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승’ 안선주와 ‘11승’ 이정민의 이별공식[양준호의 골프투어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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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와 전화 인터뷰를 한 것은 이정민의 은퇴 기자간담 자리를 마친 직후였다. 안선주가 소셜미디어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은퇴를 알린 것이 14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이정민이 은퇴 기념행사를 가진 게 15일이다.
안선주에게 "방금 이정민 선수가 은퇴 기념행사를 가졌다"고 알리니 "정말요?"라며 1·2초 간 말을 잃었다.
2008년 '천재소녀' 미셸 위도 참가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수석 합격하고도 안선주는 미국 투어 생활과 맞지 않을 것 같단 판단에 어렵게 미국 진출 기회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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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주변인도 몰랐던 日·韓 투어 은퇴
“아쉬움 크다” “시원하다” 다른 반응, 같은 마음

안선주와 전화 인터뷰를 한 것은 이정민의 은퇴 기자간담 자리를 마친 직후였다. 공교롭게 둘은 은퇴 시기가 거의 겹쳤다. 안선주가 소셜미디어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은퇴를 알린 것이 14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이정민이 은퇴 기념행사를 가진 게 15일이다.
골프엔 이별공식이란 게 따로 없는 것 같다. 화려한 은퇴식을 여는 선수가 있지만 조촐한 자리를 통해 인사하는 선수도 있다. 은퇴를 기념하는 자리조차 없이 조용히 퇴장하는 선수도 많다.
안선주와 이정민의 이별공식은 비슷했다. 안선주의 일본 무대 퇴장은 함께 활약했던 신지애도, 이보미도 몰랐다고 한다. 이정민의 은퇴를 미리 알았던 동료도 불과 네댓 명쯤이다.
안선주에게 “방금 이정민 선수가 은퇴 기념행사를 가졌다”고 알리니 “정말요?”라며 1·2초 간 말을 잃었다. 그러고는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 말이 지금 제 입장에서 정민이한테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고 했다. “잘하는 선수,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하나둘 떠나네요. 순리인 걸 알면서도 쓸쓸한 마음이 있습니다.”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짧은 말에 오히려 더 깊은 ‘리스펙트’가 담긴 듯했다. 이정민은 2010년 KLPGA 투어 데뷔 해에 올린 첫승을 시작으로 통산 11승을 쌓았다. 2010년은 안선주가 JLPGA 투어에 진출한 해다.
2008년 ‘천재소녀’ 미셸 위도 참가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수석 합격하고도 안선주는 미국 투어 생활과 맞지 않을 것 같단 판단에 어렵게 미국 진출 기회를 포기했다. 그 뒤 새 무대로 선택한 게 일본이다. 첫해 4승으로 각종 타이틀을 독식한 안선주는 2016년까지 매년 2승 이상씩 거뒀고 2017년 1승으로 주춤하나 했지만 이듬해 5승을 몰아쳤다. 그렇게 일본에서만 무려 28승을 쌓았다.
2019년 목 디스크 수술 등 그간 크고 작은 부상도 많았지만 2021년 아들·딸 쌍둥이를 낳고서 영구 시드로 출전한 KLPGA 투어 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 경쟁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던 안선주다.
이정민도 굴곡이 작지 않았다. 우승과 우승 사이 시간이 길 때가 적지 않았다. 10여 년 전인 2016년 3월 중국 둥관 미션힐스GC에서 이정민의 통산 8승을 지켜봤었다.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을 4타 차 역전승으로 장식한 그다. 장타와 핀 포인트 아이언 샷으로 유명했던 이정민은 상대적으로 퍼팅에 약했는데 볼 뒤에서 손가락을 펴 그린을 읽는 ‘에임포인트 익스프레스’를 배워와 몰라보게 좋아진 퍼트 감을 뽐냈다. 그해 박성현과 양강 구도를 이루거나 이정민이 독주할 수도 있다고 봤다.
하지만 박성현이 한 해 7승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는 사이 이정민은 3월의 그 1승에 머물렀고 이듬해는 상금 랭킹 81위까지 떨어지는 시련을 겪었다. 2021년 10월 대회를 통해 5년 7개월, 날짜로는 무려 2044일 만에 통산 9승째를 해낸 이정민은 이렇게 말했다. “천재 골퍼가 아닌 만큼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매일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갈 겁니다.” 지독히도 안 들어가는 퍼트에 경기 때 눈을 감고 스트로크해본 적도 있을 만큼 악전고투의 시간이었다.
