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재구성에서 내일의 안전으로] ⑥ 서류엔 안전, 현장엔 위험…"엇박자 예방체계 바뀌어야"
위험성평가 노동자 참여·정보 공유 의무화
불법하도급 단속, 공공 넘어 민간현장 확대
부실시공·감리 소홀, 현장 감독 실효성 도마
지방정부 근로감독 확대 논의 속 과제 산적
전문가 "사후 적발보다 위험 선제 관리해야"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관련 법과 제도는 강화됐다. 광주 학동 참사 이후 해체공사 관리기준이 보완됐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 책임도 커졌다. 올해는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를 강화하는 등 사고 발생 이전에 위험을 찾아내기 위한 제도 개선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법률의 강화가 현장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했다. 학동과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에 이어 지난해 광주대표도서관 건설현장에서도 노동자 4명이 숨졌다. 사고의 원인은 달랐지만 안전기준이 실제 작업에서 지켜졌는지, 감독기관이 위험을 사전에 발견했는지라는 질문은 반복됐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기준이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고 이후 책임을 묻는 절차와 함께 위험요인을 미리 확인하고 제거하는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 노동자가 위험 찾는 제도…실제 개선까지
올해 산업안전제도에서 주목할 변화는 위험성평가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법 개정이다.
지난 6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성평가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와 주요 사항 공유 의무를 강화했다. 작업자가 직접 위험요인을 찾는 과정에 참여하고 평가 결과를 알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대책을 마련하는 절차다. 추락이나 붕괴 위험이 발견됐다면 평가서에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전시설 설치나 작업방법 변경 등 실제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
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 규정도 마련됐다. 다만 모든 사업장에 즉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상시 노동자 50명 이상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건설현장은 2027년 1월부터, 그보다 작은 사업장은 2028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여기에 반복적인 중대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경제적 책임과 노동자의 작업중지 권한도 강화될 전망이다. 지난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1년간 노동자 3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숨질 경우 기업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에 직접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과징금 제도는 법 공포 6개월 뒤 시행된다.
이처럼 안전관리 책임과 노동자의 참여 권한이 확대되고 있지만 제도의 실효성은 현장 이행 여부에 달려 있다.

◇ 공공 넘어 민간…불법하도급 단속 확대
정부도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단속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1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민간 건설현장 75곳을 대상으로 불법하도급과 대금체불 집중단속에 나선다. 공공 건설현장 중심으로 진행해 온 점검을 민간영역까지 확대하는 조치다. 이번 단속은 지난 12일부터 연말까지 운영되는 불법하도급 집중단속 및 자진신고기간의 일환이다. 국토부는 앞서 주요 공공기관 10곳과 함께 불법하도급이 의심되거나 신고가 접수된 공공현장 275곳을 점검 대상으로 선정했다.
민간현장 단속에는 국토부와 5개 지방국토관리청 소속 인력 등 15명이 투입되며 대한건설기계협회도 참여한다.
앞서 지난 5월 수도권 집중점검에서는 불법하도급 29건과 건설산업기본법 기타 위반사항 60건이 적발됐다. 건설기계 대여대금 체불 11건에 대해서는 1억2천580만원의 체불금액을 해소했다.
이번에는 신고포상금 제도와 현장점검도 연계한다. 신고가 접수된 현장과 대금체불이 발생한 현장을 집중단속 대상에 포함하고 실제 시공실태를 확인할 방침이다.
현장 노동자가 불법하도급을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지방국토관리청 공정건설지원센터의 신고용 QR코드와 대표전화가 담긴 안내문도 배포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 발주기관이 먼저 불법하도급 근절에 나선 데 이어 민간 현장까지 점검을 확대하고, 신고포상금을 통해 신고가 실제 단속과 처분으로 신속하게 이어지도록 하는 한편 자진시정도 함께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 서류 확인에 그친 점검…"예방 중심 감독 필요"
법과 제도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장 감독 역시 위반사항을 적발하는 데서 나아가 사고 가능성을 미리 낮추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광주대표도서관 사고는 이러한 과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시공과 검사·감리 과정의 적정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사고 이후 책임을 규명하는 것뿐 아니라 시공 당시 위험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가 중요해졌다.
안전감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점검 횟수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위험도가 높은 공정을 우선 확인하고 개선을 요구한 사항이 실제로 이행됐는지 재점검하는 절차가 뒷받침돼야 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도 민원이나 단속에 의존하는 사후 적발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정기 점검과 데이터에 기반한 위험시설 선별·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위반행위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행정제재보다 클 경우 제도의 억제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불법·다단계 하도급 관행과 형식적인 점검의 문제를 지적했다. 서류상 계약관계만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실제 현장의 작업구조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감독기관의 점검도 안전관리 서류의 작성 여부를 넘어 실제 작업자와 계약관계, 공정 변경,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함께 확인하는 방향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도 최근 건축물의 안전 문제를 단순한 법규 위반이 아닌 재난관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문 부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준공 이후 관리가 느슨해지는 문제와 행정기관 간 정보 공유의 한계를 짚으며, 건축·재난·소방 등 관계 부서가 함께 참여하는 합동점검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지방정부 감독 확대 논의…실행력 확보 관건
산업안전 관리에서 지방정부의 역할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특별시는 근로감독 권한의 지방 위임에 대비해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감독과 점검, 사후조치 등 일부 업무를 수행하는 방안을 추진계획에 반영했다. 관련 계획에는 전담조직과 인력 확보 방안도 포함됐다. 지역 특성을 잘 아는 지방정부가 감독에 참여하면 영세사업장과 소규모 공사현장의 위험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전문인력과 감독 역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업무만 늘어나고 예방 효과는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위험정보 공유와 공동점검, 시정조치 확인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감독체계의 확대가 실제 위험 제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후 적발 중심의 행정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현철 부회장은 위험도에 따라 관리 대상을 구분하고 단계별 조치를 명확히 안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설계도면 등 안전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부서 간 정보를 공유하는 통합 관리체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준공 이후에도 위험요인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행정기관과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명기 교수 역시 사고가 발생한 뒤 위반사항을 적발하는 방식만으로는 위험을 충분히 통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기적인 점검과 위험시설의 선제적 관리, 실효성 있는 행정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학동 참사 이후 해체공사 기준이 강화됐고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법적 책임도 확대됐다. 올해는 위험성평가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까지 도입됐다. 여기에 정부는 불법하도급 단속을 민간현장까지 확대하며 건설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 강화와 단속 확대만으로 사고 예방 효과를 단정할 수는 없다. 작업자가 발견한 위험을 개선하고, 사업주가 이를 실제 공정에 반영하며, 감독기관이 결과를 끝까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강화된 법이 사고 예방장치로 작동하는지는 결국 현장에서 확인된다. 안전제도의 성패는 새로 만들어진 규정이나 단속 건수가 아니라 사고 이전에 얼마나 많은 위험을 발견하고 제거했는지에 달려 있다. /조태훈·박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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