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감각, 무관심… 합리적 목소리 사라진 '한국 정치판' [영화로 읽는 세상]

김상회 정치학 박사 2026. 10. 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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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주인공 '아빈'은 영화 속 악마들을 처단하고 히피들의 '폭스바겐 봉고차'를 얻어 탄다. 차 안에선 월남전 징집 인원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존슨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이 흘러나온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무심코 히치하이킹해서 얻어 탔던 칼과 샌디의 차에서 저승 문턱까지 갔다 돌아왔으면, 보통사람 같으면 곧바로 또다시 이 흉흉한 비주얼을 지닌 히피가 모는 차를 히치하이킹해서 성큼 올라탈 엄두도 낼 수 없을 듯한데, 아빈은 무덤덤하게 '지옥행 특급' 느낌의 그 봉고차에 오르는 담대함을 보여준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1965년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어도 냉전체제 속에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었다(1973년 모병제로 전환). 아마도 1946년생일 것으로 추정되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대신 고향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던 아빈은 정확히 존슨 선언에 따라 강제징집 '0순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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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이코노무비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⑰
정치적 무관심, 극단주의 사이
연결고리 경고한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 세력의 집권 배경
히틀러 등 광적 이념가 아닌
절망한 대중의 정치 무관심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주인공 '아빈'은 영화 속 악마들을 처단하고 히피들의 '폭스바겐 봉고차'를 얻어 탄다. 차 안에선 월남전 징집 인원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존슨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강제 징집 '0순위'인 아빈은 지루한 듯 하품만 내뱉는다.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강렬하거나 복잡한 자극에 그만 '무관심/무감각'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영화는 주인공 아빈의 무료한 하품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사진|넷플릭스 제공]
온갖 극악한 악마들이 날뛰면서 살육이 난무하던 이 영화는 주인공 아빈(톰 홀랜드 분)의 무료한 하품 '한방'으로 기묘하지만 인상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악마와도 같은 프레스턴 목사(로버트 패틴슨 분)와 보데커 보안관(세바스찬 스탠 분)을 '처단'하고 도주하던 아빈은 하필이면 먹잇감을 노리고 오하이오 국도를 배회하던 연쇄살인마 부부 칼과 샌디의 차를 히치하이킹한다.

당연히 또 총격전이 벌어지고 이 희대의 연쇄살인마 부부도 아빈의 총에 정의구현당한다. 칼과 샌디의 시체를 뒤로하고 다시 국도로 나선 아빈은 또 히치하이킹에 나서 히피가 몰고 가던 '폭스바겐 봉고'를 얻어 탄다.

미국 영화에서 기관총 장착한 도요타 픽업트럭이 반란군의 상징처럼 동원된다면 폭스바겐 봉고는 대책 없는 '히피'의 상징이다. 모두 가성비로 이름 높은 차종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아빈이 얻어 타는 이 폭스바겐 봉고 운전자도 어김없이 순도 높은 히피 모습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무심코 히치하이킹해서 얻어 탔던 칼과 샌디의 차에서 저승 문턱까지 갔다 돌아왔으면, 보통사람 같으면 곧바로 또다시 이 흉흉한 비주얼을 지닌 히피가 모는 차를 히치하이킹해서 성큼 올라탈 엄두도 낼 수 없을 듯한데, 아빈은 무덤덤하게 '지옥행 특급' 느낌의 그 봉고차에 오르는 담대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것은 '담대함'이 아닌 '무관심(apathy)'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폭스바겐 봉고에 올라 아무 데나 자리 잡고 앉은 아빈은 망연히 차창 밖을 내다본다. 그때 봉고차 라디오에서 린든 존슨 대통령의 그 유명한 '1965년 7월 28일 대국민 담화문'이 흘러나온다.

'월남전'이 본격화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존슨 대통령이 미군 파병 규모를 7만5000여명에서 12만5000여명으로 대폭 늘리고 징집 인원을 월 1만7000여명에서 3만5000여명으로 두배 이상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월남전 지옥문을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역사적인 '악마'의 연설이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1965년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어도 냉전체제 속에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었다(1973년 모병제로 전환). 아마도 1946년생일 것으로 추정되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대신 고향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던 아빈은 정확히 존슨 선언에 따라 강제징집 '0순위'에 해당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존슨의 담화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던 아빈은 걱정하거나 심란해지는 기색 없이 갑자기 늘어지게 하품을 한차례 쏟아내고, 마치 존슨 대통령이 달콤한 자장가라도 불러주는 것처럼 봉고차에서 '각 잡고' 잠을 청한다.

