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쟁, 실수연발, 애정갈구… 날 닮았네 안쓰러운 저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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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인 광고를 봤다면 일단 누구나 의심부터 해볼 일이다.
그는 치이카와를 "본질적으로 오늘날의 기그 이코노미(단기·임시직 중심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다룬 귀여운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치이카와가 노동과 생존 경쟁을 동화 같은 세계에 녹여냈다면, 망곰이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상의 좌절과 작은 행복을 그려낸다.
이처럼 캐릭터의 활동 무대가 넓어지는 배경엔 상품 구매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일상을 함께하려는 팬들의 애착이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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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치이카와’ 국내서도 큰 인기
생계형 알바에 주거 격차까지 소재… 귀여운 생김새에 현실 더해져 재미
‘망그러진 곰’은 실수투성이 일상
‘가나디’는 서툰 말투로 애정 원해… SNS서 탄생해 굿즈 등 영역 확장

이런 구인 광고를 봤다면 일단 누구나 의심부터 해볼 일이다. 하지만 작고 귀여운 동물들은 달콤한 제안에 솔깃해 배에 오른다.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단 말에 한껏 들떴지만, 도착한 섬에는 무시무시한 비밀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다.
현지에서 1200만 명이 넘게 본 이 영화가 국내 극장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1일까지 누적 관객 190만4592명을 동원했다. 개봉 열흘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8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외화 흥행 5위인 ‘아바타: 불과 재’(217만 명)도 곧 추월할 기세. 22일 실시간 예매율도 28.6%로 신작 ‘실낙원’(9.7%) 등을 제치고 정상을 지켰다.
극장 밖에서도 캐릭터의 인기가 뜨겁다.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의 공식 매장 ‘치이카와샵’엔 신상품을 구매하려는 팬들이 전날 밤부터 줄을 서는 진풍경이 며칠째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 치이카와와 친구 하치와레, 우사기가 음악 방송에 출연해 영화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섬의 노래’를 부른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327만 회에 육박했다.
파스텔톤의 동그란 얼굴에 발그레한 볼, 짧은 팔다리. 얼핏 보면 어린이용 같지만, 최근 귀여운 외모와 달리 서툴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치이카와 캐릭터들이 성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허술한 외모에 실수가 잦은 ‘망그러진 곰’, 어눌한 말투로 안아달라며 애정을 갈구하는 ‘가나디’도 마찬가지. 요즘 어른들은 왜 작고 안쓰러운 캐릭터에 열광하는 걸까.

사실 치이카와의 세계는 마냥 평화롭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려 경쟁하고, 괴물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에 ‘짠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주인공 치이카와와 친구 하치와레(한국명 가르마), 우사기(한국명 토끼)는 생계를 위해 풀을 뽑거나 스티커를 붙인다. 더 높은 보수를 받으려면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지만, 하치와레가 시험에 붙는 동안 치이카와는 거듭 낙방한다. 사는 형편도 제각각이다. 치이카와는 추첨으로 얻은 집에서 생활하지만, 하치와레는 동굴에서 낡은 이불을 덮고 잔다. 귀여운 동물들의 세계에도 주거 격차가 존재하는 셈. 극장판에선 섬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섬뜩한 장면도 등장한다. 소셜미디어에선 “공포영화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제이슨 마코토 천 미국 웨스트오아후 하와이대 교수도 지난달 미 CNN 인터뷰에서 “치이카와는 일본 사회 특유의 불안에서 탄생했다”고 분석했다. 입시 경쟁과 취업 자격증 취득 압박, 낮은 임금 등이 작품에 녹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치이카와를 “본질적으로 오늘날의 기그 이코노미(단기·임시직 중심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다룬 귀여운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했다.

삐뚤빼뚤한 윤곽에 짧고 통통한 팔다리를 가진 이 곰은, 매끈하고 정교한 그림체와는 거리가 멀다. 울음을 터뜨릴 때는 ‘부아아아아앙’ 하고 소리친다. 어설픈 표정과 행동, 사소한 실수에 속상해하는 모습이 오히려 친근함을 자아낸다.
망곰이는 연재 과정에서 다양한 역할로 등장한다. 주로 엄마의 보살핌을 받는 다섯 살 아기의 모습이나, 가끔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진상 손님에게 시달리는 대학생이 되기도 한다. 첫 월급을 받고 기뻐하는 사회 초년생, 직장 생활에 지쳐 화장실에서 몰래 쉬는 이른바 ‘월급 루팡’의 면모도 보여준다.
망곰이는 다른 곰들과 생김새가 달라 놀림을 받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치이카와가 노동과 생존 경쟁을 동화 같은 세계에 녹여냈다면, 망곰이는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상의 좌절과 작은 행복을 그려낸다.

● 소셜미디어에서 태어나 극장까지
세 캐릭터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소셜미디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대형 제작사가 기획한 애니메이션이나 방송 프로그램이 아니라, 창작자가 공개한 짧은 그림과 만화가 출발점이다. 이용자들이 일상적인 대화에서 캐릭터 ‘짤’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팬층이 형성됐고, 이후 출판과 애니메이션, 영화, 각종 상품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치이카와는 연재 6년 만에 극장판까지 선보였다. 일본에서 7월 개봉한 영화는 이달 19일 기준 누적 흥행수입 181억 엔(약 1519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에서도 관련 상품의 인기가 뜨겁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024년 상하이 징안다웨청 쇼핑몰에서 열린 치이카와 팝업스토어는 39일 동안 2610만 위안(약 51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15만 명을 끌어모았다.

가나디 역시 올해 ‘SSG 랜더스’와 손잡고 유니폼과 응원 배트, 인형 등 협업 상품 15종을 출시했다. 편의점 음료와 팝업스토어 등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과거엔 캐릭터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로 지명도를 올린 뒤 상품화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젠 소셜미디어에서 팬덤을 형성한 캐릭터가 스포츠와 유통 등 다양한 산업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치이카와는 귀여운 외모에 차가운 현실을 버텨 나가는 서사가 더해져 소비자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위로받는 캐릭터”라며 “이제는 귀여움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어렵다. 캐릭터만의 특성과 이야기가 축적돼야 소비자가 자신을 투영하고 위로받거나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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