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함·육개장 없애고 청바지 입고 치른 장례… 비로소 고인이 보였다
[남정미 기자의 정말]
28년간 장례 문화 개선에 앞장서
국민훈장 석류장 받은 송길원 목사

지난 9월 치른 송길원(69) 목사 부친 장례식에는 다섯 가지가 없었다. 근조 화환, 부의함, 부고장, 꽃 제단, 육개장.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센터에 차려진 빈소에서 송 목사는 검은 양복과 상주 완장 대신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었다. 영정을 둘러싼 화려한 꽃 제단도 만들지 않았다. 대신 낡은 구두와 탁상시계 등 평소 고인(故人)이 아꼈던 유품을 올렸다. 벽에는 고인의 생애를 담은 네 컷 사진이 전시됐다. 이를 유족들이 도슨트(전문 해설사)처럼 조문객에게 설명했다. 유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엔 커피와 마카롱(프랑스식 디저트)이 제공됐다. 식사는 돌아가는 조문객들이 인근 맛집 세 곳 중 한 곳을 골라 할 수 있게 했다. 쿠폰을 제시하면 식사가 가능하도록 미리 섭외해 둔 곳들이었다.
송 목사가 아버지 장례식에서 보여준 풍경에는 그가 지난 28년간 추구해 온 장례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개 목회자들은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의 부목사로 시작해 본인이 교회를 개척하거나, 다른 교회 담임 목사로 청빙을 받는다. 송 목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고신대 의대와 복음간호전문대 교목(校牧)으로 목회 활동을 시작해, 1992년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를 차렸다. 가정 사역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 해결을 돕는 활동이다.
가정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이별과 죽음으로 연결됐다. 1990년대 후반 화장 장려 운동에서 시작해 수의(壽衣) 대신 평상복 입기, 한지 유골함과 종이 관(棺) 사용하기 등 작은 장례식 운동을 주도했다.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또 다른 수식어는 ‘임종 감독’이다. 천편일률적인 장례에서 벗어나 고인의 삶에 맞는 장례를 치르도록 돕는 모습을 보고 한 상주가 붙여준 별칭이다. 지금까지 그가 도운 장례는 70~80건에 이른다. 관심은 장례식에만 머물지 않았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앰뷸런스를 운행하고, 삶을 돌아보는 ‘엔(앤)딩 파티’도 기획한다. 지난 2일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제30회 노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가을이 한창인 경기도 양평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송 목사를 만났다. 부친을 보낸 그 복장 그대로였다.
◇청구서 같은 부고장이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이렇게 입으셨다고요.
“제 아버지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노년에도 청바지에 흰 와이셔츠 입고 외출하시는 것이었어요. 아버지께 수의 대신 그렇게 좋아했던 복장을 입혀 드리고, 가족들도 그렇게 입는다면 어떨까 생각했죠.”
-가족들이 반대 안 하던가요?
“제 아내부터가 ‘그게 고인에 대한 예의가 맞느냐’고 물었어요. 제가 6남매 중 장남인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가족들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하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미국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 관이 안치된 미 연방의사당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애도하는데, 한 사람이 와서 팔굽혀 펴기를 세 차례 한 일이 있거든요. 긴즈버그의 20년 지기이자 개인 트레이너였던 브라이언트 존슨이었습니다. 그게 고인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걸까요? 저는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였다고 봐요. 남 시선 의식하지 말고, 아버지가 기뻐하고 좋아하셨던 걸 하자고 설득했어요. 나머지 날은 각자 원하는 복장으로 입되, 마지막 날만큼은 아버지의 복장으로 모두가 맞춰보기로 합의가 됐습니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렀다. 송 목사는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짙은 감색 양복에 분홍색 넥타이를 맸다.

-왜 분홍색입니까.
“‘집에 넥타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넥타이가 없어서는 아니고(웃음)…. 영정 사진 속 아버지가 입고 계신 셔츠가 분홍색이었거든요. 그게 제 아버지 색으로 느껴져서, 아버지와 하나이고 싶다는 마음에 분홍색으로 골랐어요. 장례 기간 내내 빈소의 시계는 새벽 5시 5분에 멈춰 있었습니다. 아버지 심장이 멈춘 시간에 함께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청바지나 넥타이 색깔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핵심은 장례가 한 사람의 생애를 잘 기리는 자리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장례를 치르느라 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해요. 그게 안타깝습니다.”
