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이드]AI가 아낀 시간, 돌봄에 돌려주자

정우주 2026. 10.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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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주(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자문위원)

가령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에서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 감지됐다고 해보자. 인공지능(AI)은 위험 신호를 포착하고 담당자에게 알린다. 기술은 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그다음부터다. 누가 전화를 걸고, 누가 문을 두드리며, 누가 어르신의 손을 잡을 것인가. AI가 위기를 알아채는 것과 사람이 도움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는 '복지·돌봄 AI 대전환 로드맵'을 발표했다. AI가 일상 속 안전과 건강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찾아 신청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2028년까지 정형화된 복지행정 업무의 50% 이상을 자동화하겠다는 목표도 담겼다. 방향은 바람직하다. 부족한 돌봄 인력을 기술로 보완하고 복잡한 행정을 간소화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특히 광주·전남에는 절박한 과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전국 21.6%, 전남 28.6%다. 고령자가 많고 마을 사이 거리가 먼 지역에서 모든 가정을 사람이 수시로 방문하기란 쉽지 않다. AI가 이상 징후를 먼저 포착하고 행정 서류를 대신 정리한다면 현장의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절약한 시간이 반드시 돌봄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지 현장에서 서류 작성 시간이 한 시간 줄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 한 시간이 어르신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바뀐다면 기술은 삶을 바꾼다. 반대로 담당 인력은 그대로인데 더 많은 업무만 떠안거나, 절감된 예산이 인력 감축의 근거로 쓰인다면 AI 도입의 성과를 시민이 체감하기 어렵다. 자동화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성과를 측정하는 기준부터 달라져야 한다. AI를 몇 대 설치했는지, 시스템이 몇 건을 처리했는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돌봄 종사자가 직접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얼마나 늘었는지, 위험 신호 발생 후 실제 방문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도움이 필요한 주민이 서비스를 제때 받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시범사업이 끝난 뒤에도 누가 시스템을 운영하고 현장을 책임질지 분명해야 한다.

지역의 보건소, 복지관, 방문간호 인력과 AI 시스템을 연결하는 연락 체계도 필요하다. 위험 알림이 울렸는데 담당자가 없거나 서로 책임을 미루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 기술 도입 예산에 사람을 교육하고 대응 체계를 유지할 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

지난 7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의료 AI의 책임 있는 확산을 다룬 보고서에서 기술의 도입 자체보다 신뢰와 지속 가능한 운영 기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술이 뛰어나도 현장과 연결되지 못하면 성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AI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사람이 확인하고 개입하는 절차, 민감한 건강정보를 지키는 장치도 빠질 수 없다.

우리는 흔히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까 걱정한다. 돌봄 분야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조금 다르다. AI 덕분에 사람이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는가. 어르신에게 필요한 것은 정교한 알림 하나만이 아니라, 그 알림을 받고 찾아오는 사람이다.

AI가 아낀 시간은 숫자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그 시간은 다시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곁을 지키는 데 쓰여야 한다. 그것이 기술이 복지를 발전시키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