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잠재성장률 40년만에 2년 연속 상승 전망
27개국 중 내년 7위, 주요 선진국 앞서…정부 '3·4·5 경제 대도약' 기대
전문가들 "생산성 개선 효과" vs "반도체 호황에 따른 착시"…체감경기 괴리 경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상승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이 나왔다.
실제 성장률뿐 아니라 경제의 기초 체력으로 평가되는 잠재성장률도 반등하는 흐름이다. IMF 추산대로라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년 연속 높아지는 것은 1986~1987년 이후 40년 만이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투자 및 생산성 개선이 성장 여력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만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일부 산업의 호황이 전체 경제의 구조적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시지표 개선과 달리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이 경기 회복을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다.
◆ IMF 추산 잠재성장률, 올해 2.14%·내년 2.20%
18일 IMF의 10월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난해 1.94%에서 올해 2.14%로 상승하고 내년에는 2.20%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상승 폭은 0.20%포인트(p), 내년 추가 상승 폭은 0.06%p다. 2023년 2.06%였던 잠재성장률은 2024년 1.96%로 떨어졌지만, 올해 다시 2%대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됐다.
잠재성장률은 물가 상승 압력을 과도하게 높이지 않으면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잠재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율이다.
경기 부양 등에 따라 일시적으로 높아지는 실질 GDP 성장률과 달리 경제가 보유한 중장기 성장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 공급 감소 등 구조적 제약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잠재성장률이 반등한다는 것은 경제의 생산 능력과 성장 여력이 확대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수치는 IMF가 제시한 한국의 실질 GDP 전망치와 GDP갭률을 활용해 역산한 결과다.
IMF는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을 올해 3.33%, 내년 2.83%로 전망했다. 실제 GDP가 잠재 GDP를 웃돌거나 밑도는 정도를 나타내는 GDP갭률은 올해 0.548%, 내년 1.168%로 각각 추산했다.
IMF의 과거 자료에도 같은 계산 방식을 적용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86년 9.77%에서 1987년 9.91%로 상승했다. 올해와 내년처럼 2년 연속 오르는 흐름이 나타난 것은 당시 이후 처음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이후 기저효과 등으로 잠재성장률이 한 해 반등한 사례는 있었지만, 상승세가 다음 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장기적으로 하락해 왔다. 2010년 4.05%에서 이듬해 3.67%로 낮아졌고, 2018년에는 2.97%로 2%대에 진입했다. 2020년에는 1.28%까지 내려갔다.
올해 IMF 추산치인 2.14%는 2021년 2.23%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다만 기관별 전망에는 차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지난해 1.85%, 올해 1.66%, 내년 1.52%로 추산했다. IMF가 4개월 뒤 내놓은 전망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말 발표한 '2027년 NABO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지난해 2.14%에서 올해 2.22%, 내년 2.28%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질 GDP 성장률 전망 상향과 AI·반도체 투자 확대, AI 확산에 따른 생산성 개선 가능성 등을 반영한 결과다.
◆ 27개국 중 7위…영국·프랑스·일본·독일 앞서
IMF 자료를 바탕으로 잠재성장률을 산출할 수 있는 27개국을 비교하면 한국은 올해와 내년 모두 7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위에서 순위가 상승하는 셈이다.
올해 한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높은 국가는 몰타(4.10%), 키프로스(3.39%), 덴마크(2.68%), 슬로베니아(2.53%), 스페인(2.50%), 미국(2.33%) 등 6개국이다.
내년에는 몰타(4.04%), 아일랜드(3.88%), 키프로스(3.29%), 슬로베니아(2.53%), 덴마크(2.34%), 미국(2.29%)에 이어 한국이 7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주요 7개국(G7) 중에서는 미국만 한국을 웃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올해와 내년 모두 영국(1.29%, 1.26%), 프랑스(0.85%, 0.85%), 일본(0.82%, 0.84%), 독일(0.64%, 0.70%)보다 높다.
실제 GDP와 잠재 GDP의 차이를 보여주는 GDP갭률에서도 한국의 순위가 상승한다. 지난해 -0.610%로 27개국 중 20위였던 한국은 올해 0.548%로 6위에 오른 뒤 내년에는 1.168%로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내년 2위 그리스(0.750%), 3위 덴마크(0.737%)와의 격차도 상당하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조합에 따라 잠재성장률이 높아질 가능성을 언급해 왔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확장 재정과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에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이 높아지면 엇박자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잠재성장률 3%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수출 세계 4강,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함께 달성해 '3·4·5 경제 대도약'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가운데 잠재성장률까지 반등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가 내건 경제 대도약 목표에도 관심이 쏠린다.
IMF는 올해 한국의 1인당 GDP가 4만3512달러로 4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에는 4만9277달러, 2028년에는 5만2100달러로 늘어나 2년 만에 5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2031년에는 5만9919달러까지 증가해 6만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올해 수출이 사상 처음 1조달러를 넘어설 가능성과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을 언급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를 통해 잠재성장률 반등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 "AI 생산성 개선" 기대…반도체 호황의 착시 경계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을 구성하는 노동·자본·총요소생산성(TFP) 가운데 자본 투입과 생산성 개선이 반등의 주요 배경일 것으로 분석했다.
고령화로 노동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려운 만큼 반도체 설비투자와 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성장 여력을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AI가 불러온 '역류' 현상"이라며 "생산의 3요소가 노동·토지·자본이었는데 이제 AI가 더해진 4요소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본 투입 증가가 뚜렷하고, 총요소생산성도 AI가 투입 대비 산출을 늘려놓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노동 측면은 단기간에 크게 달라지기 어려운 만큼 잠재성장률 반등은 설비투자와 총요소생산성 쪽에서설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잠재성장률 상승이 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을 의미하는지는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황이 전체 경제지표를 끌어올리더라도 그 효과가 다른 산업과 가계로 확산하지 않으면 실제 경기와 통계 사이의 괴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취업자 2천900만명 중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직원은 20만명도 안 되고, 공급업체까지 100만명이라 쳐도 나머지 2천800만명은 참여하지 않는 구조"라며 "완전히 AI 디바이드(격차)"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도체·AI를 포함한 총량 지표와 제외한 지표를 함께 발표해야 경제를 고르게 진단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반도체와 AI 산업의 성장 효과를 전체 경제 상황과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 실적과 국내 경제의 체감 상황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수출로 돈을 버는 것이지 국내 경제가 좋은 건 아닌 착시 현상"이라며 "서비스업·중소기업·자영업자, 부채를 못 갚아 연체율이 오르는 사회적 약자 계층에 더 많이 투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