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노후소득 보장 강화의 계기로 만들어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 소득빈곤율은 39.7%로 회원국 중 1위이며, OECD 평균(14.8%)의 2.7배에 달한다. 그동안 국민연금이 노후소득 보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현행 노령연금 수급액(월 70만원 수준)만으로는 최소생활비(월 140만원 수준, 2024년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와의 격차를 메우기 어렵다. 부족한 노후소득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다층 노후소득 보장체계의 한 축인 퇴직연금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05년 도입된 퇴직연금은 2025년 말 기준 적립금 규모가 501조원으로 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퇴직연금 적립금 장기추계(2024년)에 따르면 2055년에는 최대 약 5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계약형 중심의 현행 퇴직연금 제도는 저수익·고비용 구조에 갇혀 있다. 최근 5년간 퇴직연금 연평균 수익률은 3.29%에 그친 반면, 2025년 기준 금융기관 수수료는 연간 약 2조원 수준이다. 연금 수령률도 16.5%에 머물러 퇴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은 취약한 상태다. 이러한 문제는 투자 경험이 부족한 개인에게 운용을 맡기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에 노사정은 2026년 2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합의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개인이 아닌 자산운용 전문기관이 집합적으로 기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운용 주체에 따라 금융기관이 중심이 되는 ‘금융기관 개방형’, 기업들이 모여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연합형’, 그리고 중퇴기금과 함께 비영리 공공기관이 집합적으로 운용하는 ‘공공기관 개방형’으로 나뉜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금형 퇴직연금이 활성화돼 있다. 미국의 401(k)은 우수한 성과로 미국 노후소득 보장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다. 퇴직연금이 발달한 호주에서는 공공부문 퇴직연금 기금(Public Sector Super Funds)이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공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ATP가 퇴직연금도 함께 운용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정부가 설립한 비영리퇴직연금기관인 NEST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 사업장의 퇴직연금 기금을 조성해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지난 2일에는 노사정 합의 내용을 반영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이용우 의원 대표로 발의됐다. 개정안에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과 함께 국민연금공단 등 공적연금 관리기관이 퇴직연금 시장에 참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대규모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한 능력과 경험이 있는 공적연금 관리기관이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에 참여한다면,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조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 39년간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에도 필수적인 장기 관점의 자산 배분, 분산투자 전략, 리스크 관리 경험과 인프라를 구축해왔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10.51%로 같은 기간 퇴직연금 수익률(3.29%)의 3배 수준이다.
아울러, 전국 112개 지사를 활용해 국민연금, 퇴직연금, 기초연금을 아우르는 ‘원스톱 노후설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일하는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소중한 노후 자산이다. 대규모 기금 운용 경험과 인프라를 가진 공적연금 관리기관이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하게 된다면, 퇴직연금 시장의 메기 역할을 수행해 전체 퇴직연금 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퇴직연금 시장의 체질 개선을 넘어, 더 많은 근로자에게 폭넓은 선택의 기회와 실질적 혜택을 제공해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정림 국민연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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