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 마음이 서로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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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료센터가 동료 시민의 아픈 하루를 함께 지탱하기 위해 '일, 낸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혼자인 윤지는 의논할 일이 생기면 지역에 있는 청년 단체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스토킹하는 카페 손님으로부터의 안전을 걱정해주는 본사 매니저가 있어서 민이가 덜 위험할 수 있었고 잘못된 계약으로 빚이 생긴 현지가 동료의 도움이 있어서 헤어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걸 보면, 아주 사소하고 사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의 틈새에서 젊은 여성들이 서로를 도와 서로를 살리는 반짝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릴 수 없다. 여성들 스스로는 공기처럼 물처럼 늘 있는 것이어서 이야기로 전하지 않고 세상은 약자들이 서로 돕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지 않아서 듣기를 청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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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회복 지원사업에서 만난 용기 있는 여성들… 취약함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전태일의료센터가 동료 시민의 아픈 하루를 함께 지탱하기 위해 ‘일, 낸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은 몸과 마음을 다친 노동자의 ‘하루치 병원비’(2만1천원)를 매달 선결제하는 기부 연대입니다. 내가 낸 ‘1’(일부/하루/노동)로 누군가의 회복을 돕고, 그가 다시 우리 일상을 든든하게 지켜줍니다.
한겨레21은 ‘나의 1, 당신의 하루’를 매달 다른 필진의 시선을 담은 연속 기고로 전합니다. 일 내는 동료가 되시려면 아래 정보무늬를 찍어주세요. _편집자

‘자기야, 자전거도 씹어먹을 나이에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자신감이 없어서 남들 앞에 서기가 힘들다는 20대 여성에게 호통인 듯 위로인 듯 큰 소리로 말을 건네자 사람들이 웃는다. 유튜브에서 코미디 프로를 틀어놓고 딴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진행자도 관객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훈훈한 마무리다. 나는 그 박수 소리가 진심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떤 20대는 기운을 내기 위한 ‘기운’이 다 빠져나가고 있어서 우리가 나서서 되찾아줘야 해, 속으로 덧붙여보았다. 의지만 있다면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걸 전자의 기운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기운’은 그 믿음이 현실이 되도록 받쳐주는 정신적·신체적 회복력을 포함해서 너무 크게 상처받지 않아야만 남을 수 있는 희망 같은 거라고 말하겠다. 모든 청년이 자전거를 씹어먹을 정도까지의 왕성한 힘은 아니더라도(그럴 필요도 없다) 고갈되지 않는 상태는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보호해주고 보장해줘야 한다.
약해서 밀려난 게 아니다
실적을 채워야 성과급도 받고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회사의 말에 숨 막히도록 일했던 은주가 결국 실적은 애초에 채울 수 없는 목표였고 자신처럼 절박한 젊은이들을 싼값에 쓰려는 회사의 꼼수일 뿐이었음을 알았을 때 아프지 않고는 그 시간을 날 수 없었다. 스무 살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은주는 언제나 일했다. 근로장학생으로 알바로 학비를 대면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공기관의 단기일자리를 옮겨다니면서 정규직 시험을 준비했지만 일하면서 취업 준비를 한다는 건 불리한 조건이었고, 시험 낙방 후 은주가 온통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일 때 구인공고를 보고 들어간 곳이었다. 성과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회사는 바로 은주를 잘랐다.
나가라는 말을 듣고 나왔지만 자발적 퇴사로 보이므로 은주는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생활비가 떨어져갔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못했다). 5평 원룸에 웅크리고 홀로 있는 은주를 보고 사람들은 왜 아침이 와도 방의 커튼을 열지 않는지, 왜 창밖의 푸른 가로수들을 볼 생각을 않는지 나무랐을지도 모른다. 주말에도 명절에도 목이 조여오는 압박감을 견디면서 회사에 간 은주의 분투를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그래서 은주는 속으로 앓았다. 커튼을 열기 위해 은주는 다시 연결되고자 애썼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하고 심리상담을 받았다. 은주 자신이 힘을 냈다. 창의 커튼을 다시 연 은주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영어학원 등록이라서 듣는 나는 마음이 아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네 배달업체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일을 시작한 윤지는 배달 첫날 자동차와 부딪혀 사고를 내고 응급실에 갔다가 바로 걸어 나왔다. 어깨가 아팠지만 윤지의 과실이라서 윤지가 치료비를 내야 했다. 적은 돈도 윤지에게는 큰돈이었다. 배달수수료에서 사장이 빌려준 오토바이 임대료를 물면서 나머지를 가져가야 하는데 오토바이는 너무 낡았고 마음이 급한 윤지는 자주 미끄러졌다. 윤지의 몸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물류센터로 옮겨서도 상황은 비슷하게 돌아갔다. 컨베이어벨트로 흘러오는 물품을 분류하다 머리를 다쳐 응급실에 실려갔지만 일당을 못 받을까봐 물류센터로 돌아갔다. 정작 머리가 아파 일을 나갈 수 없을 때는 혼자 누워 있었다. 혼자인 윤지는 의논할 일이 생기면 지역에 있는 청년 단체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나도 그 단체 사무실에서 윤지를 처음 만났다. 내 연락처를 받아간 윤지는 내게 연락해 산업재해 신청 절차를 묻기도 하고 부채 상담할 데를 찾기도 했다.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필요한 서류를 못 찾을 때도 있고 며칠씩 답장이 없을 때도 있어서 나도 자주 의욕이 꺾이고는 했다. 그러나 윤지는 자신의 취약함 위에서 사람들과 연결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아온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청년여성 산재회복 지원사업을 하면서 윤지를 비롯해 용기 있는 젊은 여성들을 만나면서 배웠다. 약하기만 하고 남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약자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약자는 없었다.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건 정치와 그 정치가 만들어야 하는 제도가 못나서 그렇게 된 것이지 그 사람이 약해서가 아니었다. 존재하고 있어도 존재가 없는 듯이 함부로 말하고 지급해야 할 작은 몫조차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무례하게 구는 이들과 대적하느라 힘을 빼앗겨 약해질 뿐이다.
반짝이는 여성들의 연대
스토킹하는 카페 손님으로부터의 안전을 걱정해주는 본사 매니저가 있어서 민이가 덜 위험할 수 있었고 잘못된 계약으로 빚이 생긴 현지가 동료의 도움이 있어서 헤어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걸 보면, 아주 사소하고 사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의 틈새에서 젊은 여성들이 서로를 도와 서로를 살리는 반짝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을지 헤아릴 수 없다. 이렇게 여성들의 연대는 여성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이지만 귀하게 이야기되지 않는다. 여성들 스스로는 공기처럼 물처럼 늘 있는 것이어서 이야기로 전하지 않고 세상은 약자들이 서로 돕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지 않아서 듣기를 청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은주가 작은 방의 커튼을 다시 닫지 않고, 윤지가 삐걱거리고 상해가는 자기 몸을 살피며 다시 누군가의 연락처를 받아 씩씩하게 도움을 받고, 또 다른 현지와 민이가 작아 보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손길로 서로를 보살필 수 있도록 당신과 나도 서로를 믿자.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서로를 살린다는 걸 믿자.
(*이 글에 나오는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아무도 나를 몰랐지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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