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2억 달러 부어 개발한 EUV... 먼저 쓴 건 삼성과 TSMC였다

최연진 2026. 10. 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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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반도체만 만든 것이 아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 회로를 집어 넣고 메모리 반도체에 더 많은 자료를 저장할 수 있게 해주는 미세공정 기술이 인텔의 장비 개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인텔의 공적으로 반도체 상용화와 함께 반도체 생산장비 개발을 꼽는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일본 반도체업계는 장비 개발부터 부품 공급 등 모든 것을 일본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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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스토리]
'디지털의 역사' 인텔의 도전<15>

인텔은 반도체만 만든 것이 아니다.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장비도 개발했다. 인텔이 만든 장비가 오늘날 인공지능(AI) 개발의 초석이 됐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 회로를 집어 넣고 메모리 반도체에 더 많은 자료를 저장할 수 있게 해주는 미세공정 기술이 인텔의 장비 개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인텔의 공적으로 반도체 상용화와 함께 반도체 생산장비 개발을 꼽는다.

인텔 반도체 공장 시설. 인텔 제공

한계에 다다른 무어의 법칙

"방법이 없습니다."

1992년 인텔의 경영진들이 앤디 그로브 최고경영자(CEO)의 방에 모였다. 컴퓨터의 두뇌인 중앙처리장치(CPU)로 큰 돈을 벌며 다시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복귀했지만 내부 분위기는 심각했다. 이유는 반도체 개발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위기 의식 때문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반도체에 더 이상의 트랜지스터 회로를 집어 넣거나 메모리 반도체의 저장 용량을 늘리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한마디로 2년마다 반도체 회로의 집적도가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방법은 한 가지 뿐이었다. 무어의 법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것이다. 새로운 장비 개발을 제안한 인물은 인텔의 제조공정 연구를 총괄한 존 카루더스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부품 소재 개발을 하다가 인텔로 이직한 그는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요즘 AI 반도체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바로 그 EUV 장비다.

노광장비란 사진을 인화하듯 설계도에 빛을 쪼여 반도체 원판(웨이퍼)에 회로로 새기는 장비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리소그래피 장비라고 부른다.

당시 인텔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를 사용했다. DUV 노광장비는 198나노미터의 파장을 지닌 심자외선을 이용해 회로 설계도를 렌즈로 투과시켜 웨이퍼에 회로를 그렸다. 요즘 독자 기술로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격해 화제가 되고 있는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가 DUV 노광장비로 반도체를 생산한다. 따지고 보면 CXMT는 한 세대 이전의 장비 기술을 사용하는 셈이다.

더 빠른 연산을 하고 더 많은 자료를 저장하는 반도체를 개발하려던 인텔은 DUV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카루더스는 13.5나노미터의 파장을 지닌 극자외선을 사용하는 EUV 노광장비 개발을 제안했다. EUV는 DUV보다 광원으로 쓰이는 자외선의 파장이 짧아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다. 쉽게 말해 파장이 짧을수록 연필심이 가늘어 미세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 반도체업체 관계자는 "DUV 노광장비는 7나노미터 이하의 미세 회로를 가진 반도체를 생산하기 힘들다"며 "DUV 노광장비로 7나노 이하의 미세 반도체를 만들려면 여러 번 빛을 쏘여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완성품 비율을 뜻하는 수율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때까지 EUV 장비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2020년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공장을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ASML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EUV 노광장비를 양산한다. 뉴스1

EUV 기술 개발한 인텔

"2억 달러가 필요합니다."

카루더스가 EUV 장비 개발을 위해 제시한 비용이다. 그로브 CEO는 성공 여부를 알 수 없는 일에 막대한 투자를 하자는 제안이 달갑지 않았다. "성공이 확실하지 않은 일에 왜 큰 돈을 투자해야 하나?" 카루더스의 대답은 명확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반도체를 개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인텔은 EUV 장비 개발에 2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렇게 시작된 EUV 장비 개발은 무려 2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가능성이 보이자 인텔은 1997년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모토로라, AMD 등과 함께 민관합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EUV의 원천 기술을 공동 개발했다. 하지만 기술을 성공시키려면 장비를 만드는 업체가 필요했다.

그러나 1990년대 미국에는 노광장비를 만드는 업체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미국 반도체업체들이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미국의 노광장비 업체들도 전멸하다시피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미국 최대의 노광장비업체가 실리콘밸리그룹이었는데 EUV 장비를 생산할 만한 기술이 없었다.

당시 노광장비 분야의 세계적 강자는 일본의 캐논과 니콘이었다. 그렇지만 일본 반도체 업체에 호되게 당한 미국 정부는 기술유출을 우려해 일본업체와 손잡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텔이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 네덜란드 업체 ASML이다. 지금은 ASML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장비업체이지만 당시에는 중소업체였다. 미국의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이 당시 ASML의 주요 고객이었다. 마침 ASML도 자체적으로 EUV 장비를 개발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2000년 초반 인텔을 중심으로 한 미국 컨소시엄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위치한 ASML 본사의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ASML과 손잡다

원래 ASML은 반도체를 만들던 네덜란드 업체 필립스의 사업부였다. 1984년 필립스에서 분사한 ASML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반도체 장비를 개발했다. 일본이 주도한 반도체 시장의 패권 구도는 ASML에 유리했다.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일본 반도체업계는 장비 개발부터 부품 공급 등 모든 것을 일본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이런 자세는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기업들의 반감을 샀다. 반면 ASML은 전 세계 다양한 기업들과 거래하며 세계 최고의 기술과 부품을 아낌없이 흡수했다.

여기에 ASML은 출발부터 제품을 사줄 고객사를 확보했다. 현재 세계 최대 반도체주문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가 ASML의 설립 때부터 고객사였다. TSMC는 설립 당시 ASML의 모 기업인 필립스가 지분 투자를 했고 제조기술을 제공하면서 자연스럽게 ASML 장비를 사용하게 됐다.

인텔이 ASML과 손잡으면서 일본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캐논과 니콘은 인텔이 주도한 EUV 원천 기술에서 밀려나 장비 개발을 포기했고 그 바람에 ASML이 세계 유일의 EUV 장비업체가 됐다.

한편으로 미국 정부는 ASML과의 제휴가 또 다른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ASML은 2001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미국의 노광장비업체 실리콘밸리그룹마저 인수해 독점 위치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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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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