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존재하며 '우리'로 나아가는 법…〈In C〉가 전하는 안부
사샤 발츠의 〈In C〉
팬데믹으로 공연장이 문을 닫았던 2021년 3월, 베를린 레디얼시스템(Radialsystem)에서 라이브 스트리밍된 사샤 발츠&게스트의 〈In C〉 초연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서로 신체를 접촉할 수조차 없던 시기, 화면 속 무용수들은 서로를 좇고 비껴서며 '함께 존재함'의 감각을 선사했다.
지난 9월 12일 레디얼시스템 개관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다시 만난 〈In C〉는 그 기억을 전혀 다른 온도로 불러냈다. 화면이 아닌 실제 무용수들의 신체가 눈앞에서 호흡했고, 애시드 파울리를 비롯해 로드니 바레토, 레지스 몰리나, 다니엘 알렌 오베르토, 카를 이바르 레프세트 등 5명의 뮤지션이 미니멀 음악의 거장 테리 라일리(Terry Riley)의 동명 곡을 라이브로 연주했다.
1964년 발표된 테리 라일리의 〈In C〉는 53개의 짧은 음악적 형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53개의 악구는 순서대로 연주되지만, 각 형상의 반복 횟수와 악기 편성, 연주 인원 및 전체 시간은 모두 연주자의 자율에 맡겨진다. 정해진 규칙과 조각을 조합하는 '레고 세트'처럼, 매번 전혀 새로운 음악이 탄생하는 구조다. 사샤 발츠는 이 열린 구조를 안무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53개 악구에 대응하는 53가지 움직임을 구축하고, 무용수들이 공간 안에서 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규칙을 설계했다. 무용수의 수와 연주 시간이 매번 달라지는, 즉 '구조화된 즉흥'의 안무가 완성된 배경이다.

무대는 오렌지빛 배경 앞에 13명의 무용수가 실루엣으로 서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거의 알아채기 힘들 만큼 서서히 움직임이 살아난다. 어깨를 굴리고, 몸을 으쓱하고, 발을 내딛는다. 깨어나는 몸이다. 배경 스크린이 청록빛으로 바뀌면 새벽이 아침으로 넘어가는 듯하고, 한 움직임 악구에서는 무용수들이 팔을 뻗은 채 서서 마치 햇볕을 쬐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곧 움직임은 대담해진다.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채 회전하고, 오른 다리를 들어 왼 다리 뒤로 걸으며 한 바퀴 돌아 달려 나가는 동작이 이어진다. 낮은 아라베스크로 도약하거나 팔을 활짝 벌려 허공에 몸을 기댄다. 때로는 옆으로 런지하며 손을 목을 스치듯 움직이고, 턱 아래에서 손가락을 떨거나 바닥에 몸을 눕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형상들이 공간을 채우지만 하나의 장면으로 굳어지지는 않는다. 여름날 공원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 같다. 사람들이 마주치고, 잠시 무리를 이루어 머물다가 다시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어떤 순간에는 운동이나 플래시몹처럼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고, 몇 초 뒤에는 다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듀엣은 순식간에 솔로나 트리오, 콰르텟으로 바뀌고, 그룹은 모래처럼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용수들이 서로 적응하고, 결합하고, 가까워졌다 멀어지면서도 전체의 미묘한 공존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연자들이 완전히 하나의 동작으로 동기화되는 일은 오히려 드물다. 대신 서로의 움직임을 읽고, 자신의 속도를 조절하고, 순간적으로 형성된 관계에 반응한다. 그럼에도 각각의 모방의 몸짓은 개별성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의 받아들임의 행위가 된다. 자기 자신으로 남으면서도 타인과 함께 존재하는 방식이다.
즉흥처럼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공연자들의 정교함은 실로 놀랍다. 몸이 하나의 공유된 정교한 엔진처럼 작동하는 동기화와 반복의 수행 속에서, 때때로 이들의 입술은 소리 없는 숫자 세기를 드러낸다. 무용수들은 음악을 타며 움직임에 몰입한 듯 보이면서도 서로의 반응을 살핀다. 다른 무용수가 다가오면 방향을 바꿀지, 함께 갈지를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 먼저 나아가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뒤에 머물고, 그 차이가 오히려 전체를 움직인다. 무용수들이 서로 엮이는 방식에는 동물의 의례, 바다 생물의 구애, 혹은 새의 춤을 닮은 무언가가 있다. 섬세함으로 공동의 조직에 우아하게 들어가는 길을 빚어낸다. 그래서 〈In C〉는 우연과 기하학적 엄격함 사이, 개인과 집단 사이를 계속 오간다. 처음에는 비슷한 움직임들이 흩어져 만들어내는 안무적 혼돈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객은 그 안에서 나름의 질서와 내적 논리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 〈In C〉는 몸이 움직이는 음향적 건축이 된다.

