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호의 독서경영 스토리] 독서경영 4단계는 계단이 아니라 순환이다
![[김을호의 독서경영 스토리] 독서경영 4단계는 계단이 아니라 순환이다. 사진=챗GPT이미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20/552805-UDxyZm4/20261020221132268srty.png)
[한국독서교육신문 김을호 기자]
독서경영을 컨설팅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저희는 사내 도서관도 만들었고 독서동아리도 돌리고 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되겠지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말에는 독서경영을 바라보는 하나의 그림이 숨어 있다. 한 칸을 다 오르면 다음 칸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네 개의 질문으로 보는 독서경영 4단계
독서경영은 보통 네 단계로 설명한다. 이름만 들으면 딱딱하지만, 각 단계를 조직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바꾸면 훨씬 쉽게 이해된다.
1단계 '독서문화 조성'의 질문은 "책이 손에 닿는가"다. 사내 도서관이나 작은 서가, 추천도서, 독서 시간, 포상처럼 구성원이 책을 집어 들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드는 단계다.
2단계 '학습조직'의 질문은 "함께 읽는가"다. 독서동아리나 토론 모임처럼 혼자 읽은 책을 동료와 나누는 자리를 만드는 단계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밑줄 긋는 곳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독서는 개인의 취미에서 조직의 대화가 된다.
3단계 '정보 축적'의 질문은 "남는가"다. 서평, 독서 노트, 토론 기록, 사내 인트라넷 게시물, 인터뷰 영상처럼 읽고 나눈 것을 조직이 다시 찾아볼 수 있는 형태로 남기는 단계다.
4단계 '역량 개발'의 질문은 "쓰이는가"다. 남겨 둔 지식을 필요할 때 꺼내 업무 개선, 직무 역량,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로 연결하는 단계다.
이렇게 놓고 보면 네 단계는 자연스럽게 1에서 4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네 단계를 계단으로 이해하는 순간 독서경영은 어딘가에서 멈춘다. 독서경영 4단계는 계단이 아니라 순환이다.
계단으로 읽으면 생기는 세 가지 오해
첫째, '끝낸 단계'가 생긴다. 서가를 들이고 추천도서를 나눠 준 뒤 1단계는 끝났다고 여기는 순간, 그 서가에는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독서문화는 한 번 조성하면 유지되는 시설이 아니다. 계속 물을 줘야 하는 정원과 같다.
둘째, 다음 단계가 앞 단계를 대신한다고 착각한다. 동아리가 잘 돌아가니 이제 개인의 독서 동기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아리에 새로 들어올 사람은 여전히 1단계에 서 있다. 조직 안에는 늘 여러 단계의 사람이 섞여 있다.
셋째, 4단계를 '도착점'으로 본다. 독서가 업무 성과로 이어지면 독서경영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과가 거기서 멈추면 그 성과는 일회성 이벤트로 끝난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성과가 다음 독서의 이유로 되돌아오는가다.
4단계에서 1단계로 돌아오는 화살표
2025년 독서경영 우수 직장으로 선정된 울산항만공사의 사례에는 이 순환이 아주 선명하게 나타난다. 직원들이 전문 도서와 학술지를 꾸준히 이용하자, 그 이용 실적을 근거로 오디오북, 전자책, 유료 학술 DB, AI 독서 챗봇 같은 더 다양한 플랫폼을 들여올 수 있었다. 독서경영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임직원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 수행으로 이어 갔다. 그 결과가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대표 BP(Best Practice) 사례로 선정됐다. 공사는 이를 스스로 '선순환'이라고 표현했다.
이 흐름을 단계로 다시 읽어 보면 이렇다. 읽는 사람이 늘어나자(1단계) 환경이 더 좋아졌다(다시 1단계). 함께 아이디어를 낸 과정(2단계)이 사업과 성과로 이어졌다(4단계). 그리고 그 성과는 독서경영에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끌어오는 근거가 된다(다시 1단계). 네 단계가 한 방향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밀어 올리며 돌고 있다.
필자는 이를 세 개의 바퀴로 설명하곤 한다. 첫 번째 바퀴는 개인 독서와 독서 환경이 만나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동기(Motive)'의 바퀴다. 두 번째 바퀴는 개인의 창의성이 현장에 적용되며 조직의 창의성으로 번지는 '문화(Culture)'의 바퀴다. 세 번째 바퀴는 조직 역량이 성장하고 조직 목표를 달성하며 기업문화로 내재화되는 '혁신 엔진(Engine)'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바퀴가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책을 통해 개인과 조직이 변화를 경험하면, 그 경험이 다시 첫 번째 바퀴를 돌린다. 사람의 생각이 모여 조직의 문화가 되고, 그 문화가 더 큰 혁신을 만든다.
순환은 처음부터 작게 돈다
그렇다면 순환은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모두 갖춘 큰 조직에서만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순환은 처음부터 작게 돌 수 있고, 작게 돌아야 오래 간다.
