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에 쌓인 부친의 기억, 오늘 되살린 아들… 성북을 잇는 '지붕 없는 미술관'

인현우 2026. 10. 20.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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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이 수묵추상화로 유명한 산정 서세옥(1929∼2020)과 설치미술가인 아들 서도호의 작품을 나란히 세웠다.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인 바 있는, 부친이 세우고 아들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성북동 한옥이 부자를 잇는 핵심 연결고리다.

성북구립미술관을 중심으로 고려대박물관과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등이 열고 있거나 새롭게 여는 전시를 '집: 이어진 숨결'이라는 대주제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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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전역 걸친 '성북아트위크' 20일 개막
한양도성·심우장·삼청각 등에서 현대미술 작가 전시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세옥·서도호 부자 2인전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 전시된 서세옥의 '남향집'(왼쪽 사진)과 서도호의 '문고리'. 서세옥이 그린 집의 모습이 실제 성북동 한옥의 기억을 탁본 기법으로 그려낸 서도호의 작품과 연결된다. 성북구립미술관·작가 제공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이 수묵추상화로 유명한 산정 서세옥(1929∼2020)과 설치미술가인 아들 서도호의 작품을 나란히 세웠다.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보인 바 있는, 부친이 세우고 아들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성북동 한옥이 부자를 잇는 핵심 연결고리다. 모란, 불로초, 괴석, 복숭아 등 불로장생의 기호를 그려낸 서세옥의 '장생도'는 서도호의 탁본으로 재현됐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 붙인 서세옥의 수묵추상화는 인간의 모습과 집을 실로 꿰어낸 서도호의 작품으로 발전했다. 서도호는 "부친과 함께하는 전시는 처음"이라면서 "저와 부친의 관심사가 겹치는 점과 달라지는 점을 함께 조명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곳곳의 유산을 오늘날 동시대 미술 작가와 잇는 대규모 프로젝트 '성북아트위크'가 20일부터 문을 연다. 성북구립미술관을 중심으로 고려대박물관과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등이 열고 있거나 새롭게 여는 전시를 '집: 이어진 숨결'이라는 대주제로 묶었다.

조각가 정현의 '서 있는 사람'은 기찻길에 쓰인 침목을 재료로 만든 사람 형상의 조각으로, 역사의 흔적이 남은 한양도성 성벽 옆에 전시됐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미술관이 아닌 곳에서도 전시가 한꺼번에 열린다. 성북로 주변, 옛 삼선교에서 삼청각까지 이어지는 길을 중심으로 유적과 고택 등 옛 공간 11곳에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들어섰다. 1930년대부터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삶과 작업을 이어간 창작의 산실로서 성북구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재조명하려는 시도다. 작가들은 유적과 고택에 어울리는 작품을 전시하면서 공간을 구석구석 되돌아보고 의미를 되새기도록 유도했다.

조각가 정현은 기찻길에 쓰였던 나뭇조각 '침목'을 이용해 사람의 형상을 만든 '서 있는 사람' 7점을 역사가 켜켜이 쌓인 한양도성 바로 옆에 세웠다. 전시 장소를 직접 정한 정현은 "오랜 시간 기차의 무게를 견디고, 나무 아래 파쇄석에 찍힌 흔적이 쌓인 침목이 견뎌 온 '시간성'이 시대별로 다른 축성 방식과 돌의 흔적을 간직한 성벽의 시간성을 함께 증언한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삼청각 취한당에서 열리고 있는 유나얼의 전시 'Between Eras, Between Ears' 전시 모습. 유나얼은 폐기된 재료를 재활용한 디지털 콜라주와 설치작품을 통해 한국 현대사와 인간의 한계를 조명했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이우성의 '노래하는 마음으로'는 만해 한용운이 만년까지 머물던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 설치됐다. 깨달음을 찾아가는 여정의 끝에서 성북동에 사는 동물들과 어울려 노래하는 모습을 그렸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한성필의 '송석정: 비움으로 짓는 집'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별서 내 불에 타 복원 중인 송석정을 원래 모습을 그려 놓은 외벽으로 둘러친 작품이다. 복원될 송석정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품고 있다.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대중에게는 음악가로 유명하지만, 미술작가로서도 성북동에서 10년 전부터 작업해 온 유나얼은 겉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현대 문화공간으로 이용되는 삼청각에서 신작 10점을 포함한 25점을 전시한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의 특징은, 버려진 물건을 디지털 이미지로 만든 다음에 다시 인쇄해 잘라내고 이어 붙이는 유나얼의 '디지털 콜라주' 작품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회화 작가 이우성은 한용운이 말년을 보낸 심우장을 '흰 소'가 상징하는 깨달음의 경지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 회화 연작으로 꾸미고, 한성필은 지난해 화재 후 복구를 앞두고 있는 성북동 별서 내 건물 '송석정'을 원래 모습대로 그림을 그린 파사드로 둘러 감상하게 했다.

이 외에도 간송미술관과 성북선잠박물관, 스페이스 수퍼노말과 아트노이드178 등 근처 미술관·박물관·갤러리·대안공간 22개가 '네트워크 공간'으로 묶여 함께 전시를 소개한다. 전시장 간 이동은 20일부터 24일까지 운행하는 '성북아트위크 루프버스'가 맡는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 내 문화공간의 보존 가치를 나누고 동시대 예술로 새롭게 재해석하는 행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북아트위크는 11월 1일까지. 성북구립미술관의 서세옥·서도호 2인전은 12월 20일까지 열린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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