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월드’의 첫 여성 단독 주인공
‘모녀 갈등’ 소재… 현실·비현실 오가
“여성적 세계, 작가도 고심했을 것”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77)의 신작 장편소설 ‘가호’(문학동네)가 21일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지난 7월 일본에서 출간된 지 사흘 만에 30만 부가 팔린 화제작이다.
전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후 3년 만인 이 소설은 ‘여성 단독’ 주인공이 등장하는 하루키의 첫 작품이다. 그간 하루키는 여성 인물을 부차적인 존재로 그리거나 남성의 시선으로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기에, 그가 쓴 첫 여성 주인공 소설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다.
주인공 ‘가호’는 스물여섯 살 동화책 작가다. 소개팅에서 면전에 대고 “솔직히 그쪽처럼 못생긴 상대는 처음”이라 말하는 남성 ‘사하라’를 만난 뒤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브라질 정글에서 ‘재규어’를 피해 일본으로 피신했다는 ‘개미핥기’ 부부가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고, 엄마는 갑자기 화려한 치장을 하기 시작한다. 가호의 어머니는 ‘흰개미 여왕’에 씌인 것으로 추정된다. 가호는 자신의 엄마를 죽이지 않고 흰개미 여왕을 처치하는 법을 모색한다.
‘해변의 카프카’와 ‘기사단장 죽이기’ 등에서 보아왔듯 ‘부친 살해’ 모티프는 하루키 소설에서 익숙한 서사적 장치다. 반면, 이번 작품은 ‘모친 살해’라는 낯선 모티프를 품었다. 일본 문학 비평가 시미즈 요시노리(清水良典)는 니혼게이자이신문 서평에서 “딸이 어머니와의 사이에 놓인 깊은 골을 넘어 화해에 이르는 이야기”라며 “여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미묘한 문제들을 다루며 작가 역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고심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썼다.
주인공의 성별 역전이 갖는 의미는 논쟁적 주제로 남을 전망이다. 하루키에게 여성의 내면이란 아직 충분히 탐색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아닐까. 주인공 가호가 어머니의 혼외정사 가능성에 집착하는 대목이나, 파자마를 풀어헤친 어머니의 가슴을 묘사하는 장면 등은 의아하게 읽힌다. 이를 주인공이 자신의 출생과 모성, 여성의 노화를 인식해 가는 과정으로 보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독자의 성별에 따라선 감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소설은 창작에 관한 메타 픽션으로도 읽힌다. 주인공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기묘한 일을 겪으면서도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좋은 이야기에는 유용성이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고, 개미핥기의 입을 빌려 “(무엇을) 받아들이지 내칠지 판별해서 좋은 이야기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게 당신의 역할”이라는, 작가로서의 책임도 강조한다.
하루키식 세계관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비평서 ‘외롭지만 힘껏 인생을 건너자, 하루키 월드’에서 장석주 시인이 제시했던, 하루키 세계의 도식 그대로다. 하루키는 세계를 현실과 비현실로 나누고, 지하 세계(비현실)에 현실의 악(惡)을 만드는 존재가 있는 것으로 그린다. 우연히 지하 세계로 끌려 들어간 주인공이 그 악과 싸우는 플롯이 초기부터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장 시인은 “독자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게임 같은 장치인데, 이 작위성이야말로 하루키의 장점이자 한계”라고 했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하루키에 대한 기대감은 내년에 더 커질 전망이다. 스웨덴 아카데미(한림원)의 최근 경향상 내년에는 아시아 남성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런 시기에 또 하나의 논쟁적 신작을 내놓은 하루키의 작가적 계산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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