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 그들이 유학 연구를 그만두지 못한 까닭
창비 한국사상선 ‘조선 여성 유학자’

고기 맛보듯 학문을 즐긴 임윤지당
“여성도 성인 될 수 있다” 문집 간행
대 잇기보다 여성 몸 주목 이사주당
과학담론 접목 ‘태교신기’ 딸에 전수
‘밥하다 저술, 길쌈 중 강독’ 강정일당
연하 남편 가르치고 제문 등 대신 써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기 전의 유학
상호성 강해 새로운 해석 가능성 커”
조선은 유학의 나라고, 인구의 절반은 여성이었다. 그런데도 ‘조선의 여성 유학자’란 분류는 여전히 낯설다.
지난달 30권으로 완간된 <창비 한국사상선>에는 ‘조선의 여성 유학자들’이 포함됐다. 13권 <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은 12권 <홍대용·김정희>와 14권 <정약용> 등 쟁쟁한 학자 사이에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여성의 사회 활동에 큰 제약이 있던 시기에도 이들은 담장 안에서 당대 주류 학문을 익히고 자신만의 생각을 가다듬어 나갔다.
<임윤지당·이사주당·강정일당>에서 이들의 주요 글을 옮기고 해설한 이숙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유교 경전의 여성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줄곧 조선 여성의 사상과 삶에 천착해왔다. 지난 5일 서울 중구에서 이숙인을 만나 조선 여성 유학자의 삶에 대해 물었다. 이숙인은 “2000년 역사가 넘은 유교 경전에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다”며 “서구의 자유주의가 도달하지 못한 삶의 대안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초의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
세 여성 유학자들은 조선 후기인 영조~순조대를 살아가며 각기 다른 사상의 궤적을 남겼다. ‘최초의 여성 성리학자’로 꼽히는 임윤지당(1721~1793)은 일찌감치 남편과 사별하고 자녀 없이 일생을 보냈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의 세 가지가 내 한 몸에 있다”고 할 정도였지만, 고독 속에서 학문을 벗 삼았다. 윤지당은 학문하는 이유로 “고기 맛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아 그만두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스승·제자와 교류하지 못했고, 학문을 해도 세상에서 펼칠 수가 없었다. 이숙인은 “윤지당은 학문적으로 청정한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단호한 원칙주의자였다”고 설명했다. 부국강병을 추구한 북송의 정치가 왕안석을 “근본을 소홀히 하고 지엽에만 치중”한 ‘소인배’라고 비판한 것도 이 같은 근본주의적 입장 때문이었다. 윤지당의 학문에는 여성의 정체성도 강하게 드러난다. 조국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어머니가 부여잡은 옷자락을 칼로 자르고 떠난 동진의 온교는 흔히 충신으로 꼽히지만, 윤지당은 온교가 어머니의 마음을 외면했다는 점에서 불효자라고 비판한다. 후손, 제자, 학파도 없던 윤지당은 말년에 스스로 문집 간행을 추진했고, 친동생과 시동생의 도움으로 문집이 세상에 나왔다. 담장 안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여자도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을 실천하려 한 것이다.
‘여성 관점의 유교 태교론’ 이사주당
가난한 양반집에서 태어난 이사주당(1739~1821)은 20세 연상 남편의 네 번째 아내로 출가해 남편을 스승 삼아 학문을 익혀나갔다. 사주당은 임종하며 <태교신기>를 제외한 모든 글을 불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 이 책은 “영혼을 갈아넣은” 역작이었다. 사주당의 태교론은 가문의 ‘대 잇기’보다 여성의 ‘아이 낳기’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기존 남성 유학자의 이론과 크게 달랐다. 기존 태교 논의가 덕성, 인성을 논했다면, 사주당은 위생, 건강을 아울렀다.
이숙인은 “사주당은 여성을 대 잇는 도구로 여겼던 사회에서 여성의 몸을 중심에 뒀다”며 “영양학 등 과학담론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실학에 가까운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주당이 직접 경전을 편집해 딸을 가르쳤고, 이렇게 글을 배운 딸이 훗날 <태교신기> 발문을 썼다는 사실은 모녀 사이 학문이 전해진 특이한 사례다.
연하 남편 가르친 강정일당
이숙인은 세 여성 중 강정일당(1772~1832)에게 학문적으로 가장 끌린다고 했다. 정일당은 6세 연하 남편을 맞아 학문 스승 역할을 했다. 남편이 나태해지면 ‘척독’(쪽지 편지)을 통해 “조심하고 노력하라”고 꾸짖을 정도였다. 학문을 숭상하는 어머니와 한시 짓는 시어머니 아래 살아간 정일당은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배우지 않으면 사람의 도리를 행할 수 없다”고 여겼다. 정일당은 “밥하다가 글 쓰고 길쌈하다 강독하는” 삶을 이어갔다. 남편을 대신해 제문, 행장 등을 쓰기도 했고, 남편에게 책을 빌려오라거나 스승에게 물어봐달라고 요청하는 등 조건의 한계 속에서 최대한의 공부를 했다.
임종을 앞두고 슬퍼하는 남편의 귀에 대고 “슬픔이 과하다” “굶지 마시라”는 말을 남겼다. 남편은 정일당 사후 아내를 기리는 수 편의 조문을 남겼고, 자신이 지었던 것으로 돼 있던 글을 아내 이름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이숙인은 “정일당은 자녀 9명을 돌 전후에 모두 잃었지만, 평생 굉장히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아갔다”면서 “남편과 평생 숭고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만을 연구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학자 가문에서 태어난 이숙인은 어린 시절부터 유교 경전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대학에서도 관련 전공을 택했고, “수구적으로 읽지 말고 다르게 읽어라”라는 스승 고 이운구 교수의 조언에 페미니즘의 관점을 더했다.
“<주역> 같은 초기 경전에는 ‘네가 있어야 나도 있다’는 식으로 상호성이 굉장히 강해요. 음양에 계열이 있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하고 자극한다는 것이죠. 여기엔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전 해석의 여지가 좁아진 것은 한(漢)대 들어 유교가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면서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남녀의 상하 관계가 일상에 적용됐습니다. 조선에서는 경전의 질서 개념과 국가 질서 개념이 연결되면서 이런 생각이 훨씬 심해졌죠.”
이숙인은 “신선 사상에도 여자, 남자 구분이 없다. 여자도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기 전의 선진(先秦) 유학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경전 해석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낡은 생각을 수호하고 여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유교는 새로운 사상가와 해석자의 시선을 통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연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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