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출품’ 논란 유홍준 물러나… “박물관·미술관 진흥법 재정비 시급”
‘셀프 출품’ 논란을 빚어온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1일 사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유 관장이 제출한 사직안을 재가했다. 지난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한 지 1년 3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한 것이다.

유 관장은 이날 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내주신 깊은 신뢰와 박물관 직원들이 쌓아 올린 가치가 저의 개인적인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모든 비판은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그는 “실추된 박물관의 명예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제가 관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앞서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한 그릇의 밥도 나라의 은혜)’ 유묵을 애국지사 박원근 지사의 글씨로 소개했다가 일제강점기 고위 관료를 지낸 박중양의 글씨로 밝혀져 철거했다. 이후 해당 작품이 유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부실 검증과 이해 충돌 논란에 휩싸였다. 유 관장은 이 유묵이 박중양의 글씨로 밝혀진 이후 “박물관 검증이 미흡했다”며 공식 사과할 때도 정작 자신의 소장품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유 관장은 2019년 옥션에서 5만원에 구입한 이 글씨를 애국지사 박원근 작품으로 이른바 ‘셀프 검증’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나 자신이 서예사 전공자라서 확신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유 관장이 전시 개막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 자신의 소장품을 추천해 전시 목록에 포함시키고, 마치 타인의 소장품인 것처럼 ‘대(代)’ 자를 적어 서명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기관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유 관장은 이틀 전인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 때만 해도 두 차례 머리 숙여 사과하면서 “박물관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감 이후 정치권과 문화계를 중심으로 그가 부적절한 처신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결국 유 관장은 이날 오전 사의를 표명했고, 이로부터 불과 6~7시간 만에 이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배현진 의원은 “유 관장이 사임한 것은 시점상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종합감사를 단 이틀 남겨두고 기관 최종 결재자로서 책임져야 할 일들을 마무리 짓지 않은 채 도중 하차한 전례는 적어도 차관급 이상에선 없던 일”이라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차관급 정무직이다.
이번 사태로 국립중앙박물관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이해 충돌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기관장의 권위나 영향력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인 전시 검증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박물관학)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윤리 규정을 바탕으로 국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등 관련 법령과 국립중앙박물관 내규를 기본부터 재정비해야 한다”며 “관장은 행정·인사·재정 및 중장기 발전 계획 등 기관 경영에 집중하고, 전시 기획과 검증은 학예실장과 학예직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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