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던 영국조차 K뷰티 열풍… 9개월만에 작년 연 수출의 2배

이주호 기자 2026. 10. 2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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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 진출의 최대 관문이자 보수적인 뷰티 시장으로 꼽히는 영국에서 한국 화장품(K뷰티)의 위상이 급변하고 있다. 그동안 높은 브랜드 장벽과 까다로운 임대 및 규제 환경 탓에 진입조차 어려웠던 영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이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9개월만에 작년 연 수출의 2배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화장품 통계에 따르면 2026년 1월부터 9월까지 9개월간 대(對)영국 화장품 수출액은 4억4,22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25년 한 해 전체 수출액인 2억2,979만 달러와 비교해 불과 9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이에 따라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국 순위 11위에 머물던 영국은 단 1년 만에 6계단이나 껑충 뛰어오르며 올해 수출 순위 5위로 등극했다.
(자료: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화장품 통계 취합)

이와 함께 유럽 수출이 북미 수출을 넘어섰다. 삼성증권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K뷰티의 북미(미국, 캐나다) 수출은 19억1100만 달러, 유럽(러시아 포함) 수출은 17억1400만 달러 수준으로 북미가 높았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9월까지의 누적 수출액은 북미 19억8400만 달러, 유럽 21억5000만 달러로 유럽이 북미를 뛰어넘었다. 
(자료: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화장품 통계 취합)

올해 9개월만에 작년 한 해 매출을 뛰어넘은 수출 상위 국가들은 미국, 폴란드,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등이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K뷰티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물론 유럽의 수출 급증은 영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K뷰티 수출의 유통 채널 역할을 하고 있는 실리콘투의 물류 기지가 있는 폴란드, 유럽 최대 항만을 보유한 네덜란드로의 수출이 동시에 급증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만으로 설명 불가… 유통 공룡이 움직였다

미국에서 시작된 K뷰티의 인기가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영국으로 확산했다는 설명만으로는 이 같은 급격한 변화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영국과 미국이 문화적으로 가깝고, 여러 단계에 걸쳐 기초 화장품을 사용하는 한국식 스킨케어 루틴이 서구권에서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26년 수출 급증의 배경에는 소비자 선호 변화뿐 아니라 2024~2025년 영국 대형 유통업체들이 한국 화장품을 대거 발굴하고 입점시킨 유통 구조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영국 1위 헬스·뷰티 유통 체인 부츠(Boots)가 대표적이다. 전국에 1,8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는 부츠는 2024년 여름 25개가 넘는 신규 뷰티 브랜드를 도입했다. 이 가운데 라네즈(LANEIGE)와 조선미녀(Beauty of Joseon) 등 한국 브랜드가 포함됐다. 이후 아누아(Anua), 스킨1004(SKIN1004), 하루하루원더(Haruharu Wonder) 등으로 입점을 확대했다.

부츠는 한국 화장품의 판매 가능성을 확인한 뒤 K뷰티를 독립적인 성장 카테고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24년 말부터는 신규 브랜드 발굴 프로그램인 ‘부츠 이그나이트(Boots Ignite)’를 통해 입점 절차도 단축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기존에 해외 뷰티 브랜드를 영국 시장에 도입하는 데 3~5년이 걸리던 과정을 약 3개월로 줄였다고 전했다. 입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더 많은 한국 브랜드가 영국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30초당 1개 → 11초당 1개’… 판매속도 가속패달

실제 판매 지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부츠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스킨케어 제품은 2025년 초 30초당 1개꼴로 판매됐지만, 같은 해 말에는 15초당 1개, 2026년에는 11초당 1개꼴로 판매 속도가 빨라졌다. 한국 화장품이 단순한 유행 상품을 넘어 유통업체가 주목하는 성장 분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국 2위 헬스·뷰티 유통 체인 슈퍼드러그(Superdrug)도 K뷰티 도입에 나섰다. 전국 8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슈퍼드러그는 2025년 9월 25일 K뷰티 전문 유통업체 퓨어서울(PURESEOUL)과 첫 매장 협업을 시작했다. 퓨어서울은 한국인이 아닌 현지 창업자가 설립한 전문 유통업체다. 2022년 매장 한 곳으로 출발해 현재 1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슈퍼드러그에서는 이후 약 400개 제품이 온라인과 30개 매장에 출시됐다. 브랜드와 판매 매장 확대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유통망도 가세했다. 아마존 UK와 틱톡샵(TikTok Shop UK)을 통해 한국 브랜드의 판매 접점이 확대됐다. 영국에 진출한 틱톡샵은 2025년 뷰티 매출이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2025년 기준 영국 전역에서 하루 6,000건 이상의 라이브 방송이 송출됐고, 한국 스킨케어 관련 검색량도 같은 해 하반기에만 125% 늘었다. 국내 화장품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에이피알(APR)도 2025년 10월 아마존UK와 틱톡샵에 입점해 온라인 판매 채널의 성장과 맞물렸다.

영국 유통업체들이 한국 화장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배경에는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이 있다. 미국에서 판매와 소비자 반응이 검증된 제품은 영국 유통업체 입장에서 시장성을 판단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여기에 영국 뷰티 시장의 소비 양극화도 K뷰티에 기회가 됐다. 프리미엄 제품은 가격 부담이 크고, 저가 제품은 품질에 대한 불만이 생기는 가운데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을 앞세운 한국 화장품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고가 제품과 유사한 기능을 저렴하게 구현한 대체품을 찾는 ‘듀프(dupe) 문화’가 확산한 뒤, 품질과 성분을 중시하는 소비자 수요가 커진 것도 배경으로 제시된다.

 

英, 유럽 진출 위한 ‘문화적 관문’

영국 시장의 의미는 수출 규모 자체에만 있지 않다. 영국은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문화적 관문으로 인식된다. 화장품의 종주 지역은 유럽이라고 여기는 콧대 높은 유럽인들에게 한국의 화장품은 개별 브랜드가 진출하기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 유럽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통칭하지만 유럽 각국은 소비 성향과 유통 구조, 규제가 달라 한국의 중소 인디 브랜드가 개별적으로 진출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영국인이 사용하는 화장품이라는 인식의 확산은 개별 브랜드업체들의 유럽 진출을 수월하게 만든다.

따라서 2026년 영국 K뷰티 붐은 SNS 바이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검증된 한국 화장품을 영국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2024~2025년부터 대규모로 발굴하고 입점시켰고, 그 결과가 올해 수출 통계에 본격적으로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소비자 인기가 수요를 만들었다면, 유통업체의 적극적인 입점 전략은 그 수요를 실제 판매와 수출로 연결하는 가속 페달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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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해당 기사는 압권 인터뷰 방송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더욱 정확한 풍성한 내용은 방송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