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동영상 그만 찍어요” 정책 검증 대신 쇼츠 경연장 된 국감

김상윤 기자 2026. 10. 2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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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인가 쇼감인가
지난 6일 국정감사가 정회된 직후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영교(왼쪽)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과 복도에서 언쟁을 벌이고 있다. 김 의원은 이날 국감 도중에 서 위원장이 자신의 발언권을 정지한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했다. /뉴시스

“매번 이러잖아요. (카메라가 좌석 위에까지) 들어왔어요. 불편하다고요.”(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

“아니, 모든 의원이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22일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는 시작과 동시에 의원끼리 고성이 이어졌다. 이진숙 의원 보좌진이 여당 의원들 뒤편에 서서 영상을 찍자 김현 의원이 항의한 것이다. 비슷한 시각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여야 간 고성이 오가던 도중 민주당 김동아 의원이 “아, 쇼츠(짧은 동영상) 그만 찍어요”라고 소리쳤다. 민주당 의원들은 “의정 활동을 쇼츠 찍으려고 하느냐”고 했지만 이들도 야당 의원들을 비난하는 장면을 쇼츠로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국감이 진행 중인 국회에선 요즘 여야 의원끼리 “쇼츠 찍냐”며 다투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국감은 국회가 행정부의 업무를 감독하고 예산 심의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절차로, 헌법에도 명문화돼 있다. 한국처럼 국회가 매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국감을 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도 드물다. 이런 가운데 상당수 상임위 국감이 의원들의 ‘쇼츠 뽑아내기 장’으로 변질되고, 국감 일수는 전보다 줄어들고 있다. 정부의 문제점을 파헤쳐 폭로하는 ‘국감 스타’도 옛말이 됐다. 정치권에선 “이런 국감을 계속 봐야 하냐”는 말까지 나온다.

◇쇼츠로 공방하는 의원들, “지지층에만 어필”

지난 6일 법사위 국감에선 민주당 소속 서영교 위원장과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이 여러 차례 충돌했다. 김 의원이 발언권 정지에 항의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서 위원장은 “유튜브 찍으려고 이러는 거예요”라고 했고, 김 의원은 “유튜브는 위원장님이 잘 찍으시잖아요”라고 했다. 얼마 뒤 두 의원 유튜브에는 쇼츠가 올라왔다. 서 위원장은 ‘참다못한 서영교의 강력한 경고’라는 제목으로 김 의원에게 “절대 그냥 못 넘어간다” “여러 번 경고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을, 김 의원은 서 위원장이 자신의 항의에 대답하다 말을 더듬는 장면을 편집해 올렸다.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지난달 ‘이진숙 참교육’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과방위 회의장에서 이 의원에게 “입 다물고 계세요”라고 하는 영상이다. 이 의원은 지난 6일 “최 의원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선 신사적이고 카메라가 있으면 목소리를 높여서 국감장을 엉망으로 만든다”고 말하는 영상으로 응수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 소셜미디어

자극적인 발언을 하고 곧바로 쇼츠로 올리는 의원들도 있다. 진보당 손솔 의원은 대법원 국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혹시 제2의 윤석열을 꿈꾸는 것이냐”고 했고 조 대법원장은 “그런 말씀은 너무 모욕적”이라고 답했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은 서 위원장 발언 점유율이 너무 높다며 “고기 18인분 시켰는데 혼자 6인분을 먹었다”고 했고 서 위원장은 “인신공격”이라며 반발했다. 두 장면은 모두 의원들의 채널에 쇼츠로 올라왔다. 국회 한 보좌관은 “의원 질의를 듣다 보면 정책을 따지거나 증인의 답을 듣기 위한 게 아니라 쇼츠를 만들기 위한 것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계룡대 육군본부 국감을 하러 가서 허가 없이 영상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하기도 했다.

국감의 질을 낮춘다는 우려도 있지만 여야는 쇼츠 제작을 독려하고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임이자 정책위의장 명의로 각 의원실에 “이번 국감에서 의원 활약상을 담은 15초 쇼츠를 보내라”는 공문을 보냈다. 국감 백서를 만들면서 ‘국감 활약 영상’도 만들겠다는 이유였지만, 당내에선 “자극적 영상 제작을 부추긴다”는 우려가 나왔다. 민주당은 최근 당 공식 유튜브에 국민의힘 김태규·이진숙·주진우 의원 발언을 편집해 ‘국민의힘 초선 패륜 3남매’라는 쇼츠를 게시했다. 한양대 김성수 교수는 “쇼츠의 문제는 정치를 희화화하는 것이고, 국감에서도 예외 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질의 시간은 줄어 ‘워라밸 국감’ 자조

상당수 상임위는 국감 일수가 과거에 비해 줄었다. 일부 상임위는 외부 일정 등을 이유로 질의 시간을 줄이기도 했다. 과거엔 너무 많은 증인을 신청해 증인들이 발언도 못 해보고 밤까지 대기하는 일이 논란이 됐지만 이제는 증인도 줄고 국감도 일찌감치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의원들이 국감 때도 일과 본인 생활의 균형을 챙긴다는 의미로 ‘워라밸 국감’이라는 말도 나온다.

전체 상임위 가운데 법사위·정무위·교육위·과방위·국방위·행안위 등 6개 상임위는 지난해보다 국감 일정을 하루씩 줄였다. 이는 문재인 정부 2년 차로 지금처럼 여당이 다수당이던 2018년 국감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커진다. 법사위·과방위·국방위가 12일에서 10일로, 정무위·기재위·행안위는 11일에서 9일로, 교육위는 9일에서 7일로 줄였다. 상임위별 국감 일정을 더하면 2018년에는 160일이었지만 올해는 129일로 20% 줄었다.

국회 운영위원회 청와대 국감은 29일 오후 반나절만 열린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진행했다. 애초 민주당이 금요일인 30일 국감을 진행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이 29일에 실시하자고 했는데,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국감이 있어 오후에만 열리게 된 것이다. 국민의힘 원내 핵심 관계자는 “30일은 금요일이라 주목도가 떨어진다”며 “반나절이라고 하지만 사실 오전 2시간을 늦춘 것이고 당일 밤늦게까지 현안을 따질 것“이라고 했다.

올해 과방위는 국감 초반 의원들의 주질의·보충 질의·추가 질의 시간을 기존 7·5·3분에서 5·3·2분으로 줄이기도 했다. 과방위는 지난해 두 차례 자정을 넘겨 국감을 진행했지만, 앞서 5차례 열린 국감 중 3차례는 저녁 식사 이전에 끝났다. 과방위 소속 의원실 한 보좌진은 “처음에는 국감이 짧아져서 좋았는데, 점차 흐름이 끊겨 국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야당 관계자는 “감사를 하긴 하겠다는 건가. 추가 2분은 있으나 마나 한 시간 아니냐”고 했다. 비판이 나오자 여야는 질의 시간을 원래대로 조정하기로 했다.

한국외대 이재묵 교수는 “최근 정당 정치는 양극화와 팬덤으로 요약되는데, 쇼츠 국감은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행정부 감시·견제보다는 지지자들이 좋아할 센 발언을 하고 자기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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