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쟁, 실수연발, 애정갈구… 날 닮았네 안쓰러운 저 녀석들

사지원 기자 2026. 10. 2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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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인 광고를 봤다면 일단 누구나 의심부터 해볼 일이다.

그는 치이카와를 "본질적으로 오늘날의 기그 이코노미(단기·임시직 중심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다룬 귀여운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치이카와가 노동과 생존 경쟁을 동화 같은 세계에 녹여냈다면, 망곰이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상의 좌절과 작은 행복을 그려낸다.

이처럼 캐릭터의 활동 무대가 넓어지는 배경엔 상품 구매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일상을 함께하려는 팬들의 애착이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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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청년들 사로잡은 ‘짠한 캐릭터’
영화 ‘치이카와’ 국내서도 큰 인기
생계형 알바에 주거 격차까지 소재… 귀여운 생김새에 현실 더해져 재미
‘망그러진 곰’은 실수투성이 일상
‘가나디’는 서툰 말투로 애정 원해… SNS서 탄생해 굿즈 등 영역 확장
동그란 얼굴에 짧은 팔다리를 가진 일본 캐릭터 ‘치이카와’(왼쪽 사진), 삐뚤빼뚤한 그림체와 어딘가 어설픈 표정이 특징인 ‘망그러진 곰’(가운데 사진), 축 늘어진 귀와 순진한 표정이 매력인 강아지 캐릭터 ‘가나디’. 귀여운 외모와 달리 실패와 좌절, 외로움 등 현실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젊은 층의 공감을 얻고 있다. 아래 사진은 각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와 대형 인형. 사진 출처 각 캐릭터 인스타그램
“섬에 가서 간단한 토벌만 해도 보수 100배!”

이런 구인 광고를 봤다면 일단 누구나 의심부터 해볼 일이다. 하지만 작고 귀여운 동물들은 달콤한 제안에 솔깃해 배에 오른다.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단 말에 한껏 들떴지만, 도착한 섬에는 무시무시한 비밀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다.

현지에서 1200만 명이 넘게 본 이 영화가 국내 극장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1일까지 누적 관객 190만4592명을 동원했다. 개봉 열흘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8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외화 흥행 5위인 ‘아바타: 불과 재’(217만 명)도 곧 추월할 기세. 22일 실시간 예매율도 28.6%로 신작 ‘실낙원’(9.7%) 등을 제치고 정상을 지켰다.

극장 밖에서도 캐릭터의 인기가 뜨겁다.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의 공식 매장 ‘치이카와샵’엔 신상품을 구매하려는 팬들이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며칠째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 치이카와와 친구 하치와레, 우사기가 음악 방송에 출연해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섬의 노래’를 부른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327만 회에 육박했다.

파스텔톤의 동그란 얼굴에 발그레한 볼, 짧은 팔다리. 얼핏 보면 어린이용 같지만, 최근 귀여운 외모와 달리 서툴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치이카와 캐릭터들이 성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허술한 외모에 실수가 잦은 ‘망그러진 곰’, 어눌한 말투로 안아달라며 애정을 갈구하는 ‘가나디’도 마찬가지. 요즘 어른들은 왜 작고 안쓰러운 캐릭터에 열광하는 걸까.

● 청년 불안과 고민 담은 캐릭터들

동그란 얼굴에 짧은 팔다리를 가진 일본 캐릭터 ‘치이카와’. 사진 출처 치이카와 인스타그램
치이카와는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나가노가 2017년 X(옛 트위터)에 올린 낙서에서 시작된 캐릭터. ‘뭔가 작고 귀여운 녀석’이란 말의 줄임말로, 국내에선 줄여서 ‘먼작귀’로도 부른다. 2021년 만화책 발간 뒤 단행본 누적 판매량이 500만 부를 넘어섰고, 2022년 후지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됐다.

사실 치이카와의 세계는 마냥 평화롭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려 경쟁하고, 괴물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에 ‘짠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주인공 치이카와와 친구 하치와레(한국명 가르마), 우사기(한국명 토끼)는 생계를 위해 풀을 뽑거나 스티커를 붙인다. 더 높은 보수를 받으려면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지만, 하치와레가 시험에 붙는 동안 치이카와는 거듭 낙방한다. 사는 형편도 제각각이다. 치이카와는 추첨으로 얻은 집에서 생활하지만, 하치와레는 동굴에서 낡은 이불을 덮고 잔다. 귀여운 동물들의 세계에도 주거 격차가 존재하는 셈. 극장판에선 섬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섬뜩한 장면도 등장한다. 소셜미디어에선 “공포영화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치이카와 캐릭터를 활용한 굿즈.
취업난과 자격시험, 주거 불안 등 청년들의 고민과 맞닿은 이야기여서일까. CGV에 따르면 영화 관람객 중 20대가 42%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0%로 뒤를 이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캐릭터의 귀여운 모습과 노동이나 계급이 존재하는 현실적 세계관이 부조화를 이루면서 독특한 재미를 준다”며 “어린이용 캐릭터인 줄 알았다가 그 세계를 더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제이슨 마코토 천 미국 웨스트오아후 하와이대 교수도 지난달 미 CNN 인터뷰에서 “치이카와는 일본 사회 특유의 불안에서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입시 경쟁과 취업 자격증 취득 압박, 낮은 임금 등이 작품에 녹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치이카와를 “본질적으로 오늘날의 기그 이코노미(단기·임시직 중심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다룬 귀여운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 삐뚤빼뚤함과 어설픔으로 사랑받다

