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의 반도네온에 봄이 오고 가을이 머문다…‘사계의 판타지’

양형모 기자 2026. 10. 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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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금방 가고, 여름은 더디 간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봄', '여름', '흔적', '가을', '구름의 비밀', '퍼즐조각', '겨울', '밤의 환상곡', '피날레' 순서다.

진선이 연주하는 반도네온을 비롯해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가야금, 거문고, 해금까지 여덟 명의 연주자가 참여한다.

■ 탱고에서 출발해 클래식과 국악으로진선의 음악 여행 진선은 반도네온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온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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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구리아트홀서 창작 공연…사계절을 따라가는 열 곡의 음악 여행 반도네온에 가야금·거문고·해금, 클래식 현악기까지…서로 다른 악기의 아름다운 동행 중모리·세마치·자진모리에 탱고의 호흡…진선이 작곡한 새로운 사계절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봄은 금방 가고, 여름은 더디 간다. 가을은 늘 아쉽고, 겨울은 많이 길다.

해마다 네 번씩 찾아오는 계절인데 사람의 마음은 매번 다르다. 누군가에게 봄은 설레는 시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픈 이별의 기억이다. 같은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도 어떤 사람은 행복했던 날을, 어떤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얼굴을 떠올린다.

계절은 달력을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마음속 계절에는 달력도, 시계도 없다.

반도네오니스트이자 작곡가 진선이 그 마음의 사계절을 음악으로 그린다. 11월 15일 오후 5시 30분 경기 구리시 구리아트홀 유채꽃소극장에서 선보이는 창작 공연 ‘사계의 판타지’다.

부제는 ‘경계 없는 계절의 풍경’.

진선이 오랜만에 발표하는 신작들을 앞세운 공연이다. 직접 작곡한 음악에 반도네온의 숨을 불어넣고, 피아노와 현악기, 우리 전통 악기의 소리를 곁들인다.

이번 공연은 2026년 경기예술지원 공연예술 초연지원 선정작이다.

■ 봄에는 중모리, 여름에는 세마치…탱고가 만난 우리 장단

음악회는 반도네온과 피아노의 대화로 시작한다.

첫 곡 ‘프롤로그’다. 두 악기가 소리를 주고받으며 앞으로 펼쳐질 음악의 첫걸음을 뗀다. 반도네온의 묵직한 음색에 피아노의 맑은 울림이 얹힌다.

이어 등장하는 ‘봄’은 꽃비가 내리는 길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의 바탕에는 우리 장단인 중모리와 중중모리가 놓인다.

중모리는 느긋하게 걷는다. 중중모리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봄도 그렇게 조금씩 속도를 낸다.

처음에는 수줍다. 그러다 슬며시 들뜨고, 어느새 제법 신이 난다. 꽃이 피는 속도를 사람이 어찌 따라잡을까. 음악도 덩달아 바빠진다.

‘여름’에는 세마치장단이 등장한다.

초록빛 언덕과 바람, 햇살 아래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특히 명상 악기인 코시차임의 청아한 울림이 더해진다.

뜨거운 계절을 표현한다고 반드시 음악까지 뜨거워야 할 이유는 없다.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바람을 맞는 여름도 있으니까. 진선이 그리는 여름에는 그런 느긋함이 있다.

가을에 접어들면 음악의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가을’에는 자진모리장단과 정통 탱고에서 사용하는 일부 연주 기법이 함께 등장한다. 빠른 우리 장단에 탱고 특유의 힘과 긴장감이 스며든다.

가을이라고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 듣고 있을 수는 없다. 진선이 그리는 가을은 제법 급하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흩날리고, 마음도 가만있질 못한다.

가을의 빠른 장단이 멎으면 겨울이 찾아온다.

‘겨울’은 눈 덮인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에서 출발한 곡이다. 첼로가 낮게 울고, 해금의 가느다란 소리가 찬 공기를 가른다. 그 사이로 반도네온이 천천히 긴 숨을 내쉰다.

겨울이라고 늘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은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고요가 오히려 더 시릴 때가 있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나무는 그 자리에서 겨울을 견딘다. 눈이 녹고 다시 새잎이 돋아날 때까지.

■ 계절은 네 개, 음악은 열 곡…그 사이에 숨겨둔 이야기들 공연 프로그램은 모두 열 곡으로 구성됐다.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봄’, ‘여름’, ‘흔적’, ‘가을’, ‘구름의 비밀’, ‘퍼즐조각’, ‘겨울’, ‘밤의 환상곡’, ‘피날레’ 순서다.

