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리센느도 넘었다…가짜 양주 '캪틴큐'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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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큼 주류업계가 침울해 있던 적이 있을까요.
이에 40~50대에게는 대학 시절 멋모르고 마셨던 캪틴큐에 대한 추억이 구매욕을 북돋았고 캪틴큐를 본 적도 없는 20대에겐 '예전에 유명했던 엄청난 술'이라는 이미지가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
수입 주류가 아닌 국내 주류 기업이 럼을 만들어 판매하는 건 재출시한 '캪틴큐'가 처음입니다. 초저가 주류인 '캪틴큐'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동시에 실리까지 챙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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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앱 검색어 1위…전 채널 품절 사태
4050에겐 추억, 2030에겐 밈으로 유명해

그가 돌아왔다
올해만큼 주류업계가 침울해 있던 적이 있을까요. 술 마시는 사람이 도통 보이지 않습니다. 대학교 앞 술집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고 그나마 열린 곳도 음료수와 '무알코올 맥주'가 더 잘 팔립니다. '국민 주류' 맥주와 소주는 누가 먹나 싶을 정도로 판매가 부진합니다.
보통 이러면 위스키나 와인, 사케 등 다른 프리미엄 주류가 잘 팔린다는 신호인데요. 요즘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른 주종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그 시간에 운동을 하는 사람이 늘었죠. 그렇다보니 주류업계에 별다른 이슈가 생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오랜만에 주류업계에 활기가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술을 구매하는 모습이 오랜만에 재현됐습니다. '전설의 술'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롯데칠성음료의 '캪틴큐' 재발매 소식입니다.
롯데칠성은 지난 2015년 단종된 양주 브랜드 캪틴큐를 최근 재출시했습니다. 캪틴큐는 롯데칠성이 1980년 출시한 브랜드인데요. 양주 브랜드라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사실 이 제품은 위스키도, 럼도 아닙니다. 아니 그 어떤 주종에도 포함되기 어려운 '가짜 양주'입니다. 소주처럼 고순도의 주정에 럼 향을 넣은 일종의 '혼합주류'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는 진짜 위스키나 럼은 너무 고가여서 대중들이 접하기 어려웠죠. 그럴 때 캪틴큐는 저렴한 가격에 양주를 마시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대용품이었습니다. 2015년 이 제품이 단종된 것 역시 국민들의 소비수준이 높아지며 더이상 '가짜 양주'를 마실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가짜 양주'가 술 안 마시는 세상이 된 2026년에 오픈런을 일으키고 품절 사태를 불러왔습니다.
리센느 이겼다
롯데칠성은 캪틴큐를 재출시하며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총 1만2000세트의 '캪틴큐 보물상자' 한정 패키지를 내놨습니다. 캪틴큐 2병과 전용 잔, 플라스틱 기념주화로 구성된 세트인데요. 최근 난리가 난 게 바로 이 보물상자 패키지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판매를 진행했던 CU와 GS25,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에서는 출시일이 되자마자 일제히 전용 앱에서 검색어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놀라운 건 CU였습니다. CU에서는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검색어 순위를 싹쓸이하고 있는 리센느의 '리센느 빵'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리센느 빵은 전국 CU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키며 검색어 순위 1위를 장기 집권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 리센느를 '캪틴큐'가 눌렀습니다.

세븐일레븐 공식 모바일앱에서는 지난 9일부터 16일까지 '캪틴큐' 검색량이 30만건을 돌파하며 해당 기간 내 재고찾기 총 검색량의 15%를 차지했습니다. 출시 당일 전국에 깔린 '보물상자' 패키지가 완판됐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서도 오픈런이 이어졌습니다.
주요 주류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인증샷과 재고 정보 공유가 잇따랐습니다. 웬만한 명품 싱글몰트 위스키 출시 소식보다 더 '핫'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왜 사람들은 이 가짜 양주에 열광하고 있는 걸까요.
스토리, 맛 다 잡았다
캪틴큐의 인기 비결 첫 번째는 스토리텔링입니다. 캪틴큐는 한창 잘 팔리던 1980~90년대에도 숙취로 악명이 높던 술입니다. 숙취가 너무 심해 이틀이 지나야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숙취 없는 술'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단종 후엔 캪틴큐를 마셔 본 사람에겐 추억으로, 접해보지 못한 20대에겐 '전설'로 회자됐습니다. 의도치 않게 스토리가 부여된 겁니다.
이에 40~50대에게는 대학 시절 멋모르고 마셨던 캪틴큐에 대한 추억이 구매욕을 북돋았고 캪틴큐를 본 적도 없는 20대에겐 '예전에 유명했던 엄청난 술'이라는 이미지가 호기심을 갖게 했습니다. 재출시된 캪틴큐를 구매하는 소비층이 어느 한 세대에 집중되지 않은 이유입니다.
랜덤으로 실제 은화를 넣은 '가챠(랜덤뽑기) 시스템'도 인기 비결 중 하나입니다. 롯데칠성은 총 1만2000세트가 제작된 '캪틴큐의 보물상자' 패키지 중 캪틴큐의 출시 연도와 같은 1980세트에 1.5돈 상당의 진짜 은화를 넣었습니다. 이 은화만 해도 패키지 구매 가격에 버금가는 가치입니다. 혹시 내가 구매한 패키지에 은화가 들어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구매욕을 부추겼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맛'입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벤트를 기획해도 본질인 맛이 형편없다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2026년에 주정에 향을 탄 가짜 양주를 내놓아선 팔릴 리가 없습니다. 롯데칠성은 '가짜 럼' 캪틴큐를 '진짜 럼'으로 만들었습니다. 캐리비안 럼 원액을 버번 캐스크와 PX셰리 캐스크에 1년간 숙성한 '진짜 럼'입니다.
수입 주류가 아닌 국내 주류 기업이 럼을 만들어 판매하는 건 재출시한 '캪틴큐'가 처음입니다. 럼을 흉내낸 가짜 양주로 시작했지만, 이번엔 '진짜 양주'가 돼 돌아온 셈입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고물가에 360㎖ 1병 기준 9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럼을 판매한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초저가 주류인 '캪틴큐'의 이미지를 이어가는 동시에 실리까지 챙긴 겁니다.
롯데칠성의 이번 '캪틴큐' 출시는 스토리와 품질이 조화를 이룬 제품이 있다면 시장이 침체돼 있어도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소비자는 냉정합니다. 아무때나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살 만한 제품'에는 거침없이 돈을 냅니다. 다른 주류 기업들도 소비자들이 술을 안 마신다며 속상해할 시간에 '마시고 싶은 술'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여 보면 어떨까요.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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