 단순한 숙련이 아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보는 힘이며, 눈앞의 성과보다 더 깊은 목적을 지켜내는 능력이다.
![[사진=진솔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4/552779-26fvic8/20261024101129868yvuv.jpg)
말러리안 프로젝트에서는 자신이 기획하고 이끌어 온 공동체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다른 조직의 초청을 받아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한다. 그곳에는 이미 타쿠티카트가 쌓아 온 음악적 성격과 제작 철학이 있다.
자신이 만든 악단을 이끄는 것과 다른 나라의 악단에서 그들의 장점을 끌어내는 것은 서로 다른 리더십을 요구한다.
자신의 확신을 지키면서도 다른 사람의 음악적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 악보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현장에서의 유연한 소통이 동시에 필요하다.
여기서 지휘자의 지휘봉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조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무조건 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함께 아름다운 질서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케스트라의 이상에 가깝다.
한국의 지휘자와 일본의 연주자들이 서로의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 하나의 말러를 만들어낸다면, 그 무대는 화이부동을 음악으로 실천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물론 공연을 앞둔 지금, 그 결과를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세계초연이 청중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 말러의 제5번이 어떤 해석으로 울려 퍼질지, 두 나라 음악가들의 협업이 어떤 예술적 성과를 낳을지는 11월 8일 무대가 끝난 뒤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공연의 성패와 별개로 이미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한국에서 한 지휘자가 오랫동안 쌓아 온 음악적 성실함을 일본의 제작자가 알아보았고, 이전의 협업을 통해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연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그 제안은 일본 작곡가의 위촉 신작과 대규모 교향곡을 연결하는 공동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가에게 국제적 활동이 갖는 실질적인 의미일 것이다.
국제화란 해외 공연 횟수를 늘리는 것만이 아니다. 외국의 음악가와 제작자가 자신의 예술적 철학을 이해하고,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유명한 무대에 한 번 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무대를 함께 만들고 싶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진솔의 요코하마 공연은 말러리안 프로젝트가 끝난 뒤 얻은 부수적인 성과가 아니다. 10년의 축적이 새로운 협업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사례다.
우리는 앞으로 진솔이 이러한 경험을 통해 더욱 넓은 음악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다만 그 길이 반드시 더 큰 명성과 더 유명한 악단으로만 이어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음악적 질문을 잃지 않는 일이다.
말러의 음악은 왜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가. 클래식은 어떻게 새로운 세대와 만날 수 있는가. 예술가는 서로 다른 문화와 장르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음악은 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공연이 거듭될수록 더욱 깊어질 것이다.
진솔은 10월 서울에서 말러의 《부활》을 지휘했다. 그리고 11월 요코하마에서는 《말러 5.0》과 교향곡 제5번을 지휘할 예정이다.
흥미롭게도 두 공연에는 죽음과 새로운 시작이라는 공통의 주제가 흐른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희망을 노래한다. 제5번은 장송행진곡으로 시작해 음악적 갈등과 변화를 거쳐 마지막 악장에 이른다. 여기에 니이가키의 《말러 5.0》은 이전 교향곡들의 기억을 불러내 제5번의 출발점으로 연결한다.
끝은 다시 시작이 되고, 과거는 현재의 음악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인간의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한 가지 목표를 이루었다고 해서 삶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꿈의 끝에서 새로운 질문이 태어나고, 그 질문이 다시 우리를 앞으로 걷게 만든다.
진솔에게 서울의 10월 9일은 한 시대의 완성이었다. 요코하마의 11월 8일은 그 완성 이후에 시작되는 또 다른 길의 첫 장면이 될 것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음악가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만들어낼 새로운 소리를 기대한다. 클래식과 애니메이션, 과거와 현재, 전통과 창작, 인간과 기술 사이에 놓인 벽을 음악으로 낮추는 일도 기대한다.
무엇보다 음악이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
말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시대를 살았고, 니이가키는 현대 일본에서 창작하며, 진솔은 한국에서 말러와 함께 10년을 걸어왔다. 그들이 속한 시대와 문화는 다르다. 그러나 음악은 그 차이를 지우지 않으면서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게 한다.
이것이 인문자, 곧 인간·문화·자연의 눈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이유다. 예술의 출발점에는 인간이 있고, 그 인간들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와 문화가 있으며, 그 모든 삶을 품고 있는 자연과 세계가 있다.
진솔의 지휘봉은 이제 서울을 떠나 요코하마로 향한다.
그곳에서 들려올 음악은 아직 미래의 소리다. 우리는 그 소리가 어떤 감동을 남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10년 동안 말러를 향해 걸어온 한국의 지휘자가 이제 일본의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말러의 음악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대한 예술의 전통은 보존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그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의 언어로 다시 묻고, 다시 연주하고, 다시 창조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이어간다.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진솔과 말러리안이 남긴 ‘Ewiger Gesang’, 영원한 노래의 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 10년의 프로젝트는 완결됐지만 그들이 품었던 음악적 열정과 질문, 그리고 함께 만들어낸 노래는 하나의 공연이 끝났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 노래는 새로운 연주자를 만나고, 다른 나라의 청중에게 전해지며, 또 다른 창작의 출발점이 된다.
서울에서 울린 《부활》의 마지막 음은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요코하마에서 새로운 음악의 첫 음으로 이어지려 한다.
말러의 10년은 끝났다. 그러나 진솔의 말러는 끝나지 않았다.
Ewiger Gesang — 노래는 영원하다.
그리고 그 영원한 노래의 새로운 장은 이제 일본 요코하마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