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22년 전 '비정규직 악법', 다시 시작된 게임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2026. 10. 2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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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내가 첫 번째 게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이 게임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3년 전에 여기서 게임을 했었고, 그때 같이 게임을 했었던 사람들은 전부 다 죽었습니다.

벌써 22년 전, 비정규직 관련 입법을 놓고 노무현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며 퇴장한 후,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 면담을 요구하며 의장실 점거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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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의 인사이드경제] 과거를 되풀이하는 사회적 대화와 노동입법 충돌
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내가 첫 번째 게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이 게임을 해봤기 때문입니다. 3년 전에 여기서 게임을 했었고, 그때 같이 게임을 했었던 사람들은 전부 다 죽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2에서 주인공 성기훈은 다른 참가자들을 향해 절박하게 외친다. 그는 게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금에 현혹된 참가자들은 게임을 계속하려 한다. 요즘 한국의 노동정책을 둘러싼 상황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 장면이 떠올랐다. 나 역시 이 게임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

"노사정위원회가 금방 정상 가동되지 않더라도 과도기를 거쳐서 임시적 대화 체제를 만들고 제 기능을 해서 중요한 일 수행하기 바랍니다. 노사정위 위상을 좀 더 다르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 정부도 그에 맞게 긍정적으로 임할 생각입니다. 어느 방향이든 여러분이 합의해 주시면 그 합의를 정부도 다른 어떤 규범보다 존중해나가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양 노총 위원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고, 노사정이 합의한 내용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다. 얼마 뒤 그동안 얼어붙었던 노사정 대화 채널이 복원되기 시작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노동계가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고, 국회 과반을 집권 여당이 쥐고 있기에 대통령 메시지는 꽤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는 그동안 준비해 왔던 자신의 법안을 전격적으로 입법예고 하게 된다. 정부 법안에는 그동안 노동계가 일관되게 반대해 온 기간제 사용기간 확대와 파견 업무 확대가 모두 포함되었다. 양 노총은 곧바로 항의성명을 발표했고, 사회적 교섭과 노사정 대화 실효성에 강력한 문제를 제기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복붙’된 시나리오

놀라지 마시라. 이 스토리는 이재명 정부 메가프로젝트 얘기가 아니다. 벌써 22년 전, 비정규직 관련 입법을 놓고 노무현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앞서 인용한 대통령 메시지는 2004년 5월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인사말이다. 그래서 '경사노위' 대신 '노사정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2004년 4월 총선에서 국회 과반을 확보한 노무현 정부는 곧장 비정규직 관련 입법으로 나아간다.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는 기간제법 제정과 파견법 개악이 핵심 내용이었다. 2001년에 노사정위 탈퇴를 공식화한 민주노총은, 3년 만에 노사정 대화 복원 가능성을 시사하며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노사정위 복귀를 원했지만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노사정위 대신 새로운 교섭구조를 요구했고 이를 노무현 대통령이 수용하게 된다. 5월 31일, 청와대에서 양 노총 위원장 포함 노사단체 대표를 만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를 던진 직후인 6월에 '노사정 대표자회의'라는 새로운 대화 기구가 출범하기에 이른다.

대화 속도보다 빠른 입법 속도

6월 4일과 7월 5일, 연달아 1차·2차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열렸지만, 그다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입법 추진을 중단할 생각이 없었고, 이미 부처 간 법안 논의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7~8월 중에는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기간제 사용기간 '2년'이라는 초안이 '3년'으로 연장하는 개악이 추가되는 일도 있었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항의 차원에서 8월 6일로 예정된 3차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연기시켰고, 8월 31일 열린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는 '사회적 교섭에 관한 건' 의결을 유보하게 된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민주노총의 항의에 브레이크가 아니라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았다.

9월 8일, 국무총리 주재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정부 비정규직 입법안을 확정했고 다음 날인 9월 9일 공식 발표까지 하게 된다. 노동계가 즉각 반발했지만 바로 다음 날인 9월 10일, 정부안 입법예고를 밀어붙이며 법제화 절차를 본격화하게 된다.

