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은상] 김혜영 ‘황과 량’

황 속에는 쓸쓸함과 그리움이 있다 황, 하고 발음하면 어릴 때 뛰어놀던 마당이 있고 잎 진 나뭇가지가 있고 추수 끝난 빈 들이 있다
황, 소리에는 씁쓸함과 예측불허의 놀람과 환한 표정이 있다 낮은 구름이 바람에 빠르게 밀려가는 미지의 서쪽이 있다
백일홍과 코스모스 만발한 얼굴의 꽃섬과 물이 다 빠져 아랫도리까지 내놓은 꽃섬의 민망한 얼굴이 있다
가을 저녁 고향 집에 돌아와 노을 쪽으로 향하던 만옥 오빠, 기어이 노을을 향해 떠나간 쌍꺼풀 깊은 눈이 있다
량 속엔 명랑한 소녀의 웃음이 있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가는 자의 자유가 있다
계곡을 흐르는 카랑한 물소리가 있고 차고 맑은 마음이 있다 량이란 말 속엔 어질고 어린 새도 살아 랑 랑 울 것도 같다
길을 가다 동무가 다가오면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언제든 품어주는 아량이 있다 짐스럽다 변덕을 부리면 사뿐, 발끝을 돌리는 서늘함이 있다
량은 랑보다 느리지만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아량이 있고 길고 긴 웃음의 꼬리를 가졌다
황과 량이 만나 우주가 넓어졌다
◇김혜영(필명 김령) 수상소감
응모를 하는 일은 씨앗을 심는 일과 같다. 싹을 틔울 수도 흙 속에서 영영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씨앗을 심는 것은 희망을 심는 일이다.
되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따뜻한 봄날 돌담 밑에 핀 노오란 민들레와 아지랑이, 그리고 할아버지 등에 업혀서 까지목 쪽을 바라보며 자꾸 고개를 들어 신작로를 바라보던 것이다. 기다림의 대상은 바뀌었겠지만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 기다림 끝에 받은 이번 수상 소식은 모처럼 반갑고 기뻤다.
경북이나 포항을 와 본 적이 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고향 남쪽에서는 아주 멀고 먼 항구 도시이다. 분명한 건 이제 포항은 내게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호미곶에서 뜨는 해를 상상하고 호미곶에서 지는 해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포항~ 하고 발음하면 항이라는 둥글고 명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항상 떠오를 것이다.
이 아름다운 가을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신 <호미곶 흑구문학상> 주최와 주관 기관인 경북일보와 부족한 글을 눈여겨보고 이름 불러주신 심사 위원들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약력
△성 명: 김혜영 (필명 김 령)
△ 약 력: 전남 고흥 출생. 2014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 부문 수상. 2017년 《시와 경계》로 작품활동 시작함. 시집으로 『어떤 돌은 밤에 웃는다』,
『성냥은 상냥과 다르지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