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시대, 사모신용·순환금융과 ‘메가프로젝트 딜레마’

한겨레 2026. 10. 2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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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2%대(장중 5.34% 최고 기록)를 웃돌고, 30년물 금리마저 5.6%를 돌파하는 등 글로벌 고금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민간소비가 급격히 살아나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른 글로벌 교역 구조의 재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에너지 가격 급등, 그리고 각국의 누적된 재정적자로 인해 고금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사모신용과 순환금융처럼 전통적 금융 규제와 관리 체계를 우회하는 기법들은 고금리 시대와 맞물려 심각한 금융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BIS가 경고하고 사모신용과 순환금융의 구조적 자본 리스크가 증명하듯, 리스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누적된 레버리지는 고금리 장기화 속에서 순식간에 신용경색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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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포트 - 여의도에서 보는 한국경제
지난 6월30일 오후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호남권에 반도체 생산공장(팹)을 만들겠다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사진은 반도체 공장 후보지 가운데 한 곳으로 거론되는 광주 첨단 3지구 일원. 연합뉴스

최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5.2%대(장중 5.34% 최고 기록)를 웃돌고, 30년물 금리마저 5.6%를 돌파하는 등 글로벌 고금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민간소비가 급격히 살아나고,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른 글로벌 교역 구조의 재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에너지 가격 급등, 그리고 각국의 누적된 재정적자로 인해 고금리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고금리 시대의 도래는 AI 전환을 위한 천문학적 투자의 성과에 어두운 구름을 몰고 오고 있다. 현재 아마존,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 4사의 연간 설비투자(CapEx) 규모는 700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내부 유보나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사모펀드가 특정 기업이나 인프라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를 단행하는 동시에 운영자금을 고금리로 직접 대출해 주는 사모신용(Private Credit)이 대거 등장했다.

보이지 않는 위험: 사모신용과 순환금융의 구조적 왜곡

문제는 그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기존 은행의 엄격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사모펀드가 직접 자금을 조달하여 신용을 제공하다 보니, 해당 자산의 공정 가치 평가가 어려워 장부가 또는 분기 단위 사후적 모델 평가(mark-to-model)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채권들이 유동화 과정을 거칠 때 리스크가 가격에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고, 특히 사모신용이 다층적인 차입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시스템 전반의 잠재 위험을 가리고 있다. 주요 펀드들이 유동성 경색에 대비해 분기별 5% 한도의 환매 제한(Gating)을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와 같은 거대 사모펀드가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을 위한 펀드에서 이 안전장치를 작동시키는 배경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AI 투자 열풍의 실물 경제적 성과는 양극화되어 나타난다. 엔비디아와 티에스엠시(TSMC), 그리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핵심 하드웨어 및 메모리 업체는 AI 가속기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영업이익률 60%를 넘는 수익성과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순이익을 실현 중이다. 반면, 이 인프라를 막대하게 사들여 데이터센터를 건립하는 빅테크들은 전혀 다른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들의 분기별 합산 자본적 지출은 이미 500억~600억 달러 규모에 달해, 막대한 외형 성장에도 불구하고 핵심 지표인 잉여현금흐름(FCF)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규모 수익을 거두는 메모리 업체가 자사 제품 조달 자금을 융통해 주는 ‘순환금융(Circular Investment)’이 고안된 것이다. 엔비디아가 월가와 손잡고 추진하는 5000억 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AI 인프라 자금조달 패키지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국제결제은행이 경고하는 ‘3대 리스크’와 2008년 서브프라임의 망령