삐뚤빼뚤한 그림체와 어딘가 어설픈 표정이 특징인 ‘망그러진 곰’. 사진 출처 망그러진 곰 인스타그램
국내에도 만만치 않게 고단한 삶을 사는 캐릭터들이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유랑이 2021년부터 인스타그램에 연재한 ‘망그러진 만화’의 주인공 ‘망그러진 곰’(애칭 망곰이)이 대표적이다.

삐뚤빼뚤한 윤곽에 짧고 통통한 팔다리를 가진 이 곰은, 매끈하고 정교한 그림체와는 거리가 멀다. 울음을 터뜨릴 때는 ‘부아아아아앙’ 하고 소리친다. 어설픈 표정과 행동, 사소한 실수에 속상해하는 모습이 오히려 친근함을 자아낸다.

망곰이는 연재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로 등장한다. 주로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다섯 살 아기의 모습이나, 가끔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상 손님에게 시달리는 대학생이 되기도 한다. 첫 월급을 받고 기뻐하는 사회 초년생, 직장 생활에 지쳐 화장실에서 몰래 쉬는 이른바 ‘월급 루팡’의 면모도 보여준다.

망곰이는 다른 곰들과 생김새가 달라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치이카와가 노동과 생존 경쟁을 동화 같은 세계에 녹여냈다면, 망곰이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상의 좌절과 작은 행복을 그려낸다.

축 늘어진 귀와 순진한 표정이 매력인 강아지 캐릭터 ‘가나디’. 귀여운 외모와 달리 실패와 좌절, 외로움 등 현실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젊은 층의 공감을 얻고 있다. 사진 출처 가나디 인스타그램
강아지 캐릭터 ‘가나디’도 소셜미디어에서 출발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2023년 작가 ‘짤쓸사람’이 X에 공개한 그림에서 시작된 캐릭터로, 강아지를 어린아이처럼 발음한 이름과 투박한 그림체, 어눌한 말투가 특징이다. 두 팔을 벌리고 ‘나 안아..’라고 말하거나 울먹이며 ‘듀…’라고 하는 이미지가 널리 공유됐다. 이후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출시돼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하며 팬층을 넓혔다.

● 소셜미디어에서 태어나 극장까지

세 캐릭터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소셜미디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대형 제작사가 기획한 애니메이션이나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라, 창작자가 공개한 짧은 그림과 만화가 출발점이다. 이용자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캐릭터 ‘짤’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팬층이 형성됐고, 이후 출판과 애니메이션, 영화, 각종 상품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치이카와는 연재 6년 만에 극장판까지 선보였다. 일본에서 7월 개봉한 영화는 이달 19일 기준 누적 흥행수입 181억 엔(약 1519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에서도 관련 상품의 인기가 뜨겁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024년 상하이 징안다웨청 쇼핑몰에서 열린 치이카와 팝업스토어는 39일 동안 2610만 위안(약 51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15만 명을 끌어모았다.

망그러진 곰 캐릭터를 활용한 대형 인형.
망곰이는 카카오톡 이모티콘과 단행본을 넘어 프로야구장까지 진출했다. 2024년 곰을 구단 상징으로 사용하는 프로야구단 ‘두산 베어스’와 손잡고 유니폼과 모자, 인형 등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선수들이 협업 유니폼과 모자, 헬멧을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는 ‘망곰베어스데이’도 열렸다. 올해는 팬들이 각자 원하는 장소에서 7km를 달리고 완주를 인증하는 ‘망곰베어스 V RUN’을 개최하는 등 상품 판매를 넘어 참여형 행사로 협업을 확대했다.

가나디 역시 올해 ‘SSG 랜더스’와 손잡고 유니폼과 응원 배트, 인형 등 협업 상품 15종을 출시했다. 편의점 음료와 팝업스토어 등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거엔 캐릭터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로 지명도를 올린 뒤 상품화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젠 소셜미디어에서 팬덤을 형성한 캐릭터가 스포츠와 유통 등 다양한 산업으로 진출하고 있다.

가나디 캐릭터를 활용한 대형 인형.
이처럼 캐릭터의 활동 무대가 넓어지는 배경엔 상품 구매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일상을 함께하려는 팬들의 애착이 작용하고 있다. 팬들은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응원하고, 그 캐릭터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거나 소품을 지니며 애정을 표현한다. 처음엔 귀여운 외모가 관심을 끈 계기였다면, 오랫동안 팬들을 붙잡아 두는 건 캐릭터가 쌓아 온 개성과 이야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치이카와는 귀여운 외모에 차가운 현실을 버텨 나가는 서사가 더해져 소비자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위로받는 캐릭터”라며 “이제는 귀여움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캐릭터만의 특성과 이야기가 축적돼야 소비자가 자신을 투영하고 위로받거나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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