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반추, 소는 풀을 되씹고 인간은 과거를 곱씹는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2026. 10.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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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의 에코테인먼트]
소는 풀을 되씹어 삶의 에너지를 얻고
인간은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며 산다
경험은 소화하고 후회는 흘려보내야

가끔 속이 편치 않다. 울렁거린다. 뭔가 속에서 다시 올라온다. 괴로워 병원에 가니 역류성 식도염이란다. 약을 처방해 줘서 먹었는데 효과는 참 좋다. 그러나 때가 되면 또 속이 불편해진다. 속에서 아까 먹은 것이 슬며시 올라온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입을 오물거리게 된다. 옆에서 보면 소처럼 보이나 보다.

"너, 되새김질하니?"

평소 고기를 사랑하는 육식파인 내가 졸지에 되새김질하는 초식동물이 되었다. 

되새김질은 참 신기한 생존 방식이다. 소는 느긋하게 턱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씹는다. 먹이를 먹는 것도 아닌데 입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사슴과 양, 염소도 그렇다. 목이 길어 우아해 보이는 기린 역시 되새김질을 한다. 이들은 모두 반추동물이다.
풀을 받아먹는 염소. 반추동물은 삼킨 먹이를 다시 입으로 올려 씹고, 미생물의 도움으로 질긴 식물 섬유질을 소화한다. /김성주

풀은 보기보다 소화하기 어려운 먹이다. 풀의 세포벽에는 셀룰로오스라는 질긴 섬유질이 있어 포유류가 스스로 분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반추동물은 위 속에 미생물을 키우고, 일단 삼킨 풀을 다시 올려 잘게 씹어 미생물이 일하기 좋게 만든다. 젖소는 하루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가량을 이 일에 쓴다.

내가 본 동물 중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가장 귀여운 녀석은 알파카다. 동그란 눈도 귀엽고 쫑긋한 귀도 귀엽다. 뽀송뽀송한 털을 뒤집어쓰고 입을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이라 체험농장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런데 이 귀여운 녀석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화가 나면 침을 뱉는다.

내가 만난 알파카 중 가장 성질이 고약했던 녀석은 삼척의 한 생태공원에 살던 놈이다. 저 멀리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괴성을 지르며 달려와 침을 연달아 뱉어댔다. 족히 10미터는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밥을 주러 가도 화를 내니 도무지 비위를 맞출 수가 없었다.

저렇게 귀여운 얼굴로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입을 오물거리며 되새김질할 때는 천사 같다가도 성질이 나면 영락없는 침 뱉는 불량배였다.
뽀송뽀송한 털과 귀여운 얼굴이 인상적인 알파카. 아이 알파카도 먹이를 되새김질하지만, 화가 나거나 위협을 느끼면 침을 뱉기도 한다. 그마저도 귀엽다. /김성주

반추동물은 왜 이렇듯 번거로운 소화 방식을 갖게 되었을까. 아주 불편한데 말이다. 여기에는 덤이 하나 있다. 바로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이다. 야생의 초식동물에게 풀을 뜯는 시간은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다. 고개를 숙여 먹이를 먹는 동안에도 주변을 경계한다.

어디선가 포식자가 나타날지 모른다. 먹이를 빠르게 섭취한 뒤 잽싸게 안전한 곳으로 튀어 뱃속의 먹이를 다시 곱씹어 소화시킨다. 먹는 과정과 소화 과정을 분리한 것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되새김질은 동물이 편안하게 쉬는 동안 활발하게 이루어지니 그나마 다행이다. 풀밭에 앉아 느릿느릿 턱을 움직이는 소의 모습은 그래서 평화롭다. 먹이를 소화할 시간과 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슴과 양들이 노상 풀만 뜯어 먹는 것 같아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풀을 위 속에 넣고, 안심이 되는 상태에서 되새김질을 한다.

그 반추라는 말은 인간에게도 쓰인다. 다만 인간이 되새기는 것은 풀이 아니라 생각이다.

나 역시 밤이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되새긴다. 낮에는 바쁜 일상에 묻혀 있던 기억들이 잠자리에 들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지나간 일, 마음을 쏟았던 관계, 잘못된 선택, 손실과 후회가 줄줄이 떠오른다.

혹시나 강의할 때 말 한마디 실수하지 않았을까, 내가 한 말들을 다시 복기하기도 한다. 이미 끝난 일인데 머릿속에서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곱씹어도 과거는 바뀌지 않지만 생각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반추라고 부른다. 특히 부정적인 경험이나 감정을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흥미롭게도 생각을 되풀이한다고 해서 언제나 지혜가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차분히 돌아보며 배울 것을 찾는 성찰이 되면 좋은 결과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우울한 감정을 키우고 마음을 지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지나친 반추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초식동물과 인간의 반추는 묘한 대조를 이룬다. 초식동물은 안전하게 살려고 반추를 하는데 인간은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안을 자초한다. 인간은 지나간 일을 곱씹을수록 기억이 더 무거워지는데 말이다.

동물의 반추는 영양분을 남기지만, 인간의 반추는 때로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같은 되새김질인데 결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그토록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나는 새벽마다 반추한다. 온갖 잡생각에 새벽잠을 설치고 깨어난다. 늙으면 새벽잠이 없다는데 다들 생각을 반추하다가 깨나 보다.

그래서 뒤척이다 문득 예전에 경인교대 김호 교수의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조선 시대 어느 양반의 일기에 나오는 이야기라며 들려준 일화인데, 내가 기억하는 내용은 이랬다.

이 양반이 부인 몰래 기생집에 가서 놀다가 걸린 모양이다. 한두 번이 아니라서 부인이 엄청나게 화가 나 남편에게 벌을 내렸단다. 그 벌은 사흘 동안 수반(水飯)이다. 수반이란 물에 만 밥이다. 다시 말해 반찬 하나 없이 물에 맨밥을 말아 먹은 것이다.

그는 사흘 동안 일기에 '수반을 먹었다'라는 글만 적었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비로소 제대로 된 밥을 얻어먹은 후에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쓴다.

"다시는 걸리지 말아야겠다."

그렇다.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반추이다. 걸리지 않으면 될 것을! 지나간 일은 아무리 곱씹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잘 살 것이냐만 궁리하자.

동물은 되새김질을 통해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인간 역시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며 살아갈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소도 되씹은 풀을 결국 삼킨다. 삼켜야 소화가 된다. 다만 삼킨 것을 언제까지나 입에 물고 있지는 말자.
축사에서 사육 중인 소. 소는 하루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가량 되새김질하며 풀에서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다. /김성주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한양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관광과 엔터테인먼트를 전공했다. 삼성에버랜드에서 오랫동안 '환상의 나라'를 설계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는 슬로우빌리지 대표이자 컨설턴트로 변신해 농촌에 행복의 마법을 부리는 중이다. 한국수달보호협회 수도권서부지회장으로서 생태 보호에 앞장서고 있으며, 한국사회적농업협회 부회장을 맡아 치유농업과 6차산업을 이끌고 있다. 사람과 생명이 함께 웃고, 모든 이가 즐거운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쾌한 사명으로 삼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