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 아니야 [고혜련의 삶이 있는 풍경] (27)

고혜련 칼럼니스트 2026. 10. 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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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진정한 사랑은 욕망에 앞서 상대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위키피디아

“다른 데 가서 하면 안 돼요? 보기 민망하네.” 여의도 한강가 풀밭에 앉아 쉬고 있던 어느 여름 저녁. 어둑해지자 불빛이 환해진 가로등에 기대 ‘점입가경’의 애정표현에 돌입한 젊은 남녀를 코앞에서 보고 도저히 넘어갈 수 없어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곧 당황한 듯 사라졌으나 얼마 후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의기양양한 얼굴에 반말로 “남의 일에 웬 참견이냐”며 내 가족의 어깨를 쳤다. 무언가 무장하고 왔다는 직감이 왔다. 순간 위험을 느껴 급히 움직이며 전화기로 112에 신고한 듯 외쳤다. “여기 큰일 났어요. 급히 출동해 주세요.” 그들은 움찔하며 사라졌고 위기를 모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거봐, 그런 건 모른 척하는 게 상책”이라 했지만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하다.

요즘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과도한 애정표현을 하는 남녀를 보는 일이 흔하다. 지하철 안 빈자리가 하나뿐이면 거기 앉아 자기 무릎 위에 연인을 앉혀 둘이 얼싸안는 행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누가 보면 대수냐’ 식의 애정행위가 아주 노골적이다. 또 인천국제공항에서 이별하거나 재회할 때면 과도한 감정 표현도 허용된다고 착각하는 모양이다. 가히 볼썽사나운 광경이다. 흔히 접하는 뉴욕이나 파리의 길거리 연인들보다 더하다. 그들의 표현은 그저 관습적인 인사치레 정도지 애정표현이 간절할 경우 적어도 길에서 그러지는 않는다. 오랜 ‘타향살이’에서 확인한 점이다. 1년여 런던에 머물 때도 아연실색했다. 방값 비싸기로 소문난 곳에 어학연수나 ‘워킹 홀리데이’ 경험차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 ‘체류비 절감을 위해서’ 쉽게 동거에 들어가는 경우들을 보았으니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꼰대 같은 발상을 집어치워라. 요즘 세상에….” 세상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달라지고 있으니 애정표현도 달라지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상대를 간절히 원해서 하는 그런 행위들이 사실은 배반(背叛)의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하는 얘기다. 그들의 미래조차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러브 이즈 터치, 터치 이즈 러브(Love is touch, Touch is love)’라는 존 레넌의 그 유명한 노랫말도 있듯이 사랑하면 신체적 교감을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리라. 그러나 설사 성적 충동이 일어도 상대를 수치심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사랑이 아니다. 데이트 상대를 아무렇게나 대하는 사람의 됨됨이와 애정은 믿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니 부디 ‘진정 사랑해서’라는 말을 그대로 믿지는 말라고 전하고 싶다. 사랑을 내세우지만 실은 무분별한 욕정일 수 있으며, 그조차 제어할 수 없어 상대를 욕되게 하고 싸구려로 대접받게 하는 하수(下手)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나중 세월이 말해주리라.

일부 전문가들은 청년기 남성의 공격·충동적인 호르몬 수치가 여성보다 최고 10배까지 높아 성적 욕구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사랑을 느끼게 하는 뇌신경전달물질의 유효기간은 아주 짧아 결국 성급한 둘의 관계가 머지않아 깨지기 십상이라는 것.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사랑을 노래한 헤르만 헤세나 레프 톨스토이 등 세계적인 문호들은 결국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인격을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법을 배우게 하며 자기희생으로 자신의 한계까지 넘게 한다고 전한다. 진실로 사랑하면 훌쩍 성숙해져 신의를 지키고 상대가 온전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

오지랖 넓게 내가 참견하는 것은 이들이 그 상처로 인해 상대를 해치고 자신도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서다. 눈먼 사랑의 상처는 파괴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청년기 한때의 과오가 본인과 가족의 삶 전체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게다가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지켜야 할 공공 윤리가 자꾸 무너지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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