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커서 쓰지 못한 이야기 있다면… ‘중간’에서 시작하라

권지담 기자 2026. 10. 2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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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는 읽고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내 안의 이야기가 깨어나고, 기어이 그 글에 응답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대해서요.

내가 전해 들은 아버지와 기억하는 아버지, 병을 얻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그사이의 화해와 사랑, 죽음 이후의 이야기까지.

무언가를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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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글쓰기]다 알지 못한 채로 쓰기, 큰 이야기를 쓰고 싶을수록 내가 쓸 만한 크기로 줄여라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은행잎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누가 끼워두었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 알지 못해도 글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한 참이지만, 남의 이야기는 역시 궁금하네요. 2026년 10월 경희대 중앙도서관에서. 박은지 제공

지난달에는 읽고 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가 내 안의 이야기가 깨어나고, 기어이 그 글에 응답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대해서요. 저도 추석 연휴에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문학동네, 2026)를 펼쳤습니다. 연휴의 느긋함에 팬심까지 더해 설레며 읽었어요. 그러다 곧 눈물 콧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정말이지 1부에서는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김애란 작가는 예기치 않은 병을 얻은 아버지와 그로 인해 달라진 가족의 일상을 서술하며,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삶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읽는 내내 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쓰고 싶어졌어요. 지난달 이야기한 그 순간이 제게도 찾아온 거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할 말이 너무 많았어요. 아버지가 처음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부터 써야 하나. 아니지,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부터 써야 해. 내가 전해 들은 아버지와 기억하는 아버지, 병을 얻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그사이의 화해와 사랑, 죽음 이후의 이야기까지. 이렇게 불어난 세계를 어떻게 한 편의 글에 담을까요.

처음이 어딘지 헤매지 마세요

가족, 사랑, 이별, 죽음, 실패, 고향…. 글을 쓰려고 할 때 종종 떠올리는 주제입니다. 그런데 막상 쓰려면 너무 커서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처음을 찾아 헤맵니다. 이 일을 설명하려면 그 전에 있었던 일을, 그 일을 이해시키려면 또 그 전의 사건을 말해야겠지? 어느새 자서전 한 권을 쓰고 말아요. 삶을 뒤흔든 경험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독자가 오해할까봐 설명과 배경, 앞뒤 사정을 자꾸 보탭니다.

202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앤 카슨의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말을 읽었습니다. 새 책을 쓸 때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질문에 카슨은 “중간부터 시작해요. 제게 있는 유일한 규칙이에요”라고 답합니다. 무슨 뜻인지 되묻자 다시 말합니다. 중간을 찾아서 거기서 시작하라고요. 저는 그 말을, 처음이 어디인지 찾아 헤매지 말고 지금 쓸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하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자꾸 생각나는 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곳이 이미 이야기의 한가운데라는 것이지요.

카슨의 책 ‘녹스’(윤경희 옮김, 봄날의책, 2022)를 떠올리면 그 말이 더 가깝게 들립니다. 22년 동안 만나지 못하다 세상을 떠난 오빠를 애도하며 만든 책인데요. 카슨은 오빠가 남긴 편지와 가족사진, 기억의 조각을 모으고, 죽은 형제를 애도하는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시를 한 단어씩 번역하며 오빠의 삶을 되짚어봅니다. 하지만 오빠가 가족을 떠나 지낸 시간 동안 무슨 일을 겪고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카슨은 거의 알지 못합니다. 대신 자신에게 남은 사진과 편지, 드문드문 기억나는 말들을 펼쳐놓습니다.

쓸 만한 크기로 쓰는 것

저도 그랬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고, 함께 살던 시절에도 아버지의 모든 시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쓰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죠.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이야기부터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삶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데 글만 완결된 이야기인 척할 필요도 없고요.

경험의 크기와 글의 크기는 같지 않습니다. 큰 이야기를 쓰고 싶을수록 내가 쓸 만한 크기로 줄여보세요. ‘아버지의 죽음’ 대신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임종실에서 손을 꼭 붙잡은 채 함께 들었던 노사연의 ‘만남’을 쓸 수 있습니다. ‘나의 유년 시절’ 대신 책상에 이불을 펴고 만든 아지트를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장면을 골라야 할까요. 여기서 또 욕심이 납니다. 한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을 찾으려고 하지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별것 아닌데 잊히지 않는 장면이면 충분합니다. 왜 하필 그 장면이 남았는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 ‘모르겠다’는 마음이 글을 쓰게 할 거예요. 모르기 때문에 써보는 것입니다.

