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세계서 유례 없는 ‘마르크스 지적유산과 단절된 사회’ 돼”···[만나듣다]⑪맑스엥겔스연구소장 강신준

김종목 기자 2026. 10. 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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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동아대 명예교수)이 사진 촬영 때 1890년 나온 마르크스 <자본>(Das Kapital) 독일어판을 보여줬다. “화폐 가치가 어느 정도냐”는 자본주의적인 질문을 했다. “수백만원 정도 할 것 같아요. 마르크스가 책 받을 사람 이름과 함께 사인한 1867년 초판은 수억원 하죠.” 마르크스가 친구이자 노동운동가 요한 게오르크 에카리우스에게 헌정한 초판은 2016년 영국 보넘스 경매에서 21만8500파운드에 낙찰됐다.

135년의 세월이 쌓인 1890년판엔 강신준의 시간도 들어 있다. 그가 이 정본을 포함해 여러 버전의 <자본>을 통독한 건 수십번이다. 논문, 칼럼, 발표문을 쓰다 인용을 확인하러 들춰본 걸 따지면 헤아리기 힘들다. 다시 “팔 생각이 있냐”는 세속적 질문을 던졌다. ‘돈과 이익’만 따지는 듯한 이 질문에 그는 “절대 팔지 않는다”며 웃었다. 그가 소장한 한국 최초의 <자본>(1947년, 서울출판사, 최영철·전석담·허동 번역) 번역본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용인 자택 방 한 칸을 메운 수백권의 마르크스 관련 서적을 두고도 “제대로 공부할 사람을 찾으면 주려 한다. 팔거나 버릴 생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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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촬영에 앞서 진행한 인터뷰 때 “<자본>은 내게 <성경>과 같다”는 강신준 말이 떠올랐다. 그는 엥겔스가 1886년 <자본> 영어판 서문에 쓴 “<자본>은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성경>이라고 불린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이 말을 했다. <자본>에 신격을 부여한 건 아니다. “<성경> 텍스트 하나를 두고도 목사가 매번 다르게 설교하잖아요. <자본>도 똑같아요. 이 사람 책은 볼 때마다 새 뜻을 새길 수 있어요. 정말 공부할 가치가 많은 책이지요.”

강신준 동아대 명예교수는 15년간 마르크스·엥겔스 전집(MEGA) 번역에 매달렸다. 한국연구재단 연구 과제에 탈락하면서 이 번역 작업은 사실상 끝났다. 계획한 79권 중 3권(6책)을 출간했다. 11권(17책) 번역 초고가 완성됐다. 그는 출간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번역과 교열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 9월21일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출간 책들(부록 포함)을 쌓아두고 촬영했다. 김종목 기자

이 유산은 현재를 알려주는 창이다. “지금 세계 금융자본의 문제도 <자본> 3권의 내용과 이어져요. 여기서 마르크스가 산업자본 외 순수한 불로소득으로 꼽은 게 둘 있는데, 하나가 부동산이고, 다른 하나가 금융시장 즉 신용입니다. 지금 ETF 등 금융자본 문제의 형태들이 1850~1860년대 영국에서 있던 그대로예요.” 강신준은 여러 이슈에서 마르크스를 거듭 소환한다. ‘인류 멸망’까지 거론되는 인공지능(AI) 미래 문제를 두고는 <자본> 제1권의 러다이트운동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당시 수공업 노동자들에게 기계는 지금 AI처럼 무시무시한 재앙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택시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하나는 회사가 기사를 고용한 ‘회사택시’이고 다른 하나는 기사가 택시를 소유한 ‘개인택시’가 있어요. 완전 자율주행이 도입되면, 회사택시 기사는 일자리를 잃고, 개인택시 기사는 일하지 않고 수입을 올릴 수 있죠. 둘 사이 결정적 차이는 마르크스가 생산관계라 부른 생산수단 소유 여부죠.” 그는 “AI가 불러올 문제는 그 기술을 사적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소유, 통제하면 멸망 같은 건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자본>은 내게 <성경>과도 같아

강신준이 마르크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해병대를 제대한 뒤다. 1974년 긴급조치가 연이어 발동될 때 군대에 끌려가 해병대에 배치됐다. 복학 뒤 철학자 헤겔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자본>을 처음 접했다. 따로 구해 읽으려 했지만, 책을 빌리지도, 살 수도 없었다. 도서관에 열람 신청을 하면 책 대신 ‘금(禁)’자 도장이 찍힌 신청서를 돌려받았다. 일본은 물론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출판되던 책이었다. 북한도 1980년대 김일성 주체사상 확립 이후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발간을 중단하며 ‘금서’로 지정했다. “마르크스·엥겔스 저술은 남북한 모두에서 기구한 운명을 겪은 거죠.”

