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걷고, 먹고, 산다…황리단길이 관광객 붙잡는 법

이원재 기자 2026. 10. 2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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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체류를 소비로 연결한 지역의 전략을 분석합니다.

한낮 최고기온이 39도를 웃돌았지만 대릉원 서문에서 황리단길로 이어지는 거리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이제는 황리단길을 걷는 관광객 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주 대표 길거리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황리단길 한 소품점 대표는 "여행하면서 무엇을 담아가고 싶어 하는지가 다양해졌다"며 "관광객이 어떤 장소를 좋아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를 고민해 지역 모습을 다양하게 담은 제품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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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관광’에서 ‘쓰는 관광’으로
(2) 경주 황리단길
신라 유적 옆 상권 따라 관광객 발길 이어져
얼굴빵·체리 굿즈 등 지역색 살린 상품 눈길
자생 상권에 행정 지원 더해 머무는 관광지로

관광객 체류를 소비로 연결한 지역의 전략을 분석합니다. 경남 관광이 '보고 떠나는 관광'을 넘어 지역경제에 실질적인 소비를 남기는 관광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합니다.

7월 말 경북 경주시 황남동. 한낮 최고기온이 39도를 웃돌았지만 대릉원 서문에서 황리단길로 이어지는 거리는 관광객으로 붐볐다. 양산을 받쳐든 가족과 선글라스를 쓴 연인, 여행가방을 끌고 온 외국인 관광객이 뜨겁게 달궈진 골목을 오갔다.

골목을 걷는 관광객 손에는 먹거리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십원짜리 동전을 큼지막하게 본뜬 십원빵을 반으로 가르자 안에 든 치즈가 길게 늘어졌다. 일행끼리 빵을 나눠 먹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든 채 소품점 쇼윈도를 들여다보다 양산을 접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도 이어졌다.

경주는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 첨성대 등 신라 천년 유산만으로도 오래전부터 이름난 관광도시였다. 황리단길은 여기에 이전과 다른 여행 방식을 더했다. 문화유산을 본 뒤 떠나는 대신 바로 옆 골목에서 먹고 마시고 물건을 사며 더 머무르게 하는 구조다.
관광객들이 7월 말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리단길을 걷고 있다. /이원재 기자

폭염에도 걷게 하는 거리

황리단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을 전후해서다. 대릉원 옆 황남동 포석로 일대 오래된 주거지역에 한옥을 활용한 숙박시설과 카페, 음식점, 사진관 등이 하나둘 생겼다. 1960~1970년대 건물과 한옥 모습은 남겨두면서 젊은 감각을 입힌 가게들이 들어섰고, 방송과 누리소통망(SNS)에서 알려지면서 '황남동 경리단길'이라는 뜻으로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처음에는 포석로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상권도 골목 안으로 확장됐다. 카페와 식당뿐 아니라 사진관과 소품점, 기념품점 등이 늘면서 황리단길 자체가 경주 여행 목적지가 됐다. 한국관광공사도 황리단길을 대릉원·첨성대와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경주 대표 관광지로 소개하고 있다.

대릉원 서문을 나오면 이 상권이 곧바로 이어진다. 대릉원을 보고 차를 타고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는 대신 십원빵을 사 먹고, 몇 걸음 옮겨 소품점을 구경하다 카페에서 더위를 식힌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옷가게와 음식점, 또 다른 소품점이 이어진다.

39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양산을 쓴 관광객들은 좀처럼 거리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문화유산 관람과 식사·쇼핑·휴식이 별개 동선으로 떨어져 있지 않고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범위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경주 관광 지형 변화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경주시 제5회 관광실태조사에서 불국사와 동궁과 월지는 각각 59.6% 방문율로 여전히 대표 관광지였지만 황리단길도 52.8%를 기록했다. 대릉원은 50.0%였다. 전통적인 역사문화 관광지와 새롭게 형성된 상권이 나란히 주요 방문지에 오른 것이다.

관광 목적도 문화재에만 머물지 않는다. 올해 1~4월 경주 주요 관광지와 음식점·숙박시설 등 길안내 목적지 검색량을 보면 음식이 69만 5742건으로 역사관광 32만 2876건 두 배를 웃돌았다. 숙박도 30만 9858건이었다. 신라 유적을 보러 오는 도시에서 먹고 쉬고 머무는 수요가 함께 커지고 있는 셈이다.
경주 황리단길 한 소품숍에서 관광객이 경주 문화유산과 지역 이미지를 활용한 기념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원재 기자

경주를 담은 먹거리와 소품

황리단길은 대형 프랜차이즈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기성품만으로 구성된 일반 상점가와 차이가 있다. 거리 곳곳 작은 상점들이 경주 문화와 특산물을 각자 방식으로 다시 풀어낸다.

