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괭이부리마을의 ‘색다른 10년 만든’ 우리미술관 구영은 큐레이터
“경계없는 문화로, 인천 첫 ‘공립미술관’ 계획”
‘진심과 경청’으로 연결… 전시·교육으로 가교
수준 제한, 배려 가장한 차별… 문턱 낮추고파
삶의 지혜·용기 얻는 ‘따뜻한 토대’ 만들 것

“태어나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봤어요.(웃음)” (만석동 6년 거주 최태화)
“우연히 알게 된 이후 우리미술관을 다니고 있어요. 어린 시절도 생각이 나고, 기분도 좋고, 힐링도 되고….” (만석동 똘똘이 엄마 홍재경)
“우리미술관이 생기면서 동네 구석구석이 깨끗해졌어요.” (만석동 45년 거주 김정자)
- 우리미술관 개관 10주년 인터뷰 영상 일부
지난 2015년 11월 인천 동구 만석동 쪽방촌 괭이부리마을 빈집만 남아있던 곳에 우리미술관이 들어섰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났다. 우리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카메라 앞에 선 마을 주민들의 어색하지만 솔직한 인터뷰를 들으면 동네 작은 미술관이 동네에 가져온 작지 않은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림을 그려본 이가 있는가 하면 사랑방 마실 가듯 미술관을 ‘다니는’ 이도 생겼고 냄새나고 지저분하던 골목길은 깨끗해졌다. 이곳 골목길을 한 번이라도 걸어 봤다면 지난 시간 우리미술관이 들어선 이후 생긴 변화가 놀랍고 기적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우리미술관은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일상 곁에 얌전히 둥지를 틀었다.

이러한 변화가 있기까지 주민과 예술을 잇는 일에 10년 넘게 마음을 다해 일을 참 열심히 한 누군가가 있었다. 우리미술관이 좁은 골목길 쪽방촌 마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건 우리미술관 구영은 큐레이터(제물포구 주무관)의 노력이 결코 적지 않다.
구영은 큐레이터는 2016년 7월부터 우리미술관 전시와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10년 가까이 인천문화재단 소속으로 일했고, 올해 직영 체제 전환에 맞춰 제물포구 소속이 됐다. 숫자로 성과를 보자면 그가 지난 10여년간 기획해 선보인 전시만 100여회에 이르며 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도 매년 평균 60회 이상 이어오고 있다. 숫자보다 중요한 성과는 미술관이 주민 일상에 자리 잡으며 마을에 없어서는 아니 될 일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가끔 우리미술관을 찾아가면 구 큐레이터가 마을 어르신뿐 아니라 모든 주민들과 서로의 안부나 끼니를 물으며 정답게 담소를 나누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웅장한 건물의 문턱 높은 대형 미술관 주변에서는 좀처럼 벌어지기 힘든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민들의 집 문만 열면 바로 마주치는 골목길 한가운데 자리한 미술관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10년 동안 한 자리에서 미술관을 가꿔온 그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난 19일 그를 만나 지난 10년의 소회를 물었다.
“예술이 나쁘지 않구나, 마을 어르신들이 이제야 정의를 내리신 것 같아요. 그래서 뿌듯합니다.”(웃음)
그는 “돌이켜보면 마을 어르신을 비롯한 주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적막함’이었던 것 같다”며 “주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지나갔는데, 미술관이 생긴 이후 사람들이 오가고 가끔은 북적여 좋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가 우리미술관과 인연을 맺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몰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그는 예술이라는 분야가 지닌 본질적인 ‘새로움’을 꼽았다. 그는 “매 순간 끊임없이 새로움에 대해 고민했다”면서 “한정된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지역의 서사를 깊이 있게 담아내고 주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당면 과제였다”고 했다.
교육 프로그램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지역 주민들에게 예술을 보다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소개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매번 새로운 기획과 다각도의 연구를 이어왔다.
“지역과 주민, 그리고 예술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나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네요.”

우리미술관이 그동안 ‘지역 예술가’, ‘주민’, ‘지자체 행정’이라는 서로 다른 세 영역을 훌륭하게 연결해왔다는 점을 지역 문화계에서 부정할 이는 없다. 그 비결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진심’과 ‘경청’이라고 답한다. 그는 “각 주체가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들었다”며 “그리고 그 소통의 결과물을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구체적인 언어로 구현하며 신뢰를 구축한 것이 가교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고 했다.
전문가로서 늘 마을 주민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발로 뛰며 소통한 그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전시를 준비하다 보면 ‘누구를 위한 전시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저는 언제나 ‘우리 모두를 위한 전시’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우리나라 ‘문화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이 성별, 세대, 지역,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를 향유할 ‘문화권’을 지닌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5조는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적·지리적 제약으로 문화에서 소외된 이들의 향유 기회를 확대할 책무가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미술관 문턱을 낮추고 단 한 사람의 주민이라도 더 예술과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미술관의 존재 이유이자 현장을 지킨 제 소명입니다.”
지난 10년의 여정이 늘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고 한다.
“행정적·현장적 한계 때문에 지치고 슬럼프를 맞기도 했어요.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곁에서 함께 고민해 준 주변 사람들의 지혜였습니다. 또 사람과의 따뜻한 연대, 예술 그 자체가 주는 본질적인 힘 덕에 힘겨운 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미술관은 올해 제물포구 직영 체제로 전환하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미술관’ 정식 등록을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소규모 전시 공간이나 지원 사업 테두리에 머물던 우리 미술관이 국가적·법적 기준을 갖춘 ‘제도권 체계 내 정식 미술관’으로 전문성과 위상을 공인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식 등록이 이루어지면 소장품 관리와 기획전시의 질적 수준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되며, 예산 확보 및 타 전문 기관과의 협력에서도 공신력을 갖추게 된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멀리 나가지 않고도 집 가까운 곳에서 정식 공립미술관이 제공하는 수준 높은 콘텐츠와 체계적인 교육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인천 최초의 정식 구립 공립미술관이 되는 것이다.
그는 새로 출범한 제물포구 안에서 우리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문턱은 낮추되 예술은 타협하지 않는,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문화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미술관이 있는 곳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고령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뉴미디어나 현대적인 주제의 난해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단정 짓고 전시 수준을 제한하는 것은, 배려를 가장한 또 다른 차별일 수 있습니다. 나이나 경제력을 이유로 문화를 누릴 권리에 경계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최고의 전시를 준비하되, 이를 주민들의 일상 가까이서 누릴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하는 것이 미술관의 진짜 역할입니다.”

새로운 출발선에 놓인 우리미술관이다. 구영은 큐레이터는 미술관의 전문성과 예술을 추구하는 기획자의 본분을 앞으로도 잊지 않겠다고 했다.
“괭이부리마을 어르신부터 멀리서 찾아오는 방문객까지, 누구에게나 문턱을 낮춘 우리미술관에서 예술의 온기를 느끼고 삶의 지혜와 용기를 얻어갈 수 있도록 늘 따뜻하고 단단한 문화적 토대를 만들어가겠습니다.”

■ 구영은 큐레이터는?
▲ 구월초·구월여중·숭덕여고 졸업
▲ 동덕여자대학 회화과 학사
▲ 인하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석사
▲ 인하대 문화경영학 박사수료
▲ 2015년 인천문화재단 우리미술관 담당
▲ 2019년 인하대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겸임교수
▲ 2026년 인천 제물포구 문화예술팀 우리미술관 담당

/김성호 기자 ksh9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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