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위기를 기회로"… 호르무즈 봉쇄에도 K윤활기유는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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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공장에 있는 시설을 그대로 옮겼다고 보면 된다. 복사판이나 마찬가지다."
14일(현지시간) 스페인 남동부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에 위치한 일복(iLBOC) 공장.
1995년 일찌감치 울산에 윤활기유 생산 공장을 설립한 SK엔무브가 한국에서 1만 ㎞ 떨어진 스페인까지 와서 합작회사를 차린 이유는 뭘까.
실제 이날 항만에서 28m 높이의 윤활기유 저장탱크 16개를 볼 수 있었는데 이태훈 일복 공장장은 "2주에 한 번씩 이 탱크에 있는 윤활기유가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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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한 윤활기유 생산회사 일복(iLBOC)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수급 불안에도
유럽 시장에 안정적 공급처로 급부상
카타르 산업단지·사우디 아람코 피격에
일복 전략적 가치 부각... 역대 최대 실적

“울산 공장에 있는 시설을 그대로 옮겼다고 보면 된다. 복사판이나 마찬가지다.”
14일(현지시간) 스페인 남동부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에 위치한 일복(iLBOC) 공장. 파이프라인과 저장탱크가 늘어선 이곳에서 대한민국 독자 기술로 개발된 최상급 윤활기유가 분주하게 생산되고 있었다.미국∙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도 물량을 안정적으로 맞추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윤활기유는 자동차 엔진 오일에 주로 쓰이는 윤활유의 주원료로, 최상급인 그룹Ⅲ로 분류된다. 그만큼 엔진 보호 성능이 우수하다. 일복은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 엔무브와 스페인 최대 에너지 기업인 렙솔이 2014년 지분 70대 30대 비율로 설립한 합작회사다.
스페인에 합작회사 차린 이유는

1995년 일찌감치 울산에 윤활기유 생산 공장을 설립한 SK엔무브가 한국에서 1만 ㎞ 떨어진 스페인까지 와서 합작회사를 차린 이유는 뭘까. 한국의 독자 공정 기술력과 유럽 에너지기업의 인프라가 결합해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란 게 업체 측 설명이다. 현지 공장을 울산 공장 설비를 그대로 본떠 만든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설립 초기 SK엔무브 울산 공장 직원들이 대거 파견돼 초기 가공을 지원하기도 했다.
문필규 SK엔무브 유럽법인장은 “유럽은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3사를 비롯, 고품질 윤활유 수요가 많은, 선진 자동차 제조사들이 위치한 데다 엄격한 환경규제로 윤활유 교체주기에 대한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며 “원료 확보에 유리하고 연중 상시 접안이 가능한 항만을 보유한 스페인의 지리적 이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항만에서 28m 높이의 윤활기유 저장탱크 16개를 볼 수 있었는데 이태훈 일복 공장장은 “2주에 한 번씩 이 탱크에 있는 윤활기유가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간다”고 말했다. 이 공장의 연간 생산 능력은 100만 톤이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악재 뚫었다

일복이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은 건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해협 봉쇄 등 수급 불안 악재에도 안정적인 공급처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윤활기유Ⅲ 공급량의 20~30%를 담당하는 핵심 생산 거점인 카타르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올 3월 피격되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커진 상태였다. 설비 복구에 1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에 일복이 중동발 공급 공백을 보완하는 주요 공급처로 부상한 것이다.
실제 일복의 윤활기유Ⅲ 시장 점유율은 35%로 전 세계 1위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기업 아람코와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다국적 에너지기업 셸이 그 뒤를 따른다. 최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는 예멘 친이란 반군 후티가 19일 아람코 본사와 주요 석유 시설을 타격하면서 일복의 전략적 가치는 더 부각된 상태다.
중동 상황의 영향으로 SK엔무브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14배 늘어난 6,919억 원이 됐다. 하나증권이 예측한 3분기 영업이익도 1조2,374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다만 윤활유 제조사와 장기 계약하는 구조상 이 같은 실적은 생산량 증가보다는 가격 상승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문필규 법인장은 “당장 점유율이 늘어난 건 아니지만 중동 사태 이후 기존 고객이 아닌 다른 업체의 문의가 증가할 정도로 시장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 업체인 SK엔무브가 윤활기유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건 진입장벽이 큰 분야이기 때문이다. 일찍 뛰어들어 고품질 원료를 확보하고 최상급 윤활기유를 만드는 배합식을 개발한 동시에 고객 네트워크를 확보한 것이 주효했다. 다만 엔진 오일이 필요 없는 전기차 점유율이 늘어나는 건 도전 과제다. 문필규 법인장은 “향후 수년간은 큰 타격이 없지만 전기차로 100% 전환되는 시대에 대비해 전기차용 윤활기유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카르타헤나= 정승임 특파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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