은퇴 기자간담 자리에서 이정민은 “꾸준하게 우승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굉장히 힘든 시간을 겪다가 겨우 우승하고 또 어려움을 당하곤 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골프가 미궁에 빠져 답이 없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었다”고 돌아봤다.
후배들한테는 “쉽지 않겠지만 너무 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페어웨이에 들어가거나 러프에 잠기거나, 홀에 들어가거나 빗나가거나 결과가 바로 확인되는 게 골프지만 공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말길 바라요. 즐길 순 없죠. 하지만 ‘공이 가고 싶은 대로 가겠지’ 하는 마음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가면 어딜 가겠어요, 결국 골프장 안에 있겠죠.”

이정민은 2024년 생애 첫 메이저 우승으로 통산 11승째를 올린 뒤로 손목 부상 탓에 다시 오랜 기간 주춤했다. 부상 후유증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아프지 않았다면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서운함이 있지 않으냐’는 물음에 이정민은 “아니다. 시원하다”고 했다. “아웃오브바운즈(OB)가 난 공도 그 순간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다”고 했다. 정규 투어 386개 대회 등 KLPGA 투어에서 딱 400개 대회를 채운 그다.
은퇴를 선선히 받아들이는 이정민의 모습이 강하게 남았기에,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안선주의 목소리는 더 절절하게 들렸다.
JLPGA 투어 생활을 정리하면서 느끼는 뿌듯함과 아쉬움을 물었더니 안선주는 아쉬움을 먼저 이야기했다. “일본에서도 영구 시드 획득(30승)을 목표로 했지만 아이를 낳는 과정이 있었고 경기력도 떨어지면서 끝내 이루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아쉬움이 큽니다.”
28승이나 올린 대선수인데도 그간의 업적에 대한 자랑스러움보다는 “은퇴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선수라는 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스폰서 배려로 2018년 마지막 우승이 나온 대회에서 마무리를 하게 돼 뜻 깊다”는 안선주는 “어깨가 조금 안 좋은 상태인데 은퇴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지 사실 걱정이 크다. 주변 분들 응원에 용기를 내게 됐다”고 했다.
22일 일본 효고현에서 치를 노부타 그룹 대회가 JLPGA 투어 256번째 출전이자 마지막 대회다. 안선주는 KLPGA 투어에선 202개 대회에서 정규 투어 7승, 2부인 드림 투어 3승을 쌓았다.
아들·딸 쌍둥이는 내후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앞으로 몇 년이 엄마와 아이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 있다. 안선주는 “자식을 키우면서 이 시간은 다시 안 온다고 하지 않나. 제일 중요한 시기에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인사로 ‘엄마, 잘 갔다 와’가 아니라 ‘엄마 잘 가’라고 하더라고요. 이방인이 된 건가 싶어서 마음 한 구석이 아팠어요.”
KLPGA 투어는 영구 시드가 있어서 여전한 현역이지만 앞으로는 ‘엄마 골퍼’가 아니라 ‘엄마’로서 역할에 더 충실할 계획이다. 대회 출전 수를 1년에 한두 개 수준으로 확 줄일 예정이다. 다만 만 40세 이상이 출전하는 KLPGA 시니어 투어엔 관심이 있다. 시니어 투어 대회는 보통 한 달에 한두 개이고 안선주는 현재 만 39세다.
“예전부터 ‘안선주는 경기 때 너무 안 웃는다’ 얘길 많이 들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요즘은 못 쳐도 웃으려고 노력한다”는 안선주의 웃는 모습은 시니어 투어에서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엄마로서 보여주는 첫 우승도 새 무대에서 기대할 만하다.
“프로로 21년을 뛰었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안선주라는 선수를 늘 뒤에서 응원해주시고 성적이 안 나도 ‘괜찮다’ ‘기다린다’ 얘기해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갈 대회에선 그런 고마움을 더 잘 기억하면서 경기하겠습니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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