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가수서 ‘케데헌’ 조이로… “‘예은’이란 이름 자랑스러워”

윤수정 기자 2026. 10. 2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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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레이 아미, 12년 만에 귀향
이재 결혼식 참석·경복궁 찾기도
“어떤 음악하든 정체성 잊지 않아"
지난 15일 한국 언론과의 첫 공식 인터뷰를 진행한 레이 아미. /유니버설뮤직

“모든 이민 세대가 그렇듯 제 부모님도 정말 피땀 흘려 일하셨죠. 그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전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유니버설뮤직 사옥에서 만난 한국계 미국인 가수 레이 아미(31)가 울음이 꾹꾹 눌러 담긴 영어를 내뱉다 결국 눈물을 쏟았다. 레이는 이달 초 발표한 신곡 ‘투라우드’(2LOUD)를 비롯해 데뷔 초부터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에 본명 ‘사라 예은 리’를 함께 써왔다. “어릴 때 엄마한테 혼날 때 불리던 이름이라 꺼렸던” ‘예은’이 “이제는 가족의 역사가 담긴 이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는 “그 역사의 모든 조각이 절 여기로 이끌었다. 제 한국인 혈통이 정말 자랑스럽고, 제 가장 좋은 부분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느낀다”며 “이 나라가 제게 가르쳐준 것들에 평생 빚을 지고, 언제나 제 뿌리와 문화를 드높이며 살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15일 한국 언론과의 첫 공식 인터뷰를 진행한 레이 아미. /유니버설뮤직

2019년 데뷔한 레이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걸그룹 헌트릭스 멤버 ‘조이’의 가창을 맡으며 인생이 바뀌었다. 작년 초만 해도 “각종 청구서를 어떻게 막을지 두려웠던” 무명 가수. 하지만 “하루아침에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녹음을 하러 가는 삶이 되고서 더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레이는 “케데헌 덕분에 음악계에서 버려졌다 느끼며 품었던 내 음악 속 분노가 해소됐다”고 했다. 자연스레 이른바 ‘F워드’(영어 욕설)가 난무했던 이전 곡들과 달리 이번 신곡은 한결 정제되고 경쾌한 팝 분위기가 됐다. 제목은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시끄럽다(too loud)는 타박과 한국인 가정 특유의 ‘안 돼’라는 말에 상처받은 경험”을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끌어안은 것이다.

스스로를 “157㎝의 시끄러운 아시아 여성” “작은 여왕(Short Queen)” 등으로 소개해 온 레이는 이 곡을 “케데헌 성공 뒤 새롭게 하는 자기소개”라고도 했다. 그는 “(함께 헌트릭스 멤버를 연기한) 이재, 오드리 누나와 자매같은 관계를 맺고 케데헌 활동을 펼치면서 제 안의 많은 상처가 치유되고, 본래의 밝은 모습이 다시 나오게 됐다”며 “어떤 음악을 하든 전 뼛속까지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밖에 없고, 이를 사랑한다는 걸 다시금 체감했다”고 했다.

신곡 활동과 더불어 헌트릭스 멤버 ‘루미’의 가창자 이재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12년 만”이다. 다만 레이는 “팬데믹과 여러 사정으로 오래 찾지 못했을 뿐,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여름방학마다 저와 언니를 한국에 자주 데려왔다”며 “항상 한국인이란 것을 잊지 않길 바라셨다”고 했다. 현대 계열사에 다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택한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메릴랜드에 정착했다.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지만, “(한국을 떠날 때와 같은) 초등학생 수준의 한국어는 여전히 한다”고 했다.

지난 17일 이재(가운데·케데헌 루미 역)의 서울 결혼식에 모인 레이 아미(맨 왼쪽·조이)와 오드리 누나(미라). /인스타그램

한국에 오자마자 “어린 시절 살았던 구의동 옛집”에 들러 사진도 찍었다. 레이는 “영화 ‘기생충’에 나올 법한 반지하집이었다”며 “고국의 상징이자 자랑스러운 트로피 같은 존재로 한국에 돌아오게 된 게 정말 영광”이라고 했다. “그 사실이 감격스러워 한국에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다”는 그는 “이후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거닐고 케데헌에 등장한 남산을 찾으며 한국과의 재회를 만끽했다”고 했다.

케데헌의 성공은 음악으로 단절됐던 부모님과의 관계도 다시 이어줬다. 레이는 독실한 기독교인 부모님 밑에서 “힐송(기독교 찬송가)만 들으며” 자랐다. 그러다 “반발심에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톡식’ 등 부모님이 기겁하시는 자극적인 팝에 빠졌다”고 했다. 각종 애니메이션과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 등 K팝도 갑갑함에서 벗어나는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예명 ‘레이 아미’도 좋아하던 만화 ‘세일러문’에서 “태극기처럼 붉은색(레이)과 파란색(아미)을 상징색으로 삼던 두 캐릭터”에서 따왔다. 그는 “K팝은 특히 한국어를 잊지 말기를 바라셨던 부모님과 그나마 타협 가능한 음악이었다”며 웃었다.

첫 데뷔 곡 ‘스노 콘’(snow cone)을 낼 땐 “부모님이 알지 못하게, 제 모든 소셜미디어에서 부모님을 철저히 쫓아냈다(Kick out)”고도 했다. “대학 교육까지 마친 제가 번듯한 정규직을 다니길 바라셨던 부모님은 가수 활동을 심하게 반대하셨죠. 하지만 아무리 혈연이라도 제 음악을 방해하게 둘 순 없었어요. 그만큼 음악이 제겐 첫사랑이자 생명 같았죠.”

그럼에도 케데헌 성공 직후 가장 먼저 떠올린 건 ‘K효도’였다. 레이는 “수입으로 부모님 집 담보 대출금을 전액 갚아드린 것이 가장 뿌듯하다. 부모님도 이젠 제 음악의 든든한 응원자”라고 했다. “한때 음악이 가족 사이를 멀어지게도 했지만, 결국 우리를 치유해주고 다시 이어준 거죠.” 이번이 한국 언론과 하는 첫 공식 인터뷰라고 밝힌 그는 “부모님 세대에게 중요한 한국 신문에 제 이야기가 실리면 무척 기뻐하실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지난해부터 레이는 ‘케데헌’ 팀과 함께 주제가 ‘골든’으로 그래미상, 오스카 주제가상 등 미국 유명 대중음악상을 휩쓸었다. 무엇보다 “미국인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 무대에 오른 것이 가장 고무적이었다”고 했다. “축제 현장에서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함성이 인이어를 뚫고 들려오는데, 과거 칠면조와 김치가 한 상에 올라가던 우리 집 ‘이민자의 추수감사절 식탁’ 풍경이 떠올랐다”고 했다. “어릴 때 제가 학교에 싸서 갔다가 ‘으~ 이게 뭐야’라며 괴롭힘당했던 김밥이 이젠 모두가 원하는 음식이 된 게 정말 믿기지 않아요.” 지난 2월 그래미 시상식에서 무궁화를 형상화한 의상을 입은 그는 “이후에도 한국적인 것들을 무대에 계속 접목하고 싶다”고 했다.

‘케데헌’ 속편 제작 상황에 대해선 “발설한다면 넷플릭스가 저를 죽이려 들 것”이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다만 “가상으로 바라본다면 헌트릭스 결성 과정이나 조선시대 악마 사냥꾼의 기원, 루미 아버지의 정체를 다루면 재미있을 것”이라고 했다. 향후 목표는 “리한나처럼 팬들이 앨범을 내달라고 애원하는 음악계 거물이자 패션 퀸”이 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애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을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제발 계속 애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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