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특허의 값어치를 읽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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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술기업의 투자 현장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은 더 이상 "특허가 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결국 특허 가치평가의 핵심은 "몇 건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권리가 기술·시장·법률의 교차점에서 어떤 힘을 가지는지를 읽어내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역시 지식재산 금융과 기술사업화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특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근거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특허 가치를 자동화해 읽어내는 기술은 분명 유용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정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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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 가치 입증 역량이 핵심
데이터로 가치를 읽는 유럽처럼
한국도 산업 특성 반영한
새 가치평가 체계 만들어야

요즘 기술기업의 투자 현장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은 더 이상 "특허가 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이다. 이 특허가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산으로 읽힐 수 있는지다. 출원과 등록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시대일수록 경쟁은 권리의 보유 자체보다, 그 권리의 값어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지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유럽특허청(EPO)의 코드페스트 2026(CodeFest 2026)이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특허 및 지식재산(IP) 포트폴리오 가치평가'였다. 흥미로운 점은 특허의 가치를 사람의 경험이나 협상 감각에만 맡겨두지 않고, 코드와 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현해 보려 했다는 데 있다. 유럽특허청은 참가자들에게 세계 특허 통계 데이터베이스(PATSTAT) 등 특허 데이터는 물론, 이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정보 분석 플랫폼(Technology Intelligence Platform·TIP)까지 제공했다. 단순한 해커톤을 넘어, 특허를 어떻게 자산의 언어로 읽어낼 것인지에 관한 실험장이었던 셈이다.
실제 제시된 해법들도 시사적이다. 수상작들은 공통적으로 특허의 가치를 하나의 숫자로 단순 환산하기보다 기술적 중요성, 시장 관련성, 법적 강도를 함께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어떤 팀은 장기적 전략 가치를 분석했고, 어떤 팀은 후속 기술을 얼마나 제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차단력 점수(blocking score)와 사업화 가능성을 가늠하는 사업화 점수(commercialisation score)를 제시했다. 또 다른 팀은 심사관처럼 선행기술과의 차이를 따지는 방식으로 발명의 강도를 평가했다. 결국 특허 가치평가의 핵심은 "몇 건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권리가 기술·시장·법률의 교차점에서 어떤 힘을 가지는지를 읽어내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역시 지식재산 금융과 기술사업화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특허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근거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출원 건수는 많지만, 투자자나 금융기관이 납득할 수 있는 언어로 특허의 강도와 사업성을 번역하는 일은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허가 많다는 사실과, 그 특허가 실제로 투자와 거래의 언어로 읽힌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제는 몇 가지 방향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특허 가치평가를 위한 공공 데이터 인프라를 더 정교하게 개방해야 한다. 단순 서지정보를 넘어 권리 변동, 연차료 납부, 심사 경과, 무효·분쟁 이력, 인용관계 등을 통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유럽특허청의 특허 가치평가 도구(IPscore)처럼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도 활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평가 도구가 필요하다. 다만 단순 점수화에 그쳐서는 안 되고, 왜 그런 결과가 도출됐는지를 보여주는 설명 가능한 구조여야 한다. 셋째, 특허의 가치는 변리사만으로도, 데이터 과학자만으로도 충분히 읽기 어렵다. 변리사, 투자자, 회계·가치평가 전문가, 인공지능(AI) 분석가가 함께 참여하는 융합형 평가 체계가 필요하다. 넷째, 바이오, 반도체, 소프트웨어, 화장품처럼 산업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권리의 강도와 사업화 방식이 서로 다른데, 하나의 획일적 모델로는 실제 가치를 제대로 읽기 어렵다.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특허 가치를 자동화해 읽어내는 기술은 분명 유용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정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블랙박스 점수'는 오히려 잘못된 투자 신호를 줄 수 있고, 산업 맥락이나 사업화 역량 같은 정성적 요소를 놓칠 위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얼마를 매겼는가가 아니라, 어떤 데이터와 어떤 논리로 그 특허의 값어치를 판단했는가이다.
조민지 변리사(나인국제특허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