2025년 최우수상을 받은 조인(복정지점)은 2012년부터 '독서하는 조인人'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스스로 돌아보니 직무 교육을 목적으로 독서와 독서평 작성을 의무로 정한, 회사 주도의 경직되고 지루한 학습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설계하면서 내건 원칙이 "작게 시작하되, 점진적으로 확산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자"였다. 회사가 계획 없이 밀어붙이고 직원의 자발적 참여가 없으면 실패한다고 보고, 먼저 독서에 대한 임직원의 생각과 원하는 운영 방식, 지원을 들은 뒤에 계획을 세웠다.
조인의 로드맵은 도입기, 성장기, 안정기의 세 시기로 나뉜다. 도입기의 목표는 '모방'이다. 리더가 월례조회에서 독서 강의를 하고, 리더와 동호회 같은 작은 단위에서 본보기를 먼저 만든다. 성장기의 목표는 '습관'이다. 작은 도서관을 넓히고, 세미나와 독서토론으로 지식을 나누며, 의무화에서 생활화로 캠페인의 방향을 바꾼다. 안정기의 목표는 '창조'다. 독서를 프로젝트와 KPI 같은 경영의 중심과 연결하고, 개인의 성장을 핵심인재와 전문가 육성으로 점검하며, 독서를 사회공헌으로 넓힌다.
눈여겨볼 것은 각 시기 안에 이미 네 단계가 모두 들어 있다는 점이다. 도입기에도 리더의 강의(1단계), 작은 모임(2단계), 필독서와 독서 나눔(3단계), 포상(다시 1단계)이 함께 돈다. 시기가 바뀔 때 달라지는 것은 단계가 아니라 순환의 반지름이다. 처음에는 소수의 리더와 동호회라는 작은 원으로 돌다가, 점점 전사와 경영 전반, 지역사회로 원을 넓혀 간다. 조인의 임직원이 2025년 9월까지 자유롭게 공유한 독서평은 약 600건에 이른다. 의무로 쓰던 서평이 자발적으로 쌓이는 기록으로 바뀐 것, 이것이 작은 순환이 만든 변화다.
성과가 다시 읽을 이유가 될 때
순환의 마지막 고리, 즉 4단계에서 1단계로 돌아오는 화살표를 의도적으로 설계한 조직도 있다. 2025년 우수상을 받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은 독서경영 도입 이후 단순한 독서와 서평 작성을 넘어 독서가 조직의 역량과 성과로 직결되도록 'TP 독서경영 성과 창출 체계'를 정립했다. 공단은 독서를 통한 자기계발이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고, 그것이 조직 성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공단은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A등급을 받았고, 기금운용평가에서는 '탁월' 등급을 얻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그다음이다. 공단은 향후 계획의 첫머리에 '업무 성과 연계 환류 체계'로의 고도화를 올려 두었다. 핵심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주제별 독서 모임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과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성과를 다시 다음 독서의 주제와 모임 설계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계단과 순환의 차이다. 계단에서 성과는 꼭대기에 놓인 트로피다. 순환에서 성과는 다음 바퀴를 돌리는 연료다.
우리 조직의 순환은 어디서 끊겼는가
독서경영이 정체되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몇 단계까지 올라왔는가"보다 "우리의 순환은 어디서 끊겼는가"를 물어야 한다. 앞에서 본 네 개의 질문 사이, 그 연결 고리마다 하나씩 물어보면 된다.
첫째, '손에 닿는가'에서 '함께 읽는가'로. 책을 받은 사람이 그 책을 함께 이야기할 자리가 있는가. 환경은 갖췄는데 모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책은 개인의 서가에서 멈춘다.
둘째, '함께 읽는가'에서 '남는가'로.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가 어딘가에 남는가. 좋은 토론이 오가도 기록이 없으면 다음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셋째, '남는가'에서 '쓰이는가'로. 남긴 기록을 누군가 업무에서 다시 꺼내 쓰는가. 기록이 쌓이기만 하고 쓰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산이 아니라 창고다.
넷째, '쓰이는가'에서 다시 '손에 닿는가'로. 독서로 만든 변화와 성과를 구성원이 알고 있는가. 성과가 보고서 안에만 있고 구성원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다음 해의 독서는 다시 '시켜서 하는 일'이 된다.
네 질문 가운데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곳이 우리 조직의 순환이 끊긴 지점이다. 그리고 그곳이 다음 투자를 해야 할 곳이다.
맺으며
계단은 다 오르면 끝나지만 순환은 끝나지 않는다. 독서경영을 오래 해 온 조직들이 공통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네 단계를 쉬지 않고 돌리는 힘이다. 오늘 읽은 책이 내일의 일을 바꾸고, 바뀐 일이 다시 읽을 이유를 만든다. 독서경영이 경영전략이 되는 지점은 바로 이 순환이 조직 스스로의 힘으로 돌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 순환을 바탕으로, 우리 회사의 독서경영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스스로 진단해 보는 방법을 살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