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 질환의 원인 뿌리까지 뽑는다, 美 존슨앤드존슨이 반한 한국의 제약 기술

스타트업 인사이트. 스타트업 대표를 취재하면서 나눈 대화 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바이러스는 질병의 원인이지만, 바이러스 속에 치료의 실마리가 있기도 합니다. 바이러스는 고작 몇 개의 단백질로 면역 체계를 교묘하게 피하거나 몸의 세포를 교란시킵니다.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유비퀴틴 시스템을 조작하는 것이죠. 저는 여기서 신약 가능성을 짚어냈습니다.”
세포 안에는 불필요하거나 손상된 단백질을 분해하는 장치가 있다. 이 과정은 ‘딱지 붙이기’에서 시작된다. 폐기가 필요한 단백질에는 ‘유비퀴틴’이라는 폐기물 딱지가 붙는데, 그 딱지를 붙이는 게 E3라는 유비퀴틴 연결효소다.
인경수 대표가 이끄는 프레이저테라퓨틱스(이하 프레이저)는 세포의 자체적인 청소 시스템을 빌려 질병 유발 단백질을 없애 버리는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 기반 신약 개발사다. 핵심 기술은 TPD 플랫폼 ‘SPiDEM®’(스피뎀)이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에 폐기물 딱지가 붙게 만들어 세포가 스스로 치우도록 유도하는 기술이다. 스피뎀은 기존 TPD 기술로는 접근하기 힘들었던 덩치 큰 응집 단백질까지 제거하도록 유도한다.

프레이저는 기존 시장의 빈틈을 공략하며 TPD 분야의 강자로 부상했다. 2021년 시리즈A에서 170억원, 2025년 존슨앤드존슨(J&J)의 투자 조직 JJDC가 주도한 시리즈B에서 290억원, 올해 7월 프리 기업공개(IPO)에서 약 500억원을 유치했다. JJDC의 투자는 글로벌 제약사인 J&J의 투자부서가 한국 기업에 투자한 첫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대외적으로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2022년 서울시·서울바이오허브와 BMS가 공동 주최한 ‘서울-BMS 이노베이션 스퀘어 챌린지’에서 우승했다. 최근에는 ‘서울바이오허브-삼성바이오에피스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의 참여 기업으로 선정됐다. J&J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JLABS 멤버사로도 활동 중이다.
인 대표는 평생을 생명 현상을 분석해 질병을 해결하는 데 매달린 학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물과학을 공부한 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면역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질병 중에서도 바이러스에 파고들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남가주대(USC) 의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세포가 이를 감지하고 방어 체계를 가동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2012년부터는 경희대 약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염증 치료제와 항바이러스제를 연구했다.
그는 기존 TPD 기술이 신체 내 700여종의 E3 중 극히 일부만 활용한다는 빈틈을 파악하고, 세포 본연의 시스템에서 답을 찾았다. 뇌까지 도달해 엉긴 단백질을 제거해야 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을 타깃으로 시작한 이들의 기술은 현재 혈액암과 유방암 등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는 스피뎀이 단순히 유망한 기술을 넘어, 기존 치료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창업 초기에는 ‘화합물에 폐기물 표지를 붙이는 게 말이 되냐’는 냉소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증명한 끝에 굵직한 성과를 이끌어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 ‘TPD 분야에서 눈에 띄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는 인지도도 얻어냈습니다. 저희 기술로 만든 신약이 환자에게 닿는 일상을 반드시 현실로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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