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美에 조선소 직접 건설

한예나 기자 2026. 10. 24.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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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군함·상선 시장 공략 승부수
美 대형 건설사와 합작법인 세워
내년 착공해 2029년 가동 목표

세계 1위 조선사 HD현대가 미국 본토에 조선소를 짓는다. 기존 노후 조선소를 인수하는 대신 최첨단 조선소를 직접 세워 미국 군함·상선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승부수다.

HD현대는 23일 미국 대형 인프라 건설사 키윗(Kiewit)과 합작법인 ‘HD키윗조선’을 설립해 현지 조선소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키윗이 보유한 미국 내 산업 부지에 수조 원을 투자해 내년 착공하고, 2029년부터 군함과 상선 건조에 들어갈 계획이다. 후보지로는 텍사스주 멕시코만 연안이 유력하다. 완공되면 2024년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에 이어 한국 조선사의 두 번째 미국 내 생산기지가 된다.

올 1월 울산 HD현대중공업 부두에서 정기 정비를 마친 미 해군 군수지원함 ‘USNS 앨런 셰퍼드’함이 출항하고 있는 모습. HD현대중공업이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처음 수주해 지난해 말 작업을 완료한 함정이다.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는 HD현대는 23일 미국 키윗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현지에 신규 조선소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

이번 투자는 미국 시장의 높은 법적 장벽을 넘기 위한 발판이다. 미국은 해군 함정과 자국 연안을 오가는 상선은 모두 미국 내 건조만 허용한다. 그 근거법이 번스-톨레프슨법과 존스법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8월 돌파구를 열었다. 미국에 조선소를 신설하거나 인수한 외국 기업에 한해, 미 해군 함정 첫 2척을 외국 기업의 본국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둔 것이다. 첫 발주가 이르면 오는 12월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 수주 자격을 선점하기 위해 HD현대는 발 빠르게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1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조선업 투자 프로젝트 마스가(MASGA)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동안 미 의회의 관련 법 개정이 지연되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공전해 왔으나, HD현대의 직접 투자로 한미 조선 협력의 물꼬가 다시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관건은 안정적인 일감 확보와 수익성이다. 미국은 높은 인건비와 숙련공 부족 탓에 선박 건조 비용이 한국보다 2~3배 이상 비싸다. 초기 수조 원대 건설비를 쏟아붓고도 충분한 수주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막대한 고정비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것이다.

◇HD현대, 美군함 수주 경쟁 본격 참전… 주춤했던 ‘마스가’에 활기

HD현대는 지난 22일(현지 시각) 미국 휴스턴에서 키윗과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맺고 미국 진출을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합작법인 지분 과반은 HD현대가 갖고 조선소 운영과 선박 건조를 주도한다. 키윗은 자신이 보유한 미국 내 산업용 부지를 제공하고 조선소 건설과 현지 인력 조달을 책임진다. 현재 미국 남부와 서부 연안 주(州)정부들과 논의 중인데, 텍사스주 멕시코만 연안이 낙점될 가능성이 크다.

새 조선소에는 HD현대가 개발 중인 미래형 스마트 조선소 FOS(Future of Shipyard) 모델이 이식된다. 핵심은 디지털 트윈과 로봇 자동화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 공간에 현실의 조선소를 구현해 만들어 배를 미리 건조해 보는 기술이다. 설계 오류나 공정 병목을 사전에 찾아내 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여준다. 여기에 로봇 용접과 자동화 시스템을 결합해 숙련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미국에서 작업 지연을 막고 인건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완전 가동 시 최대 3000명을 고용해 미 해군 군수지원함 등 보조함과 상선을 건조하고, 다른 미국 조선소에 선박용 블록을 공급하는 기지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블록이란 선체를 나눠 만드는 대형 조립 단위다.

◇조선소 인수 대신 직접 건설

낯선 현지 환경에서 2년 남짓한 기간 안에 조선소를 완공하기 위해 HD현대가 택한 파트너가 키윗이다. 1884년 설립된 키윗은 북미 지역을 대표하는 초대형 인프라·엔지니어링 건설사다. 해상 플랜트, 항만, 교량 등 중공업 및 해양 토목 공사에서 뛰어난 시공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 대규모 제조 시설을 지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까다로운 환경·건설 인허가와 노조 및 현장 인력 관리다. 키윗은 이미 미국 연안에 개발 가능한 대규모 산업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주정부 인허가 절차와 현지 기능공 인력 조달에도 능하다. 조선업 노하우는 세계 최고지만 미국 내 토목·행정 경험이 전무한 HD현대로선 부지 확보부터 건설, 초기 인력 채용 리스크까지 도맡아 해결해 줄 최적의 현지 파트너가 키윗인 셈이다. 두 회사는 지난 7월 선박 블록·모듈 공동 생산을 위한 전략적 협력을 맺은 지 석 달 만에 합작법인을 통한 조선소 건설을 결정했다.

한화오션이 2024년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발 빠르게 현지 진출에 나섰지만, HD현대는 신중론을 유지해왔다. 샌디에이고와 텍사스주 멕시코만 연안 조선소 2~3곳을 인수 후보로 저울질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동성이 부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을 계기로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가 출범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선 시장에 들어오려면 현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HD현대의 기류도 바뀌었다.

문제는 미국 내 조선업 재건 열풍을 타고 현지 노후 조선소들의 몸값이 그새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점이다. 결국 HD현대는 웃돈을 주고 낡은 조선소를 사들여 뜯어고치는 것보다 백지 상태에서 첨단 조선소를 새로 짓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HD현대 관계자는 “인수 후보지 중 고수익 선박을 지을 만한 대형 독(dock)을 갖춘 곳이 드물었다”며 “기존 시설을 인수해 독을 넓히고 설비를 재배치하는 비용이나 새로 짓는 비용이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첫 시험대는 12월 해군 발주

당장의 목표는 오는 12월로 예상되는 미 해군 함정 수주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지난 8월 확정한 ‘해외 함정 건조 예외 조치’에 따르면, 미국 내 조선소 신설 계약을 맺은 외국 기업은 미 해군 함정 첫 2척을 미국이 아닌 본국에서 건조할 수 있다. 대상 선종은 수상 전투함과 보급용 특수 유조선, 화물선적 선박 등 3종이다. 첫 2척은 본국에서 만들고 후속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식이다. 미국인 채용·훈련과 기술 이전, 현지 공급망 확보 등의 조건도 붙는다.

HD현대는 합작법인 설립으로 입찰 자격을 갖춘 만큼 즉각 수주전에 뛰어들 예정이다. 특히 특수 유조선과 로로선은 HD현대가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상선 건조 기술을 그대로 쓸 수 있고, 한국 울산 조선소에서 건조할 경우 수익성을 높이는 것도 기대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에 현지 조선소를 짓는 것은 존스법의 장벽 안에 있는 미국 상선 시장에 들어서기 위한 입장권이기도 하다. 미국 항구 사이를 오가는 배는 미국에서 지어야 한다는 규제 탓에 한국 조선사들은 그간 이 시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현지 조선소를 발판으로 미국 연안 운송용 상선 수요까지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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