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갇힌 2030, 채무조정 4년새 65% 급증

팀장 권기범 기자 2026. 10. 21.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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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씨(29)는 빚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사회생활 초기부터 빚에 발목을 잡히지 않도록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이 빚 일부를 감면하고 나머지를 3∼5년에 걸쳐 갚게 하는 제도인데, 사회에 첫발을 딛기 전부터 여기에 의지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는 것.

대학원 휴학생 한수빈 씨(26)의 빚은 240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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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에서 밀려난 청년들]
꿈 펼치기도 전에 빈곤 늪 빠져
빚의 굴레가 곧 빈곤의 굴레세상은 흐르는데, 청년은 멈췄다 15일 점심시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 횡단보도에서 행인들이 이주현 씨(28)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인 부모 밑에서 자란 이 씨는 잡지사에서 해고된 뒤 계약직으로 일하며 월 200만 원을 벌지만 월세 등 부담 때문에 늘 적자다. 이 씨의 빚은 통장 잔액인 300만 원의 세 배인 900만 원까지 늘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장희 씨(29)는 빚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다. 누나가 대부업체에서 빌린 돈을 메워 주려 3000만 원을 대출 받은 것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빚이 빚을 부르며 연이율 19%인 카드론까지 쓰게 됐다. 조선소와 호텔, 물류센터, 공장을 전전하며 일했고 모자란 생활비는 카드 돌려막기로 버텼다. 하지만 빚은 점점 늘어 올 5월 1억 원이 됐다. 그는 결국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이 씨는 “돈이 없으니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고, 다른 일에 도전하기도 무섭다”고 했다.

이처럼 사회에 첫발을 떼자마자 빚을 떠안은 청년들이 채무조정과 개인회생으로 몰리고 있다. 빚을 덜거나 상환을 늦춰주는 제도인데, 빚에 짓눌린 이들의 ‘두 번째 기회’에 20, 30대가 벌써 줄을 선 것이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올해 경제성장률을 최대 3.6%로 내다보지만, 그 온기는 이들에게 닿지 않고 있다.

20일 신용회복위원회가 국민의힘 강명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39세 이하 채무조정 신청자는 2021년 4만979명에서 지난해 6만7540명으로 4년 새 64.8% 늘었다. 개인회생으로 일부 빚을 감면받고도 끝내 갚지 못해 절차에서 탈락한 20, 30대도 매년 2000명이 넘는다. 제도권 대출 길이 막히면 불법 사채로 밀려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사회생활 초기부터 빚에 발목을 잡히지 않도록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이 다시 일어설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고용·주거 지원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빚의 굴레가 곧 빈곤의 굴레… 세상은 흐르는데, 청년은 멈췄다

[내일에서 밀려난 청년들] 〈3〉 두번째 기회마저 앗아간 빚
“계약직 일하지만 빚 갚으면 적자… 머릿속에 ‘대출 빨리 갚고싶다’뿐”
‘한탕’은커녕 생계만으로 빚 쌓여… 불법사채 피해 상담 60%가 청년
“구직-주거지원 등 복지 연계해야”

이주현 씨(28)가 집이 가난하다는 걸 처음 깨달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담임교사가 그를 따로 불러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면 쌀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자영업을 하던 부모는 그가 기억하는 내내 신용불량자였다. 동생 학비라도 남기려고 재수를 포기하고 곧장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계약직으로 일하며 월 210만 원가량을 번다. 빚을 갚고 재취업에 필요해 구입한 노트북 할부금을 내고 나면 100만 원 넘게 적자가 나 옷을 중고로 내다 팔기도 한다. 이 씨는 “요즘 머릿속엔 ‘대출금’ 세 글자뿐”이라며 “빨리 갚고 싶다”고 했다.

