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은 뗐지만, 인력 확보·일감 수주 ‘산 넘어 산’

표태준 기자 2026. 10. 2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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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조선 협력]
美에 조선 숙련공·엔지니어 부족
인건비 높아 가격 경쟁력도 떨어져
업계 “정부, 美규제 완화 설득해야”
올 1월 울산 HD현대중공업 부두에서 정기 정비를 마친 미 해군 군수지원함 ‘USNS 앨런 셰퍼드’함이 출항하고 있는 모습. HD현대중공업이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처음 수주해 지난해 말 작업을 완료한 함정이다.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는 HD현대는 23일 미국 키윗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현지에 신규 조선소를 건립한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

HD현대의 미국 조선소 신설 발표를 정부는 반기고 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23일 “국내 1위 기업이 직접 움직인 만큼 그간 주춤했던 1500억달러 규모 대미 조선 투자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조선업계 내부에선 신중론이 제기된다. 미국의 살인적인 고임금과 숙련공 고갈 등 현지에 먼저 진출한 기업들이 체감하는 미국 조선업 생태계의 붕괴 수준이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HD현대가 제시한 ‘내년 착공, 2029년 가동, 현지 인력 3000명 고용’이라는 청사진부터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일찌감치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햇수로 3년째 운영 중인 한화오션의 고전이 그 근거다. 현재 필리조선소가 따낸 상선 물량은 한화 계열사 자체 발주분을 제외하면, 미국 해운사 매트슨에서 수주한 3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컨테이너선 3척 정도다. 그마저도 계약 가격이 척당 3억3000만달러(약 4400억원)로 한국·중국 건조가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치솟은 인건비와 낙후된 공급망 탓에 배 값이 폭등하다 보니, 현지 선사들조차 발주를 주저하는 악순환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김현국

가장 큰 문제는 씨가 마른 현지 인력 풀이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2024년 자국 조선·수리 업체 105곳을 조사한 결과, 85.7%인 90곳이 심각한 구인난을 호소했다. 고강도·고위험 노동을 기피하는 미국 청년층의 성향에 더해, 선박 설계 엔지니어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대학이 미시간대 조선해양공학과 단 한 곳에 불과할 정도로 교육 기반 자체가 무너진 결과다. 용접공과 배관공 등 현장 숙련공을 구하거나 새로 가르치는 데만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조선소를 뒷받침할 전후방 기자재 생태계가 황무지나 다름없다는 점도 난제다. 현재 HD현대중공업은 한국에서 2420곳에 달하는 1차 협력사에서 부품과 블록을 조달 받아 배를 짓는다. 반면 조선업 기반이 와해된 미국에선 볼트 하나, 철판 한 장까지 제때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현지 공급망을 새로 구축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지 건설사인 키윗과 손을 잡더라도 환경·건설 인허가를 뚫고 2년 남짓한 기간 안에 조선소를 완공해 정상 가동하기는 빠듯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려면 미군 당국의 까다로운 보안·품질 인증까지 별도로 통과해야 한다. HD현대 구상대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최첨단 자동화 설비를 깔면 초기 투자비는 다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수조 원을 쏟아부어 최첨단 독(dock)을 짓고도 정작 일감이 없어 가동률이 떨어지면, 천문학적인 고정비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이 막대한 리스크를 안고 현지 투자에 나선 만큼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규제 완화 속도를 높이고 군함·상선 발주 물량을 확실히 보장 받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일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게 확보한 미국 조선소가 자칫 우리 기업의 재무적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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