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회사’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2026. 10. 20.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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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이천공장 근무자 각종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 위험
암 투병 노동자와 사망자 유족 산재 신청…반도체 신화 뒤편의 그늘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서 오퍼레이터로 일했던 고 윤영미씨가 2024년 남편 김용일씨, 두 아이와 함께 공장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용일씨 제공

집에서 5㎞쯤 떨어진 은빛 건물을 지날 때마다 큰아이는 “우와, 엄마 회사 진짜 크다”고 했다. 윤영미씨는 그 큰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에 감사해했다. 청소용역업체에서 현장관리자로 일하는 남편보다 벌이가 훨씬 좋았다. 병으로 휴직한 뒤에도 치료비 일부를 지원받고, 두 아이를 태권도장과 피아노학원, 수학학원 등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회사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윤씨 가족이 사는 경기 이천 갈산동에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웃이 많다. 동네 아파트단지에 야시장이 들어서는 날이면 닭꼬치와 소떡소떡을 사먹고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초등학생들이 하룻밤에 몇만원씩 쓰고 다닐 정도였다. ‘엄마 회사’ 반도체 공장은 그렇게 동네의 살림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서 일하다 질병으로 휴직 중이던 윤씨는 2024년 가족을 데리고 공장 투어를 했다. 회사가 직원 가족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윤영미 TL님 가족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공장 입구 대형 스크린에 엄마의 이름이 떠 있었다. 주로 대졸 엔지니어에게 쓰이던 TL(Technical Leader·기술리더)이라는 직함은 그해부터 윤씨와 같은 생산직 직원(오퍼레이터)들에게도 붙기 시작했다.

가족은 대형 스크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유리벽 너머로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클린룸을 구경했다.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운반로봇(OHT)이 웨이퍼가 담긴 용기를 실어날랐고, 그 아래로 흰 방진복에 마스크를 쓴 직원들이 오갔다. 엄마도 한창 일할 때는 저런 차림으로 클린룸을 돌아다녔다.

공장 구내식당에서 아이들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주문했다. “엄마는 좋겠다. 회사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네”, “너희도 좋은 직장 다니면 이렇게 할 수 있어.” 집으로 돌아와 윤씨가 남편에게 말했다. “빨리 복직해야겠어.” 그러나 그는 끝내 돌아가지 못했다. 올해 4월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윤씨의 나이 48세.

남편이 몰랐던 아내의 일

윤씨는 1996년 이천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사했다. 당시 회사 이름은 현대전자였다. 반도체 가격 폭락과 외환위기를 겪고,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SK그룹에 인수되기까지 회사는 몇차례나 부침을 겪었다. 그동안에도 공장은 24시간 내내 돌아갔다. 생산직 직원들은 밤낮을 바꿔가며 교대로 일했다. 이후 4조 3교대로 바뀌면서 그나마 쉴 여유가 생겼다. “그땐 너무 힘들었어. 월급도 적고…. 그래도 지금이 낫지.” 회사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않던 윤씨가 언젠가 퇴근 후에 남편 김용일씨에게 했던 말이었다.

윤씨가 처음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은 근무 23년 차였던 2018년이었다. 유방암 3기였다. 항암치료와 수술을 마친 뒤 남편은 아내가 좀 더 쉬기를 바랐다. 그러나 윤씨는 회사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2019년 복직했다. 1년 조금 지나 암이 재발했다. 2024년 가족과 함께한 공장 투어 때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 가발과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안 좋아졌어요.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올해 초 윤씨는 남편에게 퇴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 일단 치료부터 생각하자”고 남편은 답했다. 윤씨는 지난 3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이었다.

고 윤영미씨의 남편 김용일씨(가운데)가 지난 10월 7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 앞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노동자 집단 산업재해 신청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제공

남편 김용일씨는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특수건강진단서를 찾아냈다.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받는 검진이다. 생전 아내는 퇴근하면 머리가 아프고 몸이 힘들다고 했다. 작업 중 무언가 튀어 보호복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혹시 아내의 유방암이 작업환경과 관련이 있었던 건 아닐까. 김씨는 아내의 동료들에게 연락했다. “죄송합니다.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김씨는 “회사에는 누가 얘기해줬는지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피해 가지 않을 거예요”라고 거듭 말했지만 아내의 업무를 자세히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김씨가 아내의 유품과 특수건강진단 자료, 동료들의 단편적인 말을 모아 알아낸 것은 이 정도였다. 아내는 이천 공장에서 품질관리팀, 오염제어기술팀 등에 속했고, 클린룸에서 파티클(미세입자)을 측정하거나, 불량 웨이퍼에 증착된 물질의 성분과 농도를 측정하는 일을 맡았다. 특수건강진단 자료에는 메탄올, 톨루엔, 아세톤, 에틸벤젠, 포름알데히드, 엑스선, 구리 분진, 주석 등이 검진 대상 유해인자로 적혀 있었다. 이는 해당 유해인자에 대한 노출 가능성을 고려해 건강진단을 받았다는 의미다. 다만 이 자료만으로는 실제 노출 수준이나 그러한 노출과 유방암 발병 사이의 관련성까지 알 수는 없다.

