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32] ‘기사님’이 돼 만난 어릴 적 풍경

‘기사님’으로 통칭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가스·전기·인터넷, 각종 가구나 가전을 설치하고 수리하는 정비 기술자들이다. 우리는 가끔 그들을 집에 들인다.
“낮에 기사님 오시면 냉장고에서 음료 꺼내드려라.”
어릴 적, 기사님이 집에 오시는 날이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출근하셨다. 냉장고에는 몇 가지 음료와 어린아이도 내놓을 수 있는 과일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내 집에 오는 손님에게, 특히나 나를 도와주러 오는 이에게 음료와 다과를 대접하는 것이 한국 특유의 따뜻한 정이라 배우면서 컸다. 학습된 습관은 여전하다. 무언가를 놓거나 고쳐야 할 때면, 그래서 기술자가 필요할 때면 일부러 장을 본다. 평소의 나는 그분들께 드릴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다. 당일의 나는 그분들께 퀴즈를 낸다. 주스나 콜라, 커피나 물 중에 무엇을 드시겠느냐 묻는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다.
목수가 된 지금, 내가 그 대접을 받는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가구 배송일은 고객의 이삿날이었다. 물건과 사람이 계속해서 도착했다. 집주인은 여러 질문에 대답하느라 내가 도착하는 줄도 몰랐고, 직종은 다르지만 호칭은 같은 ‘기사님들’은 분주했다. 나 역시 한쪽에서 원목 책상의 다리와 상판을 연결하느라 바빴다. 정신없는 와중에 집주인이 접시를 들고 왔다. “달고 맛있어요. 쉬어가며 하세요.” 그릇 위의 복숭아는 잘 익다 못해 물렁물렁해 보였다. 이삿짐센터 사장님, 인터넷 서비스 업체 직원, 그리고 내가 차례로 포크를 쥐었다. 어머니가 내어드리라던 그 냉장고 속 과일들이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오래된 풍경 속에 어느새 나도 들어와 있었다.
가구 배송 길에 나는 많은 사람의 배려를 받는다. 건물 입구에서 가구를 들거나 밀어 옮길 때면, 유리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이 모자라 허둥지둥할 때면, 버튼을 대신 눌러주는 사람도 있다. 민폐가 될까 민망해 “얼른 내릴게요” 하면 늘 같은 답이 돌아온다. “괜찮아요. 조심히 내리세요.”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고, 삶은 이처럼 축복이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갈등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정치나, 시사를 보도할 수밖에 없는 언론의 터에서는 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아직도 내가 그때의 ‘기사님’이 되었다는 사실은 간지럽다. 어머니가 준비해 두신 오렌지주스를 내어드리던 어린아이는 이제 다른 집에서 커피를 받아 마신다. 홀로 공방에서 만든 원목 가구를 들고, 싣고, 옮기고, 내려 설치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늘 사소하고 실용적인 친절을 만났다. 그동안 만난 모든 친절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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