그는 몇 년 전 참회록 형식을 빌린 유언장을 썼다. 그중 이런 대목이 있다. ‘카카오톡으로 아무에게나 (부고장) 날리지 말아라. 나도 힘들었다. 마음 표현할 곳(계좌번호)이라 쓰고 돈 바칠 곳이라 읽게 만들지 말아라. 나는 문해력이 부족해서 많이 헷갈렸다.’
-부고장은 정말 안 보내셨나요?
“꼭 알려야 할 분들께는 카톡이나 문자가 아니라, 전화로 직접 알리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안 어른을 비롯해 오셨으면 하는 분들께는 전화로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 이름으로는 아무에게도 부고장 안 보냈어요. 부고장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다른 형제들은 각자 사정에 따라 보내기도 했는데, 존중했어요. 단지 명함 한 번 주고받았을 뿐인데, 계좌번호 박힌 성의 없는 부고장이 와서 상대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건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의함도 안 놓으셨는데.
“‘이렇게 하는 게 옳다’고 강요하거나, 이게 표준이 돼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당황하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그래도 허례허식의 틀을 한 번은 깨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장례는 지나가는 객(客)까지도 먹여 보내는, 어떻게 보면 잔치였잖아요. 그런데 내 아버지의 장례로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워서, 이걸로 관계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게 하기는 싫었습니다.”
-상부상조의 미덕 아니냐고 한다면요.
“저도 누군가가 어렵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고, 힘들 때 받는 도움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에도 부의함은 없앴지만 그럼에도 들어온 부의는 거절하지 않고 감사하게 잘 받았어요. 덕분에 어머니께 필요한 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아버지 이름으로 기독교 문화 체험관 건립에 기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내가 이만큼 했으니 똑같이 받아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세상이 정말 계약 관계가 되고 비정해지는 거죠. 살다 보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똑같이 돌려받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아요. 반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되갚을 수 없는 도움을 입기도 하고요. 그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순환의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장례식에서 생전 장례식까지
송 목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들과 이야기를 하며 “내 아버지가 여섯 분인 걸 알았다”고 했다. 형제마다 경험한 아버지가 다 달랐다. 6남매가 모여 고인의 앨범과 기록을 보며 아버지의 생애를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의 삶을 잘 나타낸 사진을 함께 고르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쓴 편지와 생전에 아끼던 물건을 마치 미술관처럼 빈소에 전시했다. 이를 가족들이 각자의 경험과 추억을 곁들여 조문객에게 해설했다.
-정말 미술관의 도슨트 같았겠군요.
“요즘 장례식장에 가보면 상주와 3분 인사하고 밥 먹고 나오면 끝이잖아요. 아버지가 96세에 돌아가셨으니 아버지 지인 분들은 대부분 빈소에 오시지 못했어요. 조문객 대부분은 저나 형제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신 분들인데, 제 아버지를 잘 모르실 테니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희도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부친을 마지막까지 돌본 요양보호사가 조사(弔詞)를 했다고요.
“아버지와 마지막까지 시간을 보낸 분이시기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이 들려주신 아버지의 모습이 한 편의 동화 같았어요. 아버지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거든요.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시다가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동요 ‘반달’을 부르셨대요. 그 노래를 요양보호사분께도 선생님처럼 가르쳐 주셨다고 해요.” 장례식 마지막 날, 유족들이 다 함께 그 ‘반달’을 불렀다.
-이렇게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전엔 대법원 청사나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결혼식을 한다는 생각 못 했잖아요. 결혼식 문화가 바뀌면서 작은 결혼식이 확산됐듯, 장례에 대한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병원 장례식장을 떠나 양평에서 작은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던 건, 시신 저온 냉장 장치인 ‘레스텔(Restel)’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신이 부패할 염려가 없으니, 안치실을 갖춘 병원 장례식장이 아니더라도 장례를 치를 수 있어요. 개인이 이를 구비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공공기관에서 이를 갖춰 빌려주면, 유족이 주도하는 작은 장례식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레스텔이 있다면 장소는 교회나 성당, 절, 마을회관 등의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죽기 전에 장례를 치르자는 ‘엔딩 파티(생전 장례식)’도 기획하셨는데. 특히 배우 신애라씨 아버지인 작곡가 신영교씨의 엔딩 파티가 화제였습니다.
“40여명 정도가 모였는데, 처음에는 신영교 집사님 여동생이 ‘쓸데없이 무슨 관 체험을 하느냐’며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왔더라고요. 그런데 그 여동생이 제일 많이 우셨어요(웃음). 신 집사님 일생을 5분 정도 영상으로 정리해 보여드리고, 파이프오르간으로 좋아하시던 찬양과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작곡하신 동요 ‘시소’를 연주했어요. 마지막에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 어떠셨는지’를 여쭤봤습니다. 집사님이 그러시더군요. ‘제 인생 한 번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울컥했어요. 신애라씨도 아버지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하더군요.”