● 2030 개인회생 늘고, 갚을 여력은 줄어

이 씨처럼 사회초년생 때부터 빚을 안고 출발한 청년들이 개인회생으로 내몰리고 있다. 법원이 빚 일부를 감면하고 나머지를 3∼5년에 걸쳐 갚게 하는 제도인데, 사회에 첫발을 딛기 전부터 여기에 의지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는 것.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 30대 개인회생 신청자는 2021년 3만6248명에서 지난해 4만7920명으로 32.2% 늘었다. 반면 개인회생 신청 당시 갚은 돈의 비율인 ‘인가 당시 평균 변제율’은 떨어졌다. 20대는 같은 기간 51.9%에서 42.9%, 30대는 44.3%에서 42.1%만을 갚은 상태였다. 빚을 스스로 감당할 여력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개인회생을 통해 빚을 일부 감면받고도 남은 빚을 갚기 어려워 개인회생이 폐지된 20, 30대는 2024년 2504명 등 매년 2000명을 웃돈다.

대학원 휴학생 한수빈 씨(26)의 빚은 2400만 원이다. 생활비와 학자금, 자취방 보증금 대출이 겹겹이 쌓였다. 휴학 전엔 매달 25일 생활비 72만 원이 들어오면 카드값으로 50만 원이 빠져나갔다. 남은 22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다 다시 카드를 긁는 일이 반복됐다. 하루빨리 학업을 마치고 취업하고 싶지만,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지 않으면 학비를 낼 수 없는 악순환이다. 한 씨는 “하루빨리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은데, (빚의) 굴레에 빠져 있다”고 했다.

대다수 청년을 빚으로 내모는 건 ‘한탕’을 노렸다가 실패한 대가가 아닌 일상의 적자가 쌓인 결과였다. 신용회복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자율을 낮추거나 상환 기간을 늘려주는 ‘채무조정’ 신청자의 연체 사유는 5년 연속 실직·폐업·소득 감소 등 ‘생활 악화’가 1위였다. 그 비율도 2021년 86.4%에서 지난해 90.8%로 높아졌다. 투자 실패나 건강 악화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다가도 궁지로 내몰리게 된 것.

● 벼랑 끝서 불법사채… 피해 상담 60%가 청년

청년들에게는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부터가 빚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구직 중인 만 19∼34세 청년 1000명은 최근 3개월간 취업 준비에 월평균 58만 원을 썼다. 준비 기간이 3년 이상인 청년은 월 80만 원으로, 6개월 미만(56만 원)보다 부담이 컸다. 소득 없이 버티는 시간이 길수록 빚도 불어나는 구조다.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불법 사채에 손을 대기도 한다. 서울 관악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박민성(가명·22) 씨는 생활비를 대려 대부 플랫폼에 접속했다가 불법 사채의 늪에 빠졌다. 불법 사채조직에서 빌린 50만 원은 일주일 만에 100만 원으로 불었다. 배 씨는 빚을 갚으려 건설 현장에서도 일했지만, 조직은 박 씨에게 “염산을 뿌리거나 지인들에게 알몸 영상을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배 씨는 “사채를 사채로 돌려막다가 전화번호를 없애고 친구 500명을 다 잃었다”고 했다. 경기복지재단 불법사금융피해지원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불법 사채 피해 상담자 380명 중 228명(60.0%)이 20, 30대였다.

전문가들은 빚을 냈거나 낼 위기인 청년에게 단순한 빚의 탕감뿐만이 아닌 주거, 생활 등 복합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채무조정이나 개인회생 제도만으로는 경제적 재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돕고 주거 등 복지 제도도 연계해 줘야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 팀장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 타이베이=조승연. 파리=김다인, 헬싱키=고진영 기자
윤희승 인턴기자 서강대 경영학과 4학년 재학
이나한 인턴기자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김원길 인턴기자 경희대 사회학과 4학년 재학
문지연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수료
박건우 인턴기자 서울대 언어학과 4학년 재학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팀장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타이베이=조승연 기자 cho@donga.com
파리=김다인 기자 daout@donga.com
헬싱키=고진영 기자 go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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