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인사이트]재택근무자, 존재감 드러내려 빠른 응답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 상사에게 메신저로 업무 요청이 왔다.
연구진은 재택근무자가 사무실 근무자보다 상사의 협업 요청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의 배경에 '비가시성 불안(invisibility anxiety)'이 있다고 설명한다.
참가자에게 관리자와 동료가 각각 보낸 요청 가운데 어느 쪽에 먼저 답할지 선택하게 하자, 재택근무 상황에 배정된 참가자의 71%가 관리자의 요청을 먼저 처리했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49호(9월 2호) '재택근무자, 업무 중 입증 부담감상사의 협업 요청에 더 신속히 응대'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 상사에게 메신저로 업무 요청이 왔다. 사무실에 있었다면 지금 하던 일을 마친 뒤 답했을 대수롭지 않은 업무였다. 그런데 집에서 일하는 날은 다르다. 바로 답장을 보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긴다. 내가 사무실 밖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사가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미국 메릴랜드대와 애리조나주립대, 중국 베이징대 등 공동연구진에 따르면 이런 행동은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연구진은 재택근무자가 사무실 근무자보다 상사의 협업 요청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의 배경에 ‘비가시성 불안(invisibility anxiety)’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관리자에게 보이지 않거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사무실에선 출근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 회의에 참석하거나 동료와 대화하는 과정 자체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격근무에선 이런 일상적인 단서가 크게 줄어든다. 재택근무자가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다.
연구진은 재택근무자의 불안이 실제 행동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를 여러 방식으로 검증했다. 한 기업의 재택근무 명령을 전후로 실제 직장 데이터를 활용한 자연 실험을 했다. 분석한 협업 기록은 175만8540건에 달했다. 여기에 직장인 설문조사, 두 차례의 사전등록 상황 실험, 직원과 관리자를 연결한 두 단계 행동실험을 추가로 진행했다. 연구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결과는 일관됐다. 재택근무자는 대면근무자보다 비가시성 불안을 더 크게 느꼈다. 이 불안은 상사의 협업 요청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특히 행동실험에서 차이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참가자에게 관리자와 동료가 각각 보낸 요청 가운데 어느 쪽에 먼저 답할지 선택하게 하자, 재택근무 상황에 배정된 참가자의 71%가 관리자의 요청을 먼저 처리했다. 사무실 근무 상황에서는 이 비율이 54%였다. 제한된 시간과 주의력을 상사에게 더 우선 배분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를 ‘신호 보내기(signaling)’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협업 요청에 빠르게 반응하려면 계속 메시지를 확인하고, 업무의 순서를 바꾸거나 다른 일정을 조정할 필요도 있다. 즉, 신속한 반응을 통해 “나는 업무에 집중하고 있으며 협업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 신호는 실제로 관리자의 판단에도 영향을 줬다. 직원이 협업 요청에 적극적으로 반응할수록 관리자는 해당 직원에 대해 두 종류의 신뢰감을 느꼈다. 하나는 일을 잘 해낼 것이라는 능력 기반 신뢰, 다른 하나는 자신을 배려하고 선의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호의 기반 신뢰다. 여기서 생긴 신뢰는 직원에게 경력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관리자의 의향을 높였다. 즉, 재택근무자가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보낸 신호가 관리자에게 실제 긍정적인 정보로 해석됐다는 얘기다.
재택근무는 근로자에게 많은 이점을 주는 제도지만 그 이면엔 비가시성 불안과 같은 심리적 비용도 존재한다. 출퇴근 부담이 사라지고 근무 자율성이 높아져도 직원에게는 새로운 압박을 줄 수 있다. ‘일을 하는 것’에 더해 ‘일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말이다. 이런 비가시성 불안은 에너지 고갈과 정서적 소진을 앞당길 수 있다. 빠른 반응성을 계속 유지하는 과정에서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다 정작 일에 온전히 주의를 쏟지 못하는 셈이다. 업무와 가정의 경계가 흐려지는 문제 역시 곱씹어 봐야 한다.
이 연구는 재택근무 관리를 위한 시사점을 준다. 빠른 반응 자체를 문제라고 볼 필요는 없다. 원활한 협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재택근무 중 메시지에 빨리 답하는 직원이 실제로 더 유능하거나 성실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빠른 반응 자체가 원격근무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행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직원의 성과를 온라인 상태나 답장의 속도로 판단하게 되면 직원의 역량을 오판할 가능성이 생긴다.
관리자가 합리적인 응답 시간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기적인 일대일 면담이나 예측할 수 있는 업무 업데이트처럼 빠른 응답 외에 직원의 기여도와 집중도를 확인할 다른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재택근무자의 역할과 태도에 대한 기대 수준을 분명히 하고 성과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이 매 순간 즉각적인 응답으로 존재감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글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49호(9월 2호) ‘재택근무자, 업무 중 입증 부담감…상사의 협업 요청에 더 신속히 응대’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백상경 기자 baek@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코스피 5500선 추락했는데…與대변인 “내년 1만피 갈것”
- 동탄-영통 찍고 분당-강남으로…‘반도체 머니’ 거침없는 ‘북진’
- 文뇌물혐의 수사에…공소청장 대행 “뼈 발라내는 수사”
- 역삼동 방화범 “죽이려는게 아니라 겁주려 했다” 궤변
- “화장실 쓰게해줘 감사” 압구정역 곳곳 역장의 편지, 무슨일?
- 12층 방범창에 세살배기 대롱대롱…의자 받치며 살려낸 주민들
- 마약 집유중 음주운전 남태현, “술끊고 어렵게 직장 구해” 선처 호소
- 北 IT인력, 국내업체 위장 취업 첫 포착…개발까지 했다
- “웨딩사진 초과됐으니 140만원 더 내라” 새신부 울린 스튜디오
- 李 “중수청 지휘감독 포기하는 건 대통령 탄핵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