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 넘치는 풍요의 고장… ‘삼도부’의 예찬 [강화 속 고려를 찾아서·(54)]

정진오 2026. 10.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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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 오른 최자가 쓴 문학작품
천거 이규보에 여러번 감귤 선물
고려 비평문학 성과 ‘보한집’ 남겨

‘동문선’에 전하는 ‘삼도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

강화도를 평양, 개성과 비교해 절대 우위의 자리에 올려 놓은 문학 작품이 있다. 고려시대 최자(崔滋, 1188~1260)가 쓴 ‘삼도부(三都賦)’. 이름 그대로, 강화 천도(遷都) 시기의 강도(江都)와 고조선·고구려의 수도였던 서도(西都·평양), 천도 이전 고려의 수도 북경(北京·개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우리나라 역사 속 수도를 호출하여 형상화 한 최초의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강화도가 이처럼 우리 문학사의 중요 작품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평양을 대표하는 언변 좋은 유생 변생(辨生)과 개성을 대표하는 이야기 잘하는 노인 담수(談談)와 강화를 대표하는 바른 말 잘하는 정의대부(正議大夫), 이들 세 명이 각자 자신이 사는 도읍지를 자랑하는 형식이다.

변생은 단군 신화부터 시작해 최고로 오래된 도읍지인 평양의 장점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대동강을 비롯한 온갖 볼거리를 소개한다. 또한 대동강을 통해 바다로 이어지는 평양의 풍요로운 물류 흐름을 이야기하고 풍수설에 입각한 명당지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담수는 시인과 묵객이 많고, 활 잘 쏘고 기예가 뛰어난 용맹무사가 많다는 점을 들어 개성 자랑을 시작한다. 문화적 우위를 점하고, 무인의 기상이 남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켜 개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다. 또 휘황찬란한 저택과 산해진미에 화려한 복식이 중국의 수도 낙양보다 낫다고 으스댄다.

강화의 정의대부는 변생과 담수의 자랑을 일거에 논박하면서 강화의 자랑거리를 소개한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강화는 사면이 요새와 같아 새들도 날아들지 못하고 호랑이 늑대조차도 넘볼 수 없는 천혜의 도읍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항구가 발달해 온갖 산물을 실은 배가 드나들고 골목마다 곡식이 넘쳐나는 풍요로운 고장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불법(佛法)을 받들고 불사에 힘씀으로 하여 몽골 침입의 국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정의대부가 이야기하는 강화 자랑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강화는 우선 강과 바다를 통한 물류와 물산이 풍부하다. 정의대부는 이를 강상(江商), 해고(海賈), 어옹(漁翁), 염수(鹽談)라는 직업을 들어 설명한다. 강이나 바다에 의지한 상업과 어부, 소금 굽는 사람들이다. 마니산과 혈구산 같은 깊은 산세와 갑곶나루, 승천포도 예로 든다.

강화도 찬가인 ‘삼도부’를 지은 최자는 이규보의 대를 이어 최고 문인의 자리인 문형(文衡, 대제학)에 올랐다. ‘고려사절요’에 그 과정이 기록돼 있다. 고려 원종 1년(1260) 7월 최자가 타계했다. 그때 최자의 졸기에 이규보가 최자를 추천했다는 얘기가 실렸다. 실권자 최이(최우)가 이규보에게 뒤 이를 사람을 물었다. 이규보는 최자를 맨 위에 올려 2명을 추천했다. 최이가 여럿을 놓고 서(書)와 표(表)를 짓게 하여 재주를 시험했다. 이규보로 하여금 등급을 매기게 했다. 열 차례나 했는데, 최자는 다섯 번을 장원을 했고, 다섯 번을 부장원을 했다. 최자는 이렇게 해서 의심 많은 최이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최자는 자신을 천거해 준 이규보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1237년, 최자가 제주 태수로 가 있을 때 강화도에 사는 70세 노인 이규보에게 여러 차례 감귤을 보내줄 정도였다. 이규보는 그때마다 시를 지었다. 탐라가 아니면 보기조차 어려운 귤을 먼 바닷길을 통해 보내왔고, 그 귤은 귀인의 집에서도 얻기 어려운데, 해마다 늙은 사람 생각해 보내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고 이규보는 노래했다.

최자는 이규보만큼은 아닐지라도 강도 시기의 문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많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보한집(補閑集)’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도 시기인 1254년 4월에 간행했다. 실권자 최이가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완해 줄 것을 요청해 만들었다. ‘보한집’은 상권 52장, 중권 45장, 하권 49장 등 총 146장으로 돼 있다. 주로 시평과 수필이다. 고려 문학 연구자들은 최자의 ‘보한집’을 고려 비평 문학의 걸출한 성과라고 극찬하고 있다. ‘보한집’을 번역한 박성규 고려대 명예교수는 ‘보한집’을 일러 “당대는 물론 후대의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아울러 시대의 방향을 결정짓는 하나의 잣대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보한집’은 강화도에서 출간된 우리 문학사의 중요 저작이다.

그런데 말년의 최자는 ‘삼도부’를 쓸 때와는 달리 항복론자가 되었다. 최씨 무신정권이 막을 내린 1259년 1월, 최자는 “강도는 땅이 넓고 사람이 드물어서 굳게 지키기 어려우니 나가서 항복하는 것이 옳다”고 얘기했다.


/정진오 기자 schil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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