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변호사] 남성에게 여성이 될 의무를 부과한다면?

김소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밝은책방 대표)  2026. 10.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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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7년, 일본에서 여자에게만 발병하여 젊은 층일수록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인플루엔자가 발생했고, 2090년 종식 선언이 있기까지 일본인 여성 약 219만 명이 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 만 18세에서 30세에 이르는 모든 일본 국적 남성은 최대 24개월 동안 '여성'이 될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그런데 못생긴 남성이었던 쇼마는 못생긴 여성이 되었을 뿐이고, 길에서 '비켜, 못생긴 뚱땡아'라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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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7년, 일본에서 여자에게만 발병하여 젊은 층일수록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인플루엔자가 발생했고, 2090년 종식 선언이 있기까지 일본인 여성 약 219만 명이 이 인플루엔자로 사망했다. 사망자 중 10~20대가 85%를 차지했고, 그렇게 일본은 국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대학의 연구소는 성별을 가역적으로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성전환 기술을 개발했다. 일본 총리는 '사회복지 보장 등의 지속 가능한 사회 실현을 향한 성전환 의무화에 의한 출생률 상승 촉진안', 통칭 징산제(徵産制)를 제안했고, 국민투표를 거쳐 시행되었다. 만 18세에서 30세에 이르는 모든 일본 국적 남성은 최대 24개월 동안 '여성'이 될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24개월 이전이라도 아이를 낳으면 산역(産役)은 바로 종료되고, 태어난 아이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보육하거나 입양을 보내며, 아이를 낳은 당사자들이 직접 기를 수도 있다. 산역을 마친 뒤에도 계속 여성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산역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으면 신체적으로 여자가 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변화를 겪고 성적 취향까지 바뀔 수 있다. 소설 《징산제》의 배경이다.

소설은 징산제를 경험하는 5명의 인물의 이야기로 챕터를 나눈다. 이들이 여성이 되면서 겪는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배경과 성격이 제각각이어서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시골 농촌 마을에서 평생 농부로 살아온 청년 '쇼마'는 지겨운 농촌 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산역에 지원한다. 그런데 못생긴 남성이었던 쇼마는 못생긴 여성이 되었을 뿐이고, 길에서 '비켜, 못생긴 뚱땡아'라는 소리를 듣는다. 남자이던 시절 여자에게 대놓고 '못생겼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외모는 생각하지 않고 '못생겼다'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사용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국가가 쇼마에게 배정한 직업은 임시 사무직이었는데, 못생긴 쇼마는 결국 회사에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고 '빨리 인공수정하고 회사를 그만둬라'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선량하고 남을 잘 돕는 '타케루'는 징산제를 피하려는 도망자를 돕고, 추운 겨울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사실상 노예 대우를 받는 성판매 남성(산역 남성)이 되는 등 예기치 못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산역 남자'들이 부임지에서 남성들의 성적 욕구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하는 착취 구조를 목격한다. 성매매하러 오는 남자들은 포악스럽고 품성이 떨어지는 남자들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것도 경험한다.

엘리트 관료 출신인 '하루토'는 징산제에 대해서도 최고로 우수한 아이를 낳아 복귀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남성이다. 그런데 계속 임신에 실패한다. 이대로 아이를 낳지 못한 채 산역을 종료하면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낙인으로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징산제 때문에 남자도 여자처럼 아이를 낳았는지 못 낳았는지로 가치가 재단되게 된 것이다.
징산제

"앞으로 일본의 젊은 남자들은 이런 말을 계속 듣게 될 것이다. '아이를 낳은 남자는 훌륭하다. 아이를 낳고 일까지 하는 남자는 더 훌륭하다. 아이는 낳지 않고 일만 하는 남자는 남자로서 불완전하다. 아이도 낳지 않고 자유만 누리다 늙어서 세금으로 도와달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122쪽)

이렇게 《징산제》는 남성이 여성이 된다는 상상을 통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성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을 통해 젠더 이분법적 사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젠더에 관하여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을 발굴하고 평가하는 일본의 문학상 '센스 오브 젠더상'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여성 친구들과는 '왜 남성은 여성의 삶에 관심이 없고, 자기 관점을 벗어나기 어려워할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이다. 최근에는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남성이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생각난 책이었다. 이렇게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야 비로소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자조 섞인 생각이었는데, 먼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날지, 어쩔지 알 수 없지만, 가상 세계를 통해서라도 남성들이 여성의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소설 속 남성들을 보다 보면,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억압을 좀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소리 변호사(법률사무소 물결·밝은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