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 만에 끝난 아리셀 선고, 11년 깎인 형량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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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박순관, 박중언. 주식회사 아리셀 및 검사의 피고인 모두에 대한 상고를 모두 기각합니다."
대법원은 검사 상고이유에 대해 "원심 판단에 법리오해나 판단유탈의 잘못이 없다"며 한 문단으로만 다뤘다.
선고 뒤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는 "10초 만에 23명의 목숨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신하나 변호사는 "(대법관들이) 천천히 유가족들의 얼굴을 훑고 10초 만에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비겁하게 도망쳤다"며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의도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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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박순관, 박중언…. 주식회사 아리셀 및 검사의 피고인 모두에 대한 상고를 모두 기각합니다."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2호 법정. 사건번호와 피고인들 이름이 불린 뒤 주문 낭독은 10여초 만에 끝났다. 대법관의 판결 이유 설명은 없었다. 방청석에서 "23명이 죽었어요"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노동자 23명이 숨진 '아리셀 참사'에 대한 대법원의 결론이었다. 박순관 아리셀 대표의 형량은 1심 징역 15년에서 11년이나 줄어든 징역 4년이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이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 등의 상고심에서 관여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검사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박 대표의 징역 4년,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의 징역 7년과 벌금 100만원, 아리셀 법인 벌금 8억원이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지 2년4개월 만에 나왔다.
'경영책임자' 첫 기준, CEO·CSO 모두 해당
대법원은 이날 중대재해처벌법이 규정한 '경영책임자등'을 판단하는 기준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사업총괄책임자'와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부담한다고 처음 판시했다. 이에 따라 박 대표가 경영책임자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 같은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있더라도 조직·체계 결정, 예산·인력 배분, 안전보건업무책임자 선임·평가는 대표 몫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 위반으로 중대재해 발생시 해당 영역을 총괄하고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지는 사람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 등으로서 책임을 부담한다"며 "만약 양 영역에서의 의무 위반이 모두 중대재해의 원인이 됐다면 사업총괄책임자와 안전보건업무책임자 모두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등으로서 책임을 부담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임명됐다는 것만으로는 곧바로 안전보건업무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박 대표가 사업총괄책임자이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였던 아들 박 본부장은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원심을 유지했다. 다만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있으면 대표도 "중대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영역에 속하는지에 따라 책임을 면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위험성평가의 '실질'에 관해서도 처음 판시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정한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 마련(4조3호)' 의무에 관한 판단이다. 대법원은 "업무절차 마련은 사업 또는 사업장 전반의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 업무가 개별 사업장의 유해·위험요인 파악과 평가에 의거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사업장에 특화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설계해 시행하는 것에 중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위험성평가 절차만으로는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아리셀의 경우 위험성평가 절차에 리튬을 다루는 사업장 특성이 구체적으로 고려되지 않았고, 2023년부터는 평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해 실시하고 결과를 보고받으면 업무절차 마련 의무까지 이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경영책임자의 '중첩적 책임'은 향후 하급심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조재민 변호사(법률사무소 조안전 대표)는 "CSO를 둔 기업의 경영책임자에 대해 CEO(최고경영책임자)와 CSO 모두 경영책임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업무절차 마련 의무에 관해서도 "형식상 이행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이행에 이르러야 한다고 대법원이 판시했다"며 대법원 판결로 하급심 판단이 상당수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의무 미이행 인정했지만, 형량은 그대로
박 대표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미이행은 인정됐지만, 2심이 선고한 형량이 유지됐다. 양형부당은 상고심 판단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징역 10년 미만 사건은 양형부당을 상고 이유로 삼을 수 없다. 2심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대한 부분을 '무죄'로 판단한 것을 대법원은 그대로 확정했다. 2심은 아리셀 공장 각 층에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고 비상통로 마련도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 무죄 판단이 뒤집혔다면 파기환송심에서 양형을 다툴 여지가 있었다.
대법원은 검사 상고이유에 대해 "원심 판단에 법리오해나 판단유탈의 잘못이 없다"며 한 문단으로만 다뤘다. 비상구·비상통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유족 법률대리인 신하나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상구가 있어야 된다는 말, 비상통로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 그렇게 헷갈리고 어렵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숨진 노동자 23명에 징역 4년이면 1명당 2개월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는 재판소원도 고려할 계획이다.

이번 판결이 아리셀 사건의 주심인 천대엽 대법관의 과거 판결과 배치된다는 견해도 많다. 천 대법관은 2021년 9월 주심으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참사' 사건에서 원청의 안전조치의무 위반을 무죄로 본 원심을 파기했다. 2017년 노동절에 크레인끼리 충돌해 노동자 6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친 대형사고였다.
1·2심은 안전보건규칙에 크레인 중첩 작업시 별도 신호 방법을 마련하라는 구체적 규정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업주로서는 합리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의 안전조치를 보강함으로써 크레인 간 충돌에 따른 대형 안전사고의 발생을 예방할 의무가 요구된다"며 원심 판단을 배척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삼성중공업 벌금은 300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늘었다.
아리셀 유족쪽은 주심 대법관 스스로 본인의 과거 판결을 부정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신하나 변호사는 "유족쪽이 수십 차례 낸 '리딩케이스'가 바로 천 대법관의 거제조선소 판결"이라며 "관련 의견서를 여러 번 대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유족 "법이 이것밖에 안 되나" 노동계 "면죄부"
선고 뒤 대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는 "10초 만에 23명의 목숨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딸을 잃은 이순희씨는 "어떻게 대한민국 법이 이것밖에 안 되나. 중국의 가족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신하나 변호사는 "(대법관들이) 천천히 유가족들의 얼굴을 훑고 10초 만에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비겁하게 도망쳤다"며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의도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계 비판도 이어졌다. 한국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경영책임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한 판결"이라며 "사고 뒤 합의가 책임을 과도하게 감경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양형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에서 "대법원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지웠다"며 대법원 1부와 주심 대법관을 규탄했다. 그러면서 "판결이 안전 투자보다 사고 이후의 합의와 감형을 선택해도 된다는 잘못된 사법적 신호로 남으면 대법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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