강신준은 “못 읽게 하니 더 읽고 싶었다”고 했다. 파독 간호사인 누나에게 책을 부쳐달라고 부탁했다. 박정희 정권이 여러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소포 내용물을 검열하던 때다. “누님한테 다른 책 표지를 붙여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이 금지된 것을 받았을 때 그는 “황홀함”을 느꼈다고 한다. 1977년 일이다.

헤겔 법철학을 읽다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의 <헤겔 법철학 비판>을 공부했다. 이후 마르크스의 저술을 찾아 읽었다. 애초 마르크스를 공부하려 한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는 독일에서 ‘사회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3학년 때 ‘사상계’ ‘독서신문’을 열심히 읽었어요. ‘독서신문’에 도배가 된 게 프랑크푸르트학파였어요. 파독 간호사인 누님한테 독일에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독일어를 공부하고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독문학과(고려대)를 간 거예요.”

누나는 간호고등학교 졸업 뒤 파독 간호사에 지원했다. “당시에 여자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했죠.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님 혼자 빚을 잔뜩 안고 힘겹게 사셨어요. 누님이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아 돈을 보냈어요. 첫 등록금도 누님이 해줬고요.”

트럼프, 윤석열이란 야만의 등장은 견제장치인 마르크스주의 퇴조 때문

학부에 다니면서 유학 준비를 했다.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입학 허가도 받았다. 누나 집에서 기차로 오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셨어요. 아무도 모실 사람이 없는 거야. 유학을 포기했죠.”

사회철학 대신 찾아온 게 마르크스와 노동 문제다. 미국 마르크스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를 탐독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이론이 한국 현실을 매우 본질적이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확신했죠.” 고려대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과정 때 이 학교 최초로 마르크스의 이윤율 저하 경향 이론에 관한 학위논문을 썼다. 박사논문은 독일 노동운동의 기회주의 논쟁에 관한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을 당시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 변혁을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농협중앙회 조사부에 들어가 은행 업무를 봤다. 1985년부터 4년8개월을 일했다. 독일 한스자이델 재단이 농협 직원을 대상으로 유학생을 뽑았다. 독일어 시험도 봤다. “당시 농협에 경제학과 출신들은 많았지만 독일어를 하는 사람은 매우 귀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죠. 저는 독어도, 경제학도 공부했으니까요. 무슨 사정인지 독일 측에서 갑자기 유학지원 사업을 중단하면서 없던 일로 되어버렸답니다. 독일 유학이 두 번이나 좌절됐지요. 참 희한하죠.”

마르크스가 계속 강신준을 끌어들이는 듯한 일이 이어졌다. 서대문 농협중앙회 본부에서 일하던 강신준은 세종문화회관 뒤 민중문화사를 즐겨 찾았다. 당시 ‘좌파 텍스트’ 유통 아지트였다. 여러 문헌을 복사해 읽곤 했다. 친구 김태경이 이 서점에서 일했다. 나중 출판사 이론과실천사를 차린 김태경이 1986년 어느 날 여러 운동권 학생이 공동 번역한 <자본>의 감수와 교열을 부탁했다. 동독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 원고였다. “이적표현물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불고지죄로 처벌받을 땝니다. 감옥행을 각오한 친구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죠.” 여러 달 작업해 출판사에 보냈다. 책은 이듬해 9월1일 나오자마자 판매 금지됐다. 김태경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기소가 중지되고 판매 금지가 해제되면서 마르크스 관련 저술은 봇물 터지듯 나왔다.