떠오르는 장면 하나면 충분하다

김애란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울었던 까닭도 아버지가 그리워서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나는 아버지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내가 아버지라고 알던 사람에게도 끝내 모른 채 지나온 삶이 있지 않았을까. 제가 아는 아버지는 저의 아버지이고, 엄마의 남편이고, 가장 노릇을 제대로 못한 가장이었지요. 그 역할을 내려놓은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혼자 있을 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이제 와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닙니다. 정작 물어볼 사람은 없지만요.

한 사람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에 대해 더는 궁금해하지 않잖아요. 저는 아버지를 다 아는 사람처럼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제가 등장하지 않는 날이 더 많았을 겁니다. 제가 쓰지 못한 이야기는 그런 날들 속에 남겨두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삶이 제 글 한 편으로 끝나버린다면, 아버지도 좀 억울하겠죠?

너무 커서 차마 쓰지 못한 이야기가 있나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쓰려는 마음은 접어두고, 그 이야기의 중간 어디쯤으로 가보세요. 먼저 떠오르는 장면 하나면 충분합니다. 그 장면을 쓰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요. 삶을 하루 만에 다 살아낼 수 없듯, 한 편의 글에 모든 이야기를 담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살아갈 날도, 써나갈 이야기도 남아 있으니까요.

글·사진 박은지 시인·‘여름 상설 공연’ 저자

독자 글

무언가를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읽은 내용을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읽은 글에 동의하거나 반박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읽고 나서’라는 주제로 글을 부탁드렸습니다. 다섯 분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읽은 글에 응답해주셨습니다.

대성님은 양다솔 작가의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를 읽고 글쓰기를 결심합니다. 다른 작가들에게 느꼈던 ‘아름다운 질투’를 실천으로 옮긴 것이지요. 올해 말까지 열 편을 쓰겠다는 다짐이 반갑습니다. 숙연님은 시집 ‘응답의 시’를 읽고 전쟁과 폭력 앞에서 시가 무슨 소용인지 묻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음 생에는 서로의 처지로 태어난다는 소문을 퍼뜨리자는 기발한 상상이 돋보였습니다. 짧은 소설도 써보시길 권합니다.

희수님은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를 읽고 모태솔로에 대한 편견에 반박하는 시를 썼습니다. 다만 교제폭력, 스토킹범죄와의 연관성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책의 내용과 자신의 경험을 더 구체적으로 연결해보세요. 정선님은 폴란드 군인 비톨트 필레츠키의 말을 읽고 죽음을 준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립니다. 이야기는 망가지는 지구에서 오래 살아야 하는 두려움으로 이어집니다.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축복인지 묻는 대목에 공감했습니다.

이번에는 소민님의 글을 읽어보겠습니다. 소민님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투쟁의 의미를 되짚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개인에서 그 개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로 생각의 폭을 넓힌 점이 인상적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자 책의 주제를 꿰뚫는 이 구절을 기억할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투쟁.

많은 이에게는 낯선 단어일 것이다. 카페, 영화, 마트처럼 일상적인 단어가 아닌, 무언가 비장하고 어색한 것. 퇴근길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갈 때 유난히 높은 빌딩 앞에 걸린 현수막에 적힌 단어. 붉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머리에 둘러진 그만큼 붉은 머리띠에 ‘단결’과 옆모습들, 톱니바퀴 등의 문양과 함께 나란히 박혀 있는. 어딘가 불편한. 조금은 이상한. 어쩌면 부정적인. 어쨌거나 나의 일은 아닌. 나의 일상은 아닌. 그런.

나 역시 그러했다. 투쟁은 나의 삶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내 삶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이 투쟁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어느 곳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른 곳에서는 혐오와 배척의 대상이 된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변하는 곳.

성소수자가. 트랜스젠더가. 장애인이. 페미니스트가.

이 나라에서 어떤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삶이 곧 투쟁이 된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과 부딪혀야 하는.

그런 삶을 산다는 건.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러한 감각들이 있다.

괴롭다는 말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감정들이 있다.

알에서 나왔으나 알 밖의 세상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라면, 기꺼이 그 세계를 깨뜨려야 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키기 위해.

그리하여 나는 투쟁한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내가 그것 때문에 너무나도 아파했기에. 그런 감각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아서. 그 누구에게도 경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내가 살아 숨쉬기 위해. 우리가 살아 숨쉬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나는 그것을 위해 투쟁한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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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민

여러분의 글을 보내주세요!

쓰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막상 쓰려니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적 있나요? 이번에는 그런 이야기를 써봅시다. 가족이나 사랑, 이별, 어린 시절처럼 오래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중간부터 뚝 잘라 한 장면만 써보는 겁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든 에세이든 형식은 자유입니다.

주제: 이야기의 한가운데에서

분량: 에세이는 1천 자 내외, 시는 분량 제한 없음

마감: 2026년 11월1일

보낼 곳: ha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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