얼마나 전격적이었는지 토요일인 9월 11일, 긴급하게 노동부장관과 양 노총 위원장, 경총 회장 등 노사정 대표 4자 회동이 열린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절대 중단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런 성과 없이 4자 회동이 종료되자, 이틀 뒤인 9월 13일 그동안 노사정위에 참여해 왔던 한국노총조차 노사정위 비정규직특위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

같은 각본, 다른 배우

22년이 지난 2026년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쏙 빼닮은 역사의 전개 과정이다. 대통령이 직접 양 노총을 만나 '노사정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경사노위 대신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인 10월 20일 여당의 입법안이 발의된 것까지 완벽한 복사판 아닌가. (아래 표)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2004년 노무현 정부와 2026년 이재명 정부 비교 표. ⓒ오민규

기간제 사용기간 확대, 파견근로 허용범위 확대 등의 쟁점까지도 22년 전 논쟁과 판박이다. 차이가 있다면 2004년은 정부가 직접 법안을 발의했고, 이번에는 여당 의원 발의라는 점,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합의 존중 발언에서 정부안 입법예고까지 102일 걸린 반면, 2026년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양 노총 차담 이후 법안 발의까지 47일로 절반 이상 단축된 것 정도?

역사의 물꼬를 돌린 비정규직 투쟁

2004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한국노총의 비정규특위 탈퇴 선언에 이어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추진 중단 선언이 진행되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거침없이 전진했다. 9월 16일, 당당하게 열린우리당 당사에서 정부 입법안에 대한 공청회·토론회까지 강행하기로 한 것.

그런데 바로 그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 하나가 역사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된다. 토론회에 참석한 비정규직노조 대표자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며 퇴장한 후,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 면담을 요구하며 의장실 점거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부·여당은 자신의 법안을 '비정규직 보호법'이라 포장했고, 양 노총의 반발을 마치 배부른 정규직 귀족노조의 투정처럼 취급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호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속과 해고를 각오하고 직접행동에 나선 것이다.

농성에 참여한 비정규직 대표자들은 10여 명에 불과했지만, 열악한 처지의 당사자들이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정부·여당 입장을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행동에 용기를 얻은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열린우리당 지역당사 점거농성을 추가로 조직했다.

게임 흔들었지만, 끝내 바꾸지 못한 결말

농성을 시작한 것은 민주노총 소속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었지만 이내 한국노총 비정규노조들도 정부 입법 반대에 같은 뜻임을 천명했다. 비정규직으로부터 시작된 단결의 기운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9월 21일 열린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는 만장일치로 사회적 교섭 추진 중단과 함께 정부 입법에 맞선 총파업 투쟁을 의결하게 된다.

다음 날인 9월 22일, 점거농성 중인 비정규직 대표자들과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 면담이 성사되었고, 현재 입법안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점 및 향후 충분한 의견수렴과 대화를 거치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해제했다. 농성이 진행된 건 딱 1주일이었지만 정부의 일방독주를 잠시라도 멈춰 세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2003년 화물연대의 파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이 이어지며 싹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정말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폭풍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울산과 포항에서 플랜트 노동자들, 전국의 덤프트럭 기사들, 하이스코·하이닉스 사내하청 노동자들, 기륭전자, 이랜드·뉴코아 그리고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

이부영 의장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 입법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항도 수위를 높였고, 민주노총의 총파업도 2004~2006년 사이 10여 차례 전개됐다. 하지만 결국 2006년 11월 30일,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안은 국회를 통과했고 지금의 기간제법·파견법이라는 악법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2004년 9월, 노무현 정권의 비정규법안 폐기를 요구하며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에 나선 전국비정규연대회의 활동가들의 모습.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오늘은 두 형님들께 술 한 잔 올리며

이재명 정부는 메가프로젝트와 '초광역특구법'이라는 이름으로 기간제법·파견법을 더 개악시키려는 시도를 이제 막 시작했다. 2004년이나 지금이나 정부는 '대화'를 강조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때나 지금이나 대화의 장 밖에서 결정이 이뤄지고 집행된다. 양 노총이 반발하면 그때마다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며 달래지만, 금새 '립 서비스'였음이 드러나곤 한다.

"저는 이 게임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것은 이번 게임에서 또 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아니다. 이미 한 번 실패한 게임인데도,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똑같은 규칙으로 게임을 다시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정책 결정 과정의 잡음 방지용으로, 설거지용으로 정부가 설계한 게임의 규칙 말이다.

다만 22년 전에도 그랬듯이, 게임의 결말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만이 아니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행동이 역사의 물꼬를 돌렸듯이, 게임의 규칙을 바꿀 힘은 결국 노동자들 자신에게 있다. 게임을 해봤다는 경험만으로 성기훈이 참가자들을 구할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게임을 잘하는 법'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 자체를 바꾸겠다는 결심이다.

2004년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에 함께 했던 고성진 보험모집인노조 위원장, 류재운 애니메이션노조 위원장이 지난 1~2년 사이 병마와 싸우다 끝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오늘은 두 형님들께 술 한 잔 올리며 여쭤봐야겠다. 우리가 다시 그 결심을 해낼 수 있을까요? 아니, 형님들은 22년 전 그때,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실 수 있었던 거요?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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