한나 아렌트는 극단주의 세력이 집권할 수 있었던 덴 사회에 절망하고 파편화돼 정치에 무관심해진 대중이 있다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화려한 도시 속 대중의 정신적 방황을 추적했던 '존 도스 파소스(John Dos Passos)'라는 미국 작가는 「우리 앞에 놓인 전망(The Prospect Before Us·1950년)」에서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는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 강렬하거나 복잡한 자극을 받으면 '무관심/무감각(apathy)'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현대인들의 무력감과 사회를 향한 무관심의 원인을 짚어낸다.

영화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아빈의 느닷없는 하품은 19살 아빈이 감당하기엔 너무 강렬하거나 복잡한 '악마들의 자극'에 아빈이 '무관심/무감각'에 빠져버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베트남 지옥문이 정확히 자기를 향해 열렸는데, 아빈은 그것을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대한다. 아빈이 그 상황에서 해탈이라도 한듯 하품을 쏟아내고 잠에 빠져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문득 우리의 모습 같아서 씁쓸하다.

많은 학자들은 대중의 무관심이야말로 극단주의의 비옥한 토양이라는 사실을 경고한다. 이 영화가 개봉한 2020년은 2017년 홀연히 등장한 미국의 '히틀럼프(Hitlump)'와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의 광기가 모두를 놀라게 하기 시작했던 시점이다.

캄포스 감독 역시 평소에 누구보다 트럼프가 불러들인 '극단적/전체주의적' 정치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던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감독이 마지막 장면에 '아빈의 하품'을 영화의 결론처럼 배치한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만하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apathy)'과 극단주의의 연결고리를 가장 먼저 경고한 학자는 단연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년)'라 할 만하다.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1971년)」에서 전체주의나 극단주의 세력이 집권할 수 있었던 바탕은 히틀러와 같은 광적인 이념가가 아니라, '삶의 맥락을 잃고 사회에 절망하고 파편화돼 정치에 무관심해진 대중(Apathetic Masses)'이었다고 분석한다.

마찬가지로, 독일인이면서도 나치 시대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약했을 만큼 '광기의 독재'를 거부했던 독특한 이력의 정치경제학자 '알베르트 히르슈만(Albert Hirschman ·1915~2012년)'은 「이탈, 음성, 충성(Exit, Voice, Loyalty·1970년)」에서 조직이나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구성원이 취하는 행동을 '음성(Voice·목소리를 내어 비판하고 참여)'과 '이탈(Exit·포기하고 떠남)'로 나눈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이 많아지면 정치판은 극단주의자들의 리그로 변질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합리적이고 온건한 대중이 정치 시스템에 절망해 '이탈(정치적 무관심·투표 포기)'을 선택하면, 공론장에는 오직 맹목적이고 극단적으로 무엇엔가 '광적으로 충성하는(loyalty)' 집단만 남는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그레셤(Gresham)의 법칙'이 여기에서도 작동한다. 결국 이탈(무관심)하는 대중이 많아질수록 정치는 온건함을 잃고 '그들만의 리그'로 급속도로 극단화한다는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무관심이란 이처럼 위험한 사이렌이다.

아마도 감독은 영화의 제목처럼 세상에서 악마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영화의 마지막 그토록 절박한 상황 속에서 쏟아내는 아빈의 무심한 하품과도 같은 우리들의 무관심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네의 국회나 언론, 그리고 인터넷의 공론장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합리적인 '목소리(Voice)'들이 무관심 속에 자발적으로 이탈했든지, 그 목소리들이 '강퇴'당했든지, 합리적인 목소리들이 모두 '이탈(Exit)'해버린 듯한 요즘의 살벌한 공론장은 그들만의 '저스티스 리그' 아닌 '인저스티스 리그'가 돼가는 듯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더스쿠프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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