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소설가 무라카미 류 별세

2026. 10. 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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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의 불안과 욕망을 해부···24세에 아쿠타가와상 수상
1998년 1월 8일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룬 평론집 발간 기념으로 내한한 무라카미 류가 홍대 앞 프리버드에서 저자들 및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정근 기자

마약과 섹스, 폭력, 전쟁을 정면으로 묘사하며 전후 일본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파고든 소설가 무라카미 류(村上龍)가 별세했다. 향년 74세.

일본 출판사 겐토샤(幻冬舎)는 10월 23일 무라카미 류가 지난 17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다. 장례는 유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52년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서 태어난 무라카미 류는 1976년 24세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로 일본 문단에 충격을 안겼다. 미군기지 주변에 모여 사는 젊은이들의 마약과 섹스, 폭력으로 얼룩진 일상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무사시노미술대학 재학 중이던 그는 이 소설로 군조신인문학상과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아쿠타가와상을 연이어 받았다.

당시 일본 문학이 중시하던 내면의 성찰이나 섬세한 심리 묘사와 달리 무라카미 류는 육체와 감각, 파괴적인 욕망을 전면에 내세웠다. 고도성장으로 풍요를 이룬 일본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젊은 세대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데뷔는 일본 전후문학이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1980년 발표한 <코인로커 베이비스>는 그의 문학적 지위를 확고하게 만든 작품이다. 코인로커에 버려진 두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폭력과 파괴를 통해 일본 사회의 억압과 소외를 드러냈다. 이 작품으로 노마문예신인상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의 관심은 개인의 일탈에 머물지 않았다.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1987)에서는 경제적 혼란과 정치적 위기 속에서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5분 후의 세계>(1994)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하지 않았다는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인 더 미소 수프>(1997)는 현대사회의 폭력성과 인간의 고립을 추적했다.

2000년 발표한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는 그의 문제의식을 압축한 작품이다. 기존 교육체제와 사회질서에 등을 돌린 중학생들이 인터넷을 통해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과정을 그렸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일본 사회에 정작 희망은 없다는 작품 속 문제의식은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독자들에게도 그는 낯설지 않은 작가였다. 1990년대 이후 일본 문학이 한국 출판시장에서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주목받았다. 두 사람은 성이 같고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더블 무라카미’로 불렸다. 하루키가 상실과 고독, 개인의 내면세계를 환상적 서사로 풀어냈다면 류는 폭력과 성, 사회경제적 위기를 직접적이고 거친 언어로 묘사했다.

2005년 발표한 <반도에서 나가라>는 한국과 북한을 직접 다뤄 화제가 됐다. 경제가 붕괴하고 국제적으로 고립된 일본에 북한 특수부대가 침투해 후쿠오카를 점령한다는 설정이다. 국가가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젊은이들이 저항에 나선다. 단순한 북한 침공소설보다 일본 국가체제의 무기력과 사회적 위기를 묘사한 정치소설에 가까웠다.

무라카미 류는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자신의 데뷔작을 직접 영화로 제작했고, <도쿄 데카당스>(1992) 등을 연출했다. 그의 소설 <오디션>은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로 제작돼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2003년에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는 <13세의 헬로워크>를 출간했다. 일본에서 100만부 이상 판매된 이 책은 학교 진로교육에도 활용됐다.

2006년부터는 TV도쿄의 경제 대담 프로그램 ‘캄브리아 궁전’을 진행하며 일본 기업 경영자들을 인터뷰했다. 약 20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올해 3월 하차했다. 노년에도 창작을 이어가 2023년에는 70세 소설가가 자신의 과거와 욕망을 돌아보는 <유튜버>를 발표했다.

무라카미 류의 작품세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주제는 풍요와 희망 사이의 간극이었다. 일본 사회가 경제성장으로 얻은 물질적 풍요가 개인의 자유나 삶의 의미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폭력과 파괴로 가득한 소설에서도 그는 기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존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추적했다.

1976년 일본 문단에 충격을 안기며 등장했던 24세 청년은 반세기 동안 일본 사회의 변화를 소설로 기록했다. 그가 집요하게 던졌던 질문은 풍요로운 사회에서 인간은 왜 희망을 잃는가, 그리고 희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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