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적극적 미미, 처음 보는 서정적 미미

박경은 기자 2026. 10. 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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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무대 위
소프라노 선후배 황수미·박혜상
소프라노 황수미(왼쪽)와 박혜상이 오페라 <라보엠> 포스터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10년간 10여번
미미 된 황수미
“멋진 아리아보다
이야기 전달 중점”
목소리 맞춤 역
반가운 박혜상
“잘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운 소리”

“언니가 어떤 미미를 그릴지 벌써 느껴져요.”

소프라노 박혜상(38)이 황수미(40)에게 말했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두 사람은 오는 11월5~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에서 나란히 여주인공 ‘미미’ 역을 맡는다. 같은 배역이지만 두 사람이 그려낼 미미는 꽤 다를 듯하다. 황수미가 일레아나 코트루바스에 가깝다면 박혜상은 미렐라 프레니를 닮았다. 이들은 미미로 이름을 남긴 전설적인 소프라노다.

황수미는 코트루바스의 밝고 맑은 음색에 끌린다고 했다. 코트루바스는 대사를 건네듯 자연스럽게 노래하면서도 고음에서 강렬한 감정을 쏟아내는 성악가다. 프레니는 부드럽고 풍부한 서정적 음색으로 노래에 감정을 녹여내는 스타일이다. 박혜상은 어릴 때부터 프레니와 목소리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번 미미를 준비하면서 그의 노래를 집중해서 들었다. 황수미는 “혜상씨는 무대에서 정말 혼신을 다해 몰입하는 스타일”이라며 “이번에 많은 관객을 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미미를 노래하는 두 사람의 해석과 표현을 비교해보는 것도 이번 공연의 재미가 될 듯하다.

<라보엠>은 130년 동안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19세기 파리의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이 겪는 사랑과 우정, 이별을 그린다. 주인공 미미는 꽃을 수놓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여인이다. 이웃집 시인 로돌포와 사랑에 빠지지만 가난과 병마 속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순수하고 가련한 여인으로 기억되는 미미지만 두 소프라노가 바라보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

“저는 사실 무제타보다 미미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해요.” 황수미의 해석은 의외였다. 무제타는 이 작품에서 미미와 대비되는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여성이다. 황수미는 수줍고 조용해 보이는 미미가 사랑 앞에서는 오히려 더 적극적일 수 있다고 느꼈다. 로돌포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열쇠를 떨어뜨리고, 그가 열쇠를 찾았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그렇다.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황수미는 이런 미미의 영리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공연 초반에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박혜상의 미미는 현실보다 꿈에서 행복을 찾는 여성이다. “미미는 꽃을 수놓는 일을 하지만 그 꽃에는 향기가 없잖아요.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을 꿈꾸는 사람이에요.” 그런 미미에게 시인 로돌포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다.

2016년 독일 무대에서 처음 미미를 맡았던 황수미는 지난 10년 동안 10차례 넘게 이 역할을 노래했다. 첫 미미는 꽤 파격적이었다. 머리카락이 몇가닥 남지 않은 대머리 가발을 썼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자가 벗겨지며 그 모습이 드러나는 실험적 연출이었다.

유명한 아리아를 멋지게 부르고 싶은 욕심도 앞섰지만 10년이 지나면서 지금은 달라졌다. “성악적으로 무엇을 보여주느냐보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얼마나 인간적으로 풀어내느냐를 더 생각하게 돼요.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반면 박혜상이 미미를 연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래전부터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았다.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는 서정적인 리릭소프라노인데 그동안 더 가볍고 기교적인 레제로 계열의 역할을 많이 맡았다고 했다. 아시아 성악가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목소리에 맞지 않는 배역을 소화하며 힘들어한 시간도 있었다.

그는 “이번엔 그냥 자연스럽게 소리를 불어넣는 느낌”이라며 미미 역할이 커리어가 아니라 자신의 음악과 목소리 자체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도움닫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성악과 선후배 사이다. 박혜상이 1학년일 때 황수미는 4학년이었고, 대학시절 같은 교회 성가대에서도 노래했다. 2014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는 나란히 결선에 올라 황수미가 우승하고 박혜상은 5위를 차지했다. 박혜상은 “처음 나간 국제 콩쿠르에서 결선까지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는데 언니가 1등으로 호명되는 순간 ‘우리 언니가 해냈구나’ 싶어 정말 감동했다”고 말했다.

당시 황수미의 노래가 정말 화려하고 멋있었다는 박혜상의 회상에 황수미는 “화려한 건 오히려 혜상씨 쪽이었다”며 웃었다. 콩쿠르 이후 세계 무대에서 각자 활동해온 두 사람은 꾸준히 연락을 이어왔고, 뉴욕에서 만나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다. 같은 오페라 작품에 함께 출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경은 선임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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