대표적인 상품이 십원빵이다. 십원짜리 동전 모양에 치즈를 넣은 십원빵은 2019년께 황리단길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뒤 SNS와 방송 등을 통해 알려졌다. 이제는 황리단길을 걷는 관광객 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경주 대표 길거리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경주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먹거리로 풀어낸 사례는 또 있다. 석굴암과 '천년의 미소' 등 신라 문화재 이미지를 본뜬 이른바 '얼굴빵'도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관광객들은 얼굴빵을 자신의 얼굴 옆에 대거나 대릉원 등 경주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먹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주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직접 먹고 사진으로 남기는 여행 인증 소재로 소비되는 셈이다.

얼굴빵 업주는 "경주 문화재를 이용해 빵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며 "SNS에서 이렇게 알려질 것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경주에 오면 떠올릴 수 있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보니 여행객들이 재미있어 하고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특산물도 관광상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소품점에는 경주 특산물인 체리를 활용한 상품이 가득했다. 체리 엽서와 티셔츠, 양산부터 샴페인잔·위스키잔·소주잔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한쪽에서는 경주 체리를 활용한 전통주와 스파클링주를 판매했고 빨갛고 둥근 체리는 아이스크림과 각종 소품 디자인에도 녹아 있었다.

매장 직원은 "국내 체리 생산량 40% 이상이 경주에서 나오고 경주역 인근에도 체리 농가가 많다"며 "처음에는 농가와 협업해 체리 전통주를 만들었고 이후 스파클링주와 여러 상품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어 "여행객들이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술이나 기념품을 많이 찾고 구매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한 관광객은 "여행할 때는 다른 지역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보다 그곳에서만 먹거나 살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편"이라며 "경주 특산물로 만든 술처럼 지역색이 있는 상품은 기념으로 하나쯤 사게 된다"고 말했다.

황리단길 소품숍들은 이런 수요를 여행 경험을 담아가는 상품으로 풀어낸다. 첨성대와 대릉원, 신라 석탑과 불상은 엽서와 노트, 마그넷, 키링으로 모습을 바꾼다. 첨성대를 그려 넣은 성냥이나 대릉원을 담은 마스킹테이프처럼 일상에서 쓸 수 있는 물건도 있고, 석굴암과 반가사유상을 인기 캐릭터와 결합한 경주 한정판 굿즈도 등장했다. 관광객이 여행지에서 본 경주 풍경과 문화유산을 가방에 달거나 책상 위에 두고 일상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황리단길 한 소품점 대표는 "여행하면서 무엇을 담아가고 싶어 하는지가 다양해졌다"며 "관광객이 어떤 장소를 좋아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를 고민해 지역 모습을 다양하게 담은 제품을 계속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신라 유산은 그대로 있지만 이를 소비하는 방식은 달라졌다. 문화재는 빵과 소품 소재가 되고 지역 특산물은 술과 아이스크림, 생활용품으로 바뀐다. 관광객은 경주를 눈으로만 보고 떠나는 대신 먹고, 마시고, 일상에 가져갈 물건으로 담아간다.
경주 황리단길 얼굴빵 매장에 관광객들이 얼굴빵을 활용해 찍은 인증사진 예시가 걸려 있다. /이원재 기자

민간이 키운 상권, 행정이 길을 잇다

황리단길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간이 먼저 상권을 만들고 행정이 이를 뒤에서 뒷받침한 구조가 있다. 황남동 일대 비교적 낮은 임대료를 바탕으로 젊은 창업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앞세운 카페와 식당, 사진관 등을 하나둘 열면서 상권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대릉원과 첨성대를 찾던 관광객이 자연스럽게 유입됐고, 입소문을 타면서 황리단길을 찾는 사람도 빠르게 늘었다.

상권이 커지고 관광객이 몰리자 행정도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뒷받침에 나섰다. 관광객과 차량이 뒤섞이며 불편이 커지자 경주시는 황리단길과 동부사적지를 잇는 도로 차로를 줄이고 일방통행을 도입했다. 일부 구간은 인도 폭을 최대 6m까지 넓혔다. 2020~2022년 보행환경 개선을 거치면서 민간이 만들어낸 상권과 주변 문화유산을 걸어서 오가기 좋은 동선으로 연결했다.

김남현 동국대 교수는 "황리단길은 의도적으로 조성된 관광지라기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곳"이라며 "새로운 형태 상점들이 생기고 대릉원 등을 찾던 관광객들이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상점 자체가 다시 사람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공간을 '무슨 길'로 조성하겠다며 행정이 먼저 나선다고 해서 관광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생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시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행정은 리딩하기보다 서포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원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