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쉬던 나라 [EDITOR's LETTER]

이홍표 2026. 10. 1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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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다시 시위로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13일에는 프랑스 내무부 집계로 16만 명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프랑스 국민도 아닌 유학생에게 집세까지 보태준다는 것은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프랑스 학생들의 수학과 읽기 점수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각각 21점, 31점 하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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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다시 시위로 들끓고 있습니다. 파리의 거리에는 수만 명의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학교 앞에는 바리케이드가 세워졌고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했습니다. 지난 13일에는 프랑스 내무부 집계로 16만 명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프랑스의 시위야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시위의 중심에 고등학생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교사를 더 채용하고 낡은 학교를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교사가 없어 수업이 비는 일이 잦고 대학 입학 제도에 대한 불만도 큽니다. 정부가 교사 3000명을 긴급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시위는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장면들을 보며 대학 시절 한 달 정도 머물렀던 프랑스가 떠올랐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수요일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많은 초등학교는 수요일에 수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던 시절이니, 평일 한가운데를 통째로 쉰다는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리의 노숙인들은 유난히 개를 많이 데리고 있었습니다. 개를 키우면 사료비까지 나라에서 지원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 그런 제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노숙인의 반려견까지 국가가 돌보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국민도 아닌 유학생에게 집세까지 보태준다는 것은 더 큰 충격이었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상당 부분 책임지는 나라. 적어도 제가 경험한 프랑스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나라에서 학생들이 교육에 돈을 더 쓰라고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자유 평등 박애'로 이뤄진 가장 관대한 복지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에서 왜 학교에 쓸 돈이 부족하다는 것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흥미로운 숫자가 나왔습니다. OECD에 따르면 2023년 프랑스의 GDP 대비 정부 교육지출은 4.5%로 OECD 평균인 4.0%보다 높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생 한 명에게 쓰는 연간 공교육비는 1만1565달러로 OECD 평균인 1만2893달러에 못 미쳤습니다. 전체 교육비는 OECD 평균보다 많이 쓰지만 정작 초등학교에 쓰는 돈은 평균에 미치지 못합니다. 돈의 총량뿐 아니라 배분의 문제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눈길을 끄는 숫자도 있습니다. 프랑스 교육부 예산의 약 32%에 해당하는 285억유로가 퇴직 공무원 연금을 위한 부담금으로 잡혀 있습니다. 연금 때문에 교사를 채용하지 못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과거의 약속을 유지하는 비용이 현재의 교육 재정을 압박하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적어도 교육에 쓰는 돈만큼은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을까요. 세계적인 철학자와 수학자, 과학자를 배출한 학문의 강국이지만 최근 공교육의 성적표는 그 명성에 미치지 못합니다. 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프랑스 학생들의 수학과 읽기 점수는 2012년부터 2022년까지 각각 21점, 31점 하락했습니다. 2022년 수학 점수에서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격차는 113점으로 OECD 평균인 93점보다 컸습니다.

특히 이 숫자가 마음에 걸립니다. 상당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가정환경에 따른 학력 격차가 OECD 평균보다 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환경에 관계없이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중요한 가치입니다. 물론 그 원인을 복지 지출에서만 찾을 수는 없고, 돈을 더 쓴다고 성적이 반드시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교육 투자는 규모와 함께 성과를 더 엄격하게 살펴야 합니다.

한국 역시 빠르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연금과 의료, 돌봄에 들어가는 돈은 늘어날 것이고 아이들은 줄어들 것입니다. 한정된 재정을 어느 세대에 얼마나 배분할 것인가는 더욱 어려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학생들이 줄어 비어 가는 학교를 지역의 교육과 복지가 만나는 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아이들과 노인들이 함께 책을 읽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공간 말입니다. 실제로 일본과 미국 등에서는 서로 다른 세대가 학교나 돌봄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교육은 특정 세대만을 위한 지출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한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국가가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하는가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기준일 것입니다. 오늘의 복지를 유지할 힘 역시 결국 내일의 세대에게서 나옵니다.

국가는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돌보는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남겨 주는가. 좋은 국가라면 두 질문 모두에 답을 해야 합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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