흥미롭게도 사계절 사이사이에 다른 제목의 곡들이 놓여 있다.

‘흔적’, ‘구름의 비밀’, ‘퍼즐조각’ 그리고 ‘밤의 환상곡’.

계절에 이름을 붙인 신작들 사이에 진선의 기존 창작곡들이 더해져 공연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밤의 환상곡’은 진선의 두 번째 정규앨범과 같은 이름을 가진 곡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오지만 그 사이에는 수많은 일이 생긴다. 만나고, 헤어지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가 뜻밖의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문득 떠오르는 것도 대개 그 사이 어디쯤이다.

■ 반도네온과 가야금, 거문고가 만나면 어떤 소리가 날까

이번 공연의 또 다른 즐거움은 악기들의 만남이다.

진선이 연주하는 반도네온을 비롯해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가야금, 거문고, 해금까지 여덟 명의 연주자가 참여한다.

피아노는 황안나, 바이올린은 방가연, 비올라는 윤서아, 첼로는 우아람이 맡는다. 가야금은 한혜진, 거문고는 장윤혜, 해금은 서윤주가 맡아 우리 음악의 색채를 보탠다.

반도네온은 참 묘한 악기다.

주름상자를 두 손으로 벌리고 오므리며 소리를 낸다. 아코디언을 닮았지만 음색은 아주 많이 다르다. 활화산 같은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다가도 어느 순간 오래된 편지를 읽는 듯한 쓸쓸함을 들려줄 수 있는 악기를 대라고 한다면, 반도네온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반도네온은 사람의 호흡을 닮은 악기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듯 악기를 움직이는 동안 선율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그 사이에 남는 미세한 떨림. 반도네온 특유의 애틋함은 아마도 여기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해금이 들어온다. 해금 역시 사람의 목소리를 닮은 악기다. 가늘게 떨리는 소리부터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소리까지 표현의 폭이 넓다.

가야금과 거문고도 빠질 수 없다. 줄을 뜯고 튕기며 만들어내는 두 악기의 리듬은 반도네온의 긴 호흡과 색다른 대비를 이룰 수 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는 음악에 색채를 덧입힌다. 피아노는 때로 선율을 이끌고, 때로 다른 악기의 이야기에 바싹 귀를 기울인다.

진선은 여덟 악기의 서로 다른 특성을 살리면서도 하나의 음악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작품을 구성했다. 계절마다 악기의 역할과 음악적 호흡에도 변화를 줬다.

■ 탱고에서 출발해 클래식과 국악으로…진선의 음악 여행 진선은 반도네온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온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2010년 이탈리아에서 반도네온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탱고를 기반으로 음악적 경험을 쌓았지만, 이후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했다.

2012년 첫 정규앨범 ‘La Puerta’를 발표했다. 이어 자신의 창작곡을 담은 두 번째 정규앨범 ‘밤의 환상곡’을 선보였다.

‘반도네오니스트 진선의 음악선물’, ‘청춘에세이’ 등 기획 공연도 마련했다. 독주뿐 아니라 트리오와 콰르텟, 퀸텟 등 다양한 편성으로 관객을 만났다.

클래식과 기계 기술을 접목한 공연 ‘클래식 메카트로니카’에서는 음악감독과 연주를 맡았다. 익숙한 악기로 낯선 음악을 만드는 일에도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진선에게 반도네온은 탱고만을 위한 악기가 아니다. 어떤 음악이든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줄 수 있는 악기다.

이번 ‘사계의 판타지’에서도 그런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장단을 타고, 가야금과 거문고를 만나고, 해금과 함께 계절을 노래한다. 악기들의 고향은 서로 다르지만 음악 앞에서는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진선이 책임프로듀서와 음악감독까지 맡아 준비한 공연이다. 작곡가로서 오래 품어온 음악적 생각들이 반도네온의 숨을 타고 구리아트홀에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계절이 있다. 행복했던 봄보다 슬펐던 가을이 더 선명할 수도 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겨울이 그리워지는 날도 있다.

계절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다. 그러나 그 계절을 살아낸 사람은 처음의 그 사람이 아니다. 진선의 반도네온은 그 아름다운 균열을 음악으로 들려주려 한다. 지나간 계절을 그리워하면서도, 다시 찾아올 계절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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