강신준 교수가 1890년 나온 마르크스의 <자본> 독일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읽을 때마다 거듭 새 뜻을 새긴다는 점에서 <자본>이 <성경>과도 같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지금은 그 물줄기가 끊겼다. 마르크스에 관한 책 출간도, 연구도 고갈돼 간다. 단적인 예 하나가 서울대가 2024년 5월 학부의 마르크스 경제학 3개 강좌를 없앤 일이다. 강신준은 그해 7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우리는 야만의 길로 가는가’에서 <자본>이 2013년 유네스코의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선정된 점, 정규직 교수(김수행)가 담당하던 이들 강좌가 15년 이상 비정규직 교수에게 맡겨진 점, 경제위기, 보호주의 강화, 경제 양극화 등 당면 경제 문제에 부르주아 경제학이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 등을 열거하며 “요컨대 강좌의 폐지에는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까지 어떤 시간의 기억도 찾아보기 힘들다. 문명에 눈을 감고 야만의 문을 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라고 했다.

강신준이 15년째 이어온 작업도 단절됐다. 강신준이 9월8일 지인들과 아는 기자들에게 문자를 돌렸다.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가 문을 닫습니다. 마지막으로 <잉여가치론> 제3권을 부쳐드리려고 합니다.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2년 6월15일 마르크스·엥겔스 문헌의 정본 전집인 메가(MEGA·Marx-Engels Gesamtausgabe) 한국어판 출판을 목적으로 설립한 연구소다. 국제마르크스엥겔스재단, 독일 출판사와 메가 출판권 독점 계약도 맺었다.

한국연구재단 과제로 선정된 건 2018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맑스엥겔스연구소는 2023년 이후 3차례 한국연구재단에 지원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고도 두 번 떨어졌다. 재단 쪽에선 ‘전집 발간이 20년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과제’라는 걸 이유로 내세웠다고 한다.

“핑계죠. 독일 정부와 일본 정부는 메가 발간 사업을 1991년부터 각각 35년, 20년 이상을 메가 사업을 지원했어요. 재단은 ‘단기과제 연구’만 지원하겠다는 건지…. 단기과제에만 매몰된 한국 사회의 단면이죠. 일본은 꾸준히 받고, 한국은 평화상, 문학상 말고는 받은 적 없는 노벨상 발표 때마다 나오는 지적이지만요.”

물러서지 않았다.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미국, 일본 메가 편집자 등 8개국 30명의 마르크스 학자 서명을 받아 메가 한글판 지속을 탄원하는 청원서를 연구재단, 국회, 정부 요로에 제출했다. 일본의 메가 편집위원이자 마르크스 학자인 사이토 고헤이도 참여했다. “청원서를 들고 정치인, 관료, 학자들을 만났는데, 아무도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고 건성으로만 대응해요. 쇠귀에 경 읽기였어요.”

15년 이어온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번역 중단
한국연구재단 지원 이재명 정부에서도 2번 탈락

연구 출판을 이어갈 후속 연구자도 찾지 못했다. “동아대 교수 중에는 없고요. 학교 밖에 마르크스 연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있는데, 생업이 안 되니까 다들 불가피하게 중단하거나 포기했죠.” 강신준은 “상업성이 없는 데다 전집 완성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출판사는 의지를 잃었다. 기존 원고는 사장되고 전집은 중단될 게 지금으로선 확실하다”고 했다.

이제 한국 제도권 대학에서 남은 마르크스 연구 단체는 계간 ‘마르크스 연구’를 펴내는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이 유일하다. “정성진 교수 다음에 김덕민 교수가 이어가는데, 이곳도 연구재단 과제가 내년에 끝나요. 그 뒤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마르크스 없는 사회’ 즉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과 단절된 사회’가 된 거죠.”

‘마르크스 유산의 단절’을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근거로 들어 설명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과거를 밑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 미래의 목표를 위해 현재를 쌓아 올리는 방식이에요. 부산(과거)에서 서울(미래)로 가기 위해 중간에 대구와 대전(현재)을 거쳐 가는 구조인 셈이죠. 전체 여정을 입안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 사회는 미래의 전망 즉 목적지를 보지 않아요. 돈이나 이익 같은 것만 따지는 단기적 근시안에 매몰돼 있어요.”