사모신용과 순환금융처럼 전통적 금융 규제와 관리 체계를 우회하는 기법들은 고금리 시대와 맞물려 심각한 금융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 10월 1일 AI 생태계의 ‘순환적 투자 관계(Circular Investment Relationships)’ 실태와 그 금융 안정성 파급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전격 공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BIS가 정의하는 순환금융이란 특정 기간 AI 기업 간에 투자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이들이 동일 기간 내에 공급자-고객 관계를 복합적으로 공유하는 구조를 뜻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사이 AI 기업들의 전체 투자 거래 중 무려 28.7%(거래액 기준)가 피투자 기업 역시 AI 기업인 ‘동업자 간 자금 돌리기’였고, AI 기업으로 유입된 전체 자금의 55.2%는 다른 AI 기업으로부터 공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같은 AI 간 투자 거래의 46.4%가 반도체 칩이나 클라우드 등 상업적 공급 계약으로 직접 이어졌다. 이 구조는 고금리 시대 빅테크 AI 투자의 리스크를 세 가지 측면에서 증폭시킨다. 첫째, 자본과 공급망이 한 몸처럼 얽히면서 시장이 진정한 실수요와 버블을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내생적 수요 왜곡과 불투명성 증대’가 발생한다. 둘째, 투자자인 동시에 공급자인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때 지분 가치 폭락과 매출 붕괴가 동시에 닥치는 ‘이중 노출에 따른 전염 효과(Contagion)’가 커진다. 셋째, 사모신용이나 빅테크 생태계 내부의 순환금융이 본질적으로 ‘폐쇄적 내부 거래’ 성격을 띠어, 은행의 엄격한 신용평가를 거쳐야 할 고위험 프로젝트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가격을 오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기억을 소환한다. 당시 금융완화 환경 속의 주택담보대출이 유동화 과정을 거쳐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으로 잘게 쪼개져 장부 외로 숨겨졌듯이, 현재의 AI 사모신용과 순환금융도 매우 유사한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다. 서브프라임 당시에는 상업은행들이 직접 부실 채권을 대거 보유해 은행 파산으로 이어졌지만, 현재의 사모신용 등은 연기금, 보험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NBFI : Non-Bank Financial Intermediaries) 중심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부실 역시 대형 은행들이 제공한 레버리지 신용공여(Subscription lines)를 통해 전통 금융권으로 역류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치명적인 위험 고리다. 실제로 글로벌 사모신용 시장은 전통 은행의 대출 규제(바젤 III 등) 공백을 파고들어 약 2조달러(약 2700조원) 규모를 넘어섰고, 자체 자기자본에 더해 은행에서 제공받은 신용공여와 레버리지 대출을 통해 총자산의 1.5배~2배 이상을 인프라 자산 매입에 나서고 있다.

메가프로젝트의 기로: SK의 ‘문어발식 확장’ 위험과 삼성의 ‘실리적 내실’

최근의 글로벌 금융환경, 즉 고금리 시대의 도래로 자본비용이 치솟는 환경은 우리에게 메가프로젝트의 냉정한 우선순위 조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최근 월가에서 “AI가 아니라 치솟는 채권 금리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냉소적 경고가 터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채권 시장의 높은 금리와 시장의 엄정한 ‘위험 가격결정(Risk Pricing)’은 우리에게 자본이 유한하다는 진실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BIS가 경고하고 사모신용과 순환금융의 구조적 자본 리스크가 증명하듯, 리스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누적된 레버리지는 고금리 장기화 속에서 순식간에 신용경색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무분별한 투자에 나서기보다 자본의 냉정한 규율, 즉 위험의 가격을 직시해야 한다. 이미 70%를 웃도는 영업이익률로 확실한 캐시카우(Cash-cow)를 증명한 메모리 반도체 등 비교우위 부문의 우위를 단단히 공고히 하는 한편, 자금 회수와 유동성 불확실성이 큰 데이터센터와 서비스 영역의 투자 속도와 범위를 냉정하게 조율하는 ‘전략적 우선순위의 재설정’과 비은행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고 서둘러야 한다.

특히 총 4755조원에 달하는 메가프로젝트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SK그룹의 투자 방향을 이 리스크 관리의 잣대로 재점검하는 것이 시급하다. SK그룹은 AI 인프라 확장, 즉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1000조원, 반도체 공급 확장 프로젝트에 1100조 원 등 총 2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설정하고, 2035년까지 전국에 15GW 규모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 우리 대기업들이 빠져들었던 전형적인 ‘문어발식 확장’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룹 내에서 막대한 현금을 창출하는 알짜 사업(메모리 등)의 이익을 바탕으로, 당장 현금 흐름 창출이 불확실하고 천문학적인 고정비가 소요되는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를 동시에 밀어붙이는 구조는, 고금리와 유동성 경색 국면에서 그룹 전체의 현금줄을 순식간에 마르게 만드는 복합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삼성그룹은 총 2655조원(평택·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및 지역 거점 포함)의 투자 재원을 투입하면서도, 데이터센터의 직접 소유·운영에 따른 거대 고정비와 인프라 부채를 떠안는 확장주의를 경계한다. 대신 평택·용인의 초격차 반도체 팹(Fab)과 AI 하드웨어·소부장 생태계 강화에 초점을 두어,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에 맞춰 첨단 메모리와 HBM, 그리고 핵심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하는 실리적 밸류체인 장악과 안정적인 현금흐름 창출에 집중함으로써 고금리 자본 리스크의 파고 속에서 스스로의 방어력을 다지고 있다.

채권 가격과 시장의 금리가 가리키는 신호는 명백하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AI 대전환의 시대, 우리의 메가프로젝트가 나아갈 길은 무모한 외형 확장이 아니라 철저한 금융 리스크 점검과 내실 중심의 우선순위 재설정을 통해 새로운 도약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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