야간근무도 마음에 걸렸다. 국제암연구소는 야간근무를 발암 추정 요인인 2A군으로 분류했다. 장기간의 야간근무와 유방암 발생 위험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씨는 아내의 작업환경과 오랜 교대근무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답을 찾지 못했다. 아내가 살아 있었다면 조금은 수월했을까. 생전에 왜 아내의 일을 더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을까.

‘영업비밀’의 장막

하지만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도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됐는지 충분히 알지는 못했다. 지난 10월 10일 충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모씨(43)는 남편, 초등학생 딸과 함께 나왔다. 김씨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혈액암의 일종인 호지킨 림프종 2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라고 했다. 항암제 부작용과 감염 우려 때문에 평소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2006년부터 2015년까지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의 이온주입공정 오퍼레이터로 일했다. 실리콘 웨이퍼에 특정 원소의 이온(붕소, 비소, 인)을 주입해 전기적 특성을 갖게 만드는 공정이다. 천장의 운반로봇(OHT)이 웨이퍼 25장이 담긴 용기를 가져오면 이온주입장비를 가동하고, 공정을 마친 웨이퍼가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도록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제가 다뤘던 게 보론, 아세닉, 포스핀 같은 거였죠.” 김씨는 당시 접했던 물질의 이름을 영어로 기억했다. 보론은 붕소, 아세닉은 비소, 포스핀은 인화수소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때는 이 이름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공장에서 대피했던 기억도 있다. 김씨는 근무하는 동안 두 차례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한 번은 클린룸에서 빠져나와 강당에 모였고, 다른 한 번은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어떤 물질이 문제가 됐는지는 알지 못했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운영규정

김씨가 회사를 떠난 2015년, 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이천사업장에서 사용하던 화학제품은 428종이었다. 이 가운데 187종(43.7%)은 일부 성분명이나 함량이 영업비밀로 처리돼 있었다. 매일 장비를 다루는 오퍼레이터조차 자신이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온주입공정에는 화학물질 외에 방사선 노출 위험도 있다. 이온주입장비 내부에서는 엑스선이 발생한다. 방사선이 외부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차폐 구조물을 설치하지만, 차폐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2023년 한국산업보건학회지에 발표된 연구(반도체 제조 이온주입공정의 이온 임플란타 장치에서 엑스레이 발생 특성)를 보면, 조사 대상 이온주입기 상당수의 외부에서 임계치보다 낮은 수준의 엑스선이 검출됐다. 연구진은 장비의 일부 틈새에서 차폐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김씨의 딸은 엄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씨와 남편이 항암치료에 관해 이야기하자, 옆에서 동화책을 읽던 딸이 말했다. “엄마가 일주일이나 사라져요.” 엄마가 치료를 받으러 집을 비우는 일이 아이에게도 익숙해져 있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김씨는 자신이 왜 병에 걸렸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젊은 나이에 림프종이란 병에 걸렸는지, 가족의 일상이 왜 무너져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

김씨를 만난 다음 날, SK하이닉스 엔지니어로 일했던 고 홍정민씨의 아내를 만날 예정이었지만 인터뷰가 취소됐다. 남편을 떠나보낸 뒤의 시간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홍씨는 2006년 입사해 약 17년간 메모리 반도체 응용제품 개발과 보드 실장평가 업무를 맡았다. 메모리 반도체가 자동차, PC, 서버 등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작동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등을 파악하는 일이다. 납땜과 테스트 작업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납과 플럭스 등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씨는 2024년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지난해 12월 4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전한 글에는 남편에게 회사가 어떤 존재였는지 담겨 있었다. “그에게 하이닉스는 자랑이었고 기쁨이었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자기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출근길을 좋아했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그런 훌륭한 직원이었습니다.” 홍씨는 마지막으로 말을 할 수 있었을 때까지도 이렇게 말했다. “다시 회사 나가고 싶어. 아이들 더 보고 싶어, 살고 싶다.”

경기 이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엄마 회사’라는 말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서 일했던 이들 노동자와 사망자 유족들은 지난 10월 7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산재를 신청했다. 윤씨의 남편 김용일씨는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내의 작업환경을 알아보는 일이 너무 답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이온주입공정 오퍼레이터 김씨는 항암치료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고, 뇌종양으로 사망한 홍씨의 유족도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았다.

세 사람의 산재가 인정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은 반도체 노동자에게 발생한 유방암, 악성림프종, 뇌종양 등 8개 질병에 대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생략하고 신속하게 산재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이 신속 심사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 질병은 대상에 포함되지만, 일했던 공정과 직무가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포토·식각·이온주입 공정의 오퍼레이터, 악성림프종은 포토·테스트 공정의 오퍼레이터, 뇌종양은 이온주입 설비엔지니어 등 특정 공정과 직무에 한해 신속 심사가 적용된다. 일반적인 심사를 거쳐 산재를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질병 발생 특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관계기관 조사 시에도 법령과 절차에 따라 성실히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얼마 전 윤씨의 남편 김용일씨는 아이들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SK하이닉스 공장을 봤다. 아이들이 외쳤다. “엄마 회사다.” 김씨는 언젠가 아이들에게 엄마가 다녔던 회사와 엄마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아내의 죽음이 오랜 노동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 “‘엄마 회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이 철렁해요. …그런데 쉽게 꺼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직 그 얘기를 못 했어요.”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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