그는 마르크스가 <자본> 제1권에서 자본가들의 생각을 압축해서 표현한 경구 “내일 일은 난 몰라!”와 함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 선택한 상황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미 존재하고 주어져 과거로부터 전해진 상황 속에서 역사를 만든다”는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고, 현재가 미래의 씨앗인 거죠. 지금 우리가 뭘 해야 될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면 바로 과제가 결정이 되는 거죠. 그런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두 단기적인 이해에만 매몰됐어요. 다들 잠깐의 경제적 번성에만 취해 있고요.”

강신준은 ‘금서’의 시대를 떠올리며 “마르크스 문헌 자체가 금지됐기 때문에 마르크스에 기댄 견제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말하는 본래 의미의 ‘좌파’는 한국에 존재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 금지와 단절 때문에 갑질, 군사문화, 혐오, 적대 같은 자본주의의 갖가지 모순이 야만적인 민낯의 형태로 난무하는 사회가 됐다고 봐요.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적 야만을 견제할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장치인 마르크스의 유산(문헌과 이론, 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보와 개혁을 내세우던 정당과 단체들 중 한 줌의 세력을 빼고는 더는 사회 변혁에 관심을 안 가지게 된 점과도 이어진다. 그는 “마르크스가 지적인 자산으로 한국 사회에 귀중하다는 걸 얘기해주는 노동조합도, 정당도, 정치인도 없다. 공부하는 사람들만 몇명 남아 있는데 그마저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출판 중단에도 홀로 번역 이어갈 것

서울대의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폐강 등을 두고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야만적 상태 때문에 강의 폐쇄 같은 거리낌없는 학문적 억압과 함께 윤석열 내란과 윤어게인 세력의 발호가 방치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는 국정감사 대상이고, 민주당은 감사 권한 주체입니다. 그러니까 민주당도 이 문제에 전혀 관심 없는 기득권 세력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줘요. 진보를 이념으로 내세우지만 경제적으로는 기존 자본주의 질서의 상층 수혜자·수호자인 겁니다.”

‘마르크스 없는 사회’ 문제를 다룬 신간 <비상구는 왼쪽에>(사계절)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두고 이렇게 썼다. “고가의 강남 아파트 소유, 특급 호텔과 비행기 상급 좌석 사용의 특혜, 부동산 투기 의혹, 갑질과 뇌물 수수, 재산 불법 증여와 성 비위에다 심지어 차별과 혐오까지 둘은 부조리를 사이좋게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태극기 부대와 윤어게인 세력, 그리고 문빠와 개딸이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강신준은 “트럼프와 윤석열의 등장은 우연적이거나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의 퇴조, 마르크스 없는 특이한 한국 사회라는 구조적 요인이 만들어낸 결과다. 모두 야만의 견제장치인 마르크스의 퇴조가 만든 현상”이라고 했다.

진보, 보수 모두 단기적 이익에만 매몰

“노골적인 혐오와 적대를 드러내는 트럼프와 윤석열 추종자들을 극우가 아니라 야만으로 불러야 한다”며 “마르크스를 경험하지 못한 사회라서 윤어게인이나 극우화를 ‘일탈’ 행위로 대응할 뿐”이라고 했다.

일본 상황도 전했다. “일본의 마르크스 연구 상황도 예전 같지 않죠. 그래도 사이토 고헤이나 사사키 류지 같은 젊은 학자들이 제법 있어요. 일본 대학들도 마르크스 전공 교수가 퇴임하면 전공자가 그 자리를 계승하면서 명맥을 유지하죠. 우리는 말살이 돼버린 겁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확하게 표현을 하면 그래요.”

강신준은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을 수용할 가장 기본적인 자료인 저술의 출판’, ‘이론에 대한 전문적 연구와 대중화’, ‘이를 기반으로 대중과 결합된 세력의 등장’ 순으로 마르크스의 유산을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 바람은 요원해 보인다. 맑스엥겔스연구소와 메가 출판 재개도 힘들어 보인다. 연구소를 설립하고도 속 편하게 연구, 번역을 한 적이 별로 없다. 중단 위기가 15년 내내 이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강신준이 떠올린 건 여러 노동자와 후원자다. 2013년 S&T모티브(옛 대우정밀) 노조 소속 노동자 440명과 대우버스 사무지회 노동자 230명이 670만원을 모아 후원했다. “그해 재일동포 사업가 한 분은 ‘일본에서는 전집도 발간했는데, 지금 1권을 시작한다는 게 너무 창피하다’며 매달 80만원씩, 수년간 1억원 가까이 후원했어요. 메가 작업이 2018년 연구재단 지원 사업에 뽑히고는 더는 후원 안 해주셔도 되고, 그간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려 만난 뒤로는 소식이 끊겼어요. 제일 감사를 표해야 할 분이죠.” 일화도 있다.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이 삼성 이재용 회장에게 소개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 같으면 그 사람이 누구든 ‘한번 만나볼까’ 싶기도 할 정도죠. 당시엔 ‘아무리 힘들어도, 재판 중인 재벌을 만날 것까지야’ 했죠.”