-생전 장례식에 대한 거부감은 없습니까?
“그래서 이름을 ‘엔(앤)딩 파티’라고 지은 거예요. 죽음을 삶의 끝(엔딩·ENDing)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앤딩·ANDing)으로 보는 겁니다. 사람들의 정서적인 거부감까지 외면하면서 밀어붙여서는 안 돼요. 꼭 생전 장례식을 치른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만들고, 출판 기념회를 열 수도 있고요. 요즘은 AI(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으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잖아요.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니 살아 있을 때 서로 얼굴 보고, 못다 한 얘기 나누자는 거예요. 장례가 무거워진 건 마지막에 제대로 된 작별을 하지 못해서 아닐까요? 생전 장례식을 하면 실제 장례도 한결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사람을 존엄하게 하는 봉사
-왜 목사가 되셨습니까.
“부산에서 기독교 기반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느 날 교목(학교 목사) 선생님이 ‘당감동 화장터에 다녀오면 주일 예배를 네 번 빠져도 봐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얼씨구나 하며 달려갔죠. 그런데 그 화장터가 저를 바꿨습니다. 시신이 불에 태워지고 사람들이 울부짖는 모습을 보는데, ‘아, 삶이 이렇게 허무하구나, 의미 있게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거꾸로 교회를 더 열심히 가게 됐고, 결국 신학까지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때 같이 화장터 다니던 친구들 중 목사 된 사람이 많아요(웃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가정 사역으로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신학대 졸업하고 의과대학에서 교목으로 일하면서 의대생들 상담을 많이 했어요. 겉으로는 진학 문제, 학업 스트레스 같아도 결국 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문제 중심엔 가정이 있더군요. 그러던 중 아끼던 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가정 문제를 제대로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가정 문제는 사안이 아무리 심각해도 외부에서 간섭해서는 안 되는 문제로 여겨졌다. 미국은 달랐다. 이미 교회 내에 ‘이혼자를 위한 모임’ ‘20대 싱글을 위한 모임’ 등 각 상황에 맞는 다양한 가정 사역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하이패밀리의 전신인 기독교 가정 사역 단체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를 시작했다.
-말기 임종 환자들의 마지막 나들이 소원을 들어주는 ‘앰뷸런스 소원 재단’도 운영하시죠.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도 마지막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잖아요. 그 소원을 이뤄 드리는 것이 남은 시간을 존엄하게 보내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구세군에 이야기했더니 앰뷸런스 2대를 기증해 주셔서 그걸 가지고 쎄시봉 공연에도 태워 드리고, 바다도 가고, 야구장에도 모시고 갔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아이들은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거예요. 좀 더 큰 앰뷸런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배우 이영애씨가 1억원을 기부해 이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 무료 묘원인 ‘안데르센 공원 묘원’ 묘지 지기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않고 화장해 뿌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 부모들이 찾아갈 공간조차 없다는 사실에 너무 아파하더라고요. 특히 희소 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경우 부모의 경제 상황이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아이를 기억할 수 있으면서 경제적 부담도 지우지 않는 장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이 공원 묘지에는 양부모에게 학대받다 2020년 숨진 정인이도 있다.
-어머니가 염장이셨다면서요.
“장례식장이 보편화되기 전, 기독교 가정에서 상(喪)을 당하면 교회 장례 봉사자가 시신을 씻기고 염습을 돕는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담당자가 부재한 사이, 어머니가 다니시던 교회에 상이 난 거예요. 다들 동동거리는 상황에서 저희 어머니가 나섰죠. 애들 목욕도 다 시켰는데 뭐, 하시면서. 그 이후 집집마다 장례만 생기면 어머니가 불려 가셨어요. 그게 얼마나 싫던지요. 어머니가 다른 사람 시신 만지고 돌아와 무친 나물이 싫고, 교장 선생님 사모님이 아닌 ‘염장이’ 소리 듣는 게 싫어서 ‘왜 돈도 안 받고 그런 일을 하느냐’고 언젠가 따져 물은 적이 있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무학(無學)인 내가 이렇게라도 봉사를 해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지 않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한 인간의 존엄을 지켜 주는 게 가장 큰 봉사라는 걸 어머니는 아셨던 겁니다.”
그 유전자가 송 목사의 몸에도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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