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녕 더봄] 감정의 웅덩이에 빠지지 않기
마음이 흔들려도 삶의 방향을 잃지 않는 방법

아들에게,
얼마 전 한 회사에 자문을 하러 갔다가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어.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라운지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회사 직원과 방문한 고객이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어. 그런데 인사가 끝나자마자 직원이 울기 시작하는 거야. 고객은 영문도 모른 채 당황했고 직원은 몇 차례 자리를 오가며 감정을 추스르려 했지만 결국 미팅을 하지 못하고 떠났어.
나는 그 직원이 왜 울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어. 조금 전 근처 테이블에서 선배에게 상사와의 갈등을 털어놓고 있었거든. 자신이 생각하기에 부당한 이유로 꾸중을 들었고 자존심도 크게 상한 모양이었어. 아마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채 고객을 만나다 보니 눈물이 터져 버린 것 같아.
그 직원이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을지 이해가 됐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객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 누구나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은 있지만 그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때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생각해 봐야 하니까.
아들아, 네가 그 직원의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니?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애써 일해도 인정받지 못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를 받거나 부당한 꾸중을 듣는 순간이 있을 거야. 내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답답한데 상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도 있겠지.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감정은 때로는 목줄을 놓친 개처럼 미쳐 날뛰기도 하니까.
만약 그런 순간이 네게 온다면 엄마는 두 가지를 묻고 싶어. 너의 꿈은 무엇이니?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회사에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니?
물론 먼저 네 마음부터 충분히 들어주고 싶어. 얼마나 억울했는지, 그런 상사와 일하면서도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말이야. 네가 느끼는 감정은 네 것이니 누구도 함부로 옳고 그르다고 판단할 수 없어.
다만 그 감정이 조금 잠잠해지면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면서까지 이곳에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 지금 하는 일이 네 전문성을 키우고 있는지, 원하는 경험을 쌓는 과정인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과 연결되어 있는지 말이야.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가려는 목적지를 떠올려라
목적지를 알고 걷는 사람과 그저 걷고 있는 사람은 힘든 순간을 대하는 마음이 다르거든.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은 길이 험해도 왜 걷는지 알아. 잠시 쉬어갈 수도 있고 다른 길을 찾아볼 수도 있지.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작은 오르막도 그저 힘든 길일 뿐이야.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야. 무조건 참고 버티라는 뜻이 아니야. 내가 가려는 곳을 알아야 지금의 어려움을 견딜 이유가 있는지, 방향을 바꿔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감정이 끓어오르는 순간에는 일단 그 상황에서 조금 떨어져 보렴. 잠시 자리를 벗어나거나 시간을 두고 다음 날 다시 생각해 보는 거야. 감정이 가장 뜨거울 때는 그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 쉽거든.
감정에 깊이 빠져 있을 때는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아. 마치 깊은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눈앞의 진흙만 보이고 그 안에서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되지. 억울했던 장면을 되풀이해 떠올리다 보면 그 일이 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기도 해.
하지만 잠시 그 자리에서 벗어나면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나를 응원하는 사람도, 내가 쌓아온 경험도,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도 다시 떠오르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할지 생각할 여유가 생기는 거야.
웅덩이에서 벗어나 마음의 균형을 찾아라
그래서 엄마는 네가 언제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 하나쯤은 곁에 두었으면 좋겠어. 네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도 좋고 아니면 취미 같은 그 무엇이라도 좋아. 마치 시소가 완전히 기울어졌을 때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다면,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거든.
그리고 네가 조금씩 더 성숙해진다면 한 가지 연습을 권하고 싶어. 나와 갈등을 겪는 사람의 행동을 가능한 한 선한 의도에서 바라보는 연습이야.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상사에게 무슨 선한 의도를 찾으라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 물론 모든 행동에 선한 의도가 있다고 믿을 필요는 없어. 부당한 행동은 부당하다고 말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어.
다만 상대의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거야.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혹시 자신의 기준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결과에 대한 책임 때문에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거지.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행동에 대한 내 해석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상대의 행동을 선한 의도로 바라보는 여유
엄마는 살아오면서 상대의 선한 의도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내게 손해로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상대를 무조건 이해하거나 참아주라는 뜻이 아니야. 상대를 미워하는 데 모든 마음을 쓰지 않으면서도 내 입장을 지키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지. 그 연습은 상대와의 관계뿐 아니라 내 감정을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
아들아, 사회생활을 하면서 너와 생각이 다른 사람,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때로는 부당한 대우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때마다 솟구치는 분노와 답답함이 너를 힘들게 하겠지. 엄마는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아. 다만 그 감정이 네 삶의 방향까지 결정하게 두지는 않았으면 해.
마음이 흔들릴 때는 이정표를 떠올리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의 어려움이 그 길에서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렴. 감정의 웅덩이에 빠졌다면 잠시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여유도 가져보렴.
큰 그릇이란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네가 만나는 어려움이 너를 작아지게 만드는 웅덩이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엄마가.
여성경제신문 최인녕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hellencho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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