메가 한글판 전집은 원래 총 79권으로 기획했다. 현재 11권(17책) 번역 초고를 완성한 상태에서 중단됐다. 그중 3권(6책) 출판(도서출판 길)을 끝냈다. 그나마 위안은 “메가 한글판의 첫걸음을 뗐다”는 것이다. <자본> 제4권에 해당하는 <잉여가치론> 제1~3권을 완간하면서 한국에서 <자본>의 완결적 출판을 이뤘다. “제대로 들어준 사람은 없었지만 메가 한글판과 마르크스 사상의 고전적 의미를 한국 사회에 제기했다고 생각해요.”

강신준 교수가 지난 9월 21일 경기도 용인 자택 방에 모아둔 마르크스 관련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중단이 사실상 정해진 맑스엥겔스연구소에서 가져온 자료들이다. 김종목 기자

올해로 마르크스를 공부한 햇수가 50년이다. 20대 강신준이 마르크스에게서 뽑아낸 건 혁명이었다. “형사가 학교에 상주하고, 강의실에 들어와 교수를 끌고 나가던 시대였거든요. 박정희의 폭정이 극에 달할 때죠. 사회 변혁이 핵심 관심사였죠. 민주화와 혁명을 하는 데 가장 필요한 지적 유산이라고 여겼죠.” 70대 강신준은 “그때는 단발적인 사건으로서 혁명에 영감을 주는 인물로 마르크스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지금은 한국 사회 구조를 바꾸는 변혁에 중요한 고전적인 인물로 본다”고 했다.

자신이 보수화됐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예전 급진적 생각은 표피적이었어요. 지금은 단순히 전복하는 혁명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밑바닥에서부터 구조적으로 바꾸는 걸 혁명이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이 보수화됐다기보다 숙성해졌다고 봐요.”

강신준은 50년간 마르크스를 파고들었지만, 1970~1980년대 이름을 떨치던 마크르스 연구자들 여럿이 그사이 변절했다. 윤소영은 윤석열 지지자가 됐고, 김형기는 박정희 대통령 동상 건립추진단장이 됐다. 강신준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쓴 카를 카우츠키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단순한 사회주의자였는데, 엥겔스 비서로 발탁되고 런던에서 엥겔스를 만난 뒤에 ‘나는 그날 이후로 교화 불가능한(unbelehrbar·움벨레어바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고 고백해요. 유럽에는 마르크스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 중에 변절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한국 사람들의 변절은 결국 제대로 마르크스를 공부한 적이 없다는 걸 방증하는 거죠.”

강신준은 변절하지 않아 군소리를 들었다. 여러 사람이 “아직도 그거(마르크스 연구) 하고 있냐”는 핀잔을 줬다고 한다. 주로 ‘진보’를 내세우며 활동한 이들이다. 강신준도 ‘교화 불가능한 마르크스주의자’인 듯했다. 마르크스와 <자본>에 맹목적인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70살 강신준은 40살 강신준 없이, 또 10살 강신준이 없이 불가능하다. 그게 마르크스 변증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를 공부했으면 내 자산이 되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자산 위에 내가 얹히는 거거든요. 카우츠키가 ‘교화 불가능’하다고 표현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죠. 마르크스를 통해 자유의 세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걸 어떻게 포기하나요.”

인터뷰 뒤 그는 자택 한쪽에 붙은 텃밭으로 안내했다. 텃밭을 키우고 싶어 퇴직 뒤 이곳으로 이사했다. “자라는 식물을 보면서 생명이라는 걸 다시 배운다”고 말했다. 출판 중단과 연구소 폐쇄에도 그는 홀로 번역과 교열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이라는 생명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말 같았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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