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관광 열풍의 뒤편, 진짜 ‘부산병’ [편집국장의 편지]

이오성 편집국장 2026. 10. 1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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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활동하던 PC통신 동호회에는 부산 여성이 많았다.

부산 청년 여성의 마음을. 왜 부산에서 태어난 청년 여성들이 부산을 떠나려 하는가. 그때 부산에 살던 동호회 친구들은 지금 모두 서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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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왕년에 활동하던 PC통신 동호회에는 부산 여성이 많았다. 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누나가 동호회 회장이고, 대학생인 동갑내기 ‘여사친’이 부회장이었다. 어느 해 정모(정기 모임)가 부산 해운대에서 열렸다. 나로서는 첫 번째 부산 방문이었는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운대 말고도 남포동이며 광안리며 서면 같은, 서울 뺨을 여러 번 칠 것 같은 번화가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회장 누나에게 “이 많은 사람들이 뭘 해서 먹고살아요?”라고 물었더니 “우린 마, 다 공장 다닌다. 우리 동네에 태화고무장갑 공장 안 있나?” 하며 우스개로 답했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 후반이었다. 부산 인구가 최고로 많을 때였다. 그때 나의 감각에 부산은 정말이지 풍요로운 도시였다. 어딜 가나 활기차 보였고, 눈 돌아가는 먹을거리가 가득했다. 4층 건물 전체가 하나의 호프집이었던 부산대 앞 풍경을 잊을 수 없다(심지어 테이블마다 무료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도 그즈음 열렸다. 그 시절 부산은 ‘젊음과 바다’였다.

9월17일 오후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초량 이바구길에서 한 노인이 걷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그때는 몰랐다. 비수도권의 쇠퇴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부산 청년 여성의 마음을. 왜 부산에서 태어난 청년 여성들이 부산을 떠나려 하는가. 그때 부산에 살던 동호회 친구들은 지금 모두 서울에 있다. IT 업체 프로그래머로, 출판 편집자로, 사회학 연구자로 서울에서 일한다. 모두 여성이다.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를 쓴 장민지 경남대 교수는 3년 전 〈시사IN〉과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 콘텐츠 산업이 부상하면서 20대 여성이 취업을 원하는 일자리를 비수도권 지역에서 찾기 어려워졌다. 미디어나 디자인, IT 관련 업종 취업 자리는 서울 말고 찾아보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K관광 열풍의 뒤편에 진짜 ‘부산병’은 따로 있다. 부산 인구가 최정점을 찍던 30년 전, 아니 노무현 정부가 처음으로 국가균형발전을 핵심 국정 과제로 삼은 그때라도, 우리 사회가 지역 청년의 일자리 문제를 심각하게 다뤘어야 했다. 왜 유독 부산만 특별히 취급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서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모든 도시가 서울처럼 변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다른 모든 지역이 특색 없이 망하는 걸 보게 될 거다. 부산을 살려야 다른 지역도 살 수 있다”라고 말한다. 부연하자면 “부산이라도 살려야”가 정확할 것이다. 부산이 아프면 나라 전체가 아프다.

 

이오성 편집국장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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