색채는 이 건축을 계속해서 만들고 부순다. 배경은 약 15분마다 색이 바뀌는 거대한 캔버스다. 파스텔톤의 유희적인 의상(야스민 레포레, Jasmin Lepore)을 입은 무용수들은 이 배경 앞에서 검은 실루엣으로만 보인다. 이는 마치 크로스비 해변에 선 안토니 곰리의 작품 〈Another Place〉의 인체 조각상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명(올라프 다닐센, Olaf Danilsen)은 단순히 장면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간에 대한 지각을 바꾸고 감정적 전환을 부각한다. 어떤 순간에는 마치 제임스 터렐의 설치 작품 〈Aftershock〉 안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준다. 하지만 이 화려한 시각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색과 빛은 무용수들의 몸과 음악 사이의 관계를 계속해서 다시 보게 만든다. 때로는 너무 많은 움직임이 동시에 발생해 눈이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갑작스러운 유니즌이나 자로 잰 듯 나란한 몸들이 나타나며 다시 질서를 만든다.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에는 놀라운 지구력이 필요하다. 쉼 없이 이어지는 춤이 계속되면서 땀자국이 점점 의상을 물들여간다. 몸에 밴 땀은 이 작업이 지적인 구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된 육체적 수행임을 말없이 증언한다. 한 시간 가까이 무대 위에 머무는 무용수들은 자신의 한계까지 몸을 밀어붙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 그 집중력은 놀라울 정도다. 음악에 몰입한 듯한 얼굴 위로 이따금 시선 하나, 미소 하나가 스치며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이 생긴다. 그 팽팽한 긴장이 잠시 느슨해지는 순간, 관객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다섯 뮤지션의 라이브 연주는 〈In C〉의 현재적 에너지를 단숨에 끌어올린다. 테리 라일리의 미니멀 음악을 느긋하고 사색적인 음향으로 관조하게 하기보다는 경쾌한 템포와 지속적인 강도로 몰아붙인다. 그렇다고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몸을 맡길 수도 있고 때로는 잠시 빠져나올 수도 있는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밴드의 ‘청각적 안무’와 몸의 ‘시각적 음악’이 얽히면서 춤과 음악 사이에 독특한 대화가 생겨난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따금 안무가와 음악이 마치 천생연분처럼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저 곡에 무난히 맞아떨어지는 춤이 아니다. 조지 발란신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제롬 로빈스와 레너드 번스타인, 머스 커닝햄과 존 케이지 사이에서 가능했던 것 같은 특별한 예술적 교감이다. 사샤 발츠의 〈In C〉는 바로 그런 경우에 가깝다. 음악이 53개 악구를 먼저 끝내고 무용수들이 아직 진행 중일 때 생기는 침묵도 그 일부다. 침묵은 소리의 감각을 증폭시키고 우리의 자각을 깨운다. 음악이 사라진 뒤에도 이어지는 무용수들의 박동하는 숨소리와 리드미컬한 소리가 극장을 채운다. 침묵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더 또렷하게 감지하게 하는 시간이 된다.

〈In C〉의 가장 매력적인 관람 포인트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결코 파편화된 개인주의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샤 발츠는 팬데믹 시대의 연대와 책임이라는 화두를 안무의 개념으로 가져왔다. 개인의 완벽한 동작만으로는 이 작품이 완성될 수 없으며,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곁으로 다가오는 상대에 맞춰 방향을 바꾸고 동행을 선택하는 순간, 무대 위에는 갑작스러운 조화가 발생한다. 즉흥적으로 형성되는 유니즌과 대형, 기하학적 배치는 개인이 전체에 응답할 때 일어나는 역동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개인이 모여 하나의 사회적 전체를 이루는 과정은 곧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탄생하며 'In Corona'라는 상징을 품은 이 작품이 현시대의 무용으로 읽히는 이유다.
〈In C〉는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조화가 양립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누구도 뒤처지게 두지 않고, 서로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며 함께 나아가는 태도. 이는 단순한 무용 작품을 넘어 바람직한 집단성의 가치를 칭송하는 하나의 축가로 기능한다. 칼 융이 언급한 ‘집단무의식’의 영역을 건드리며, 21세기의 혼돈과 신세계 속에서 길을 찾는 우리에게 〈In C〉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베를린=김정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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