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비구역 해제 비화 공개]④“지연할 이유만 99가지”… 구청장 ‘몽니’는 서울시도 손 못 쓴다

임성엽 2026. 10. 1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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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임성엽 기자]서울시가 20년 주택공급 정책을 총망라한 백서를 펴낸 이면에는 일부 자치구청장들의 ‘정비사업 발목잡기’와 인허가권 남용이라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현행 지방자치 제도 아래 자치구청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인허가를 지연해도 소송 외엔 강제할 수단이 없어 핵심 공급 파이프라인이 또다시 멈춰 설 위기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지난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 주택공급정책 20년의 평가와 성찰’ 백서 브리핑에선 최근 정비사업 지연의 뇌관으로 부상한 일부 자치구청장의 월권과 인허가 지연 실태가 지적됐다.

파행 사례로 지목된 곳은 종로구 창신9·10구역이다. 이 지역은 서울시 본청이 직접 공공기획(신속통합기획) 총괄기획가(MP)를 투입해 주민·전문가와 수많은 협의를 거쳐 어렵게 정비계획을 확정 지은 곳이다.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신탁 방식 추진을 위한 법적 요건인 ‘사업시행자 지정’ 주민 동의율 75%를 4개월 전에 이미 달성해 인가를 신청했으나, 관할 종로구청은 서울시의 신통기획 자문 결과조차 수긍하지 않은 채 법률상 근거도 없는 자체 ‘신속자문단’ 검토를 이유로 인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행정법상 민원 사무는 특별한 하자가 없고 요건을 갖췄다면 법정 기한 내 처리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정식 거부 처분을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종로구를 비롯한 일부 자치구들이 ‘지원’을 명목으로 법에도 없는 자문위원회를 신설해 사실상 새로운 ‘인허가 관문’으로 악용하면서 사업을 장기 표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성보 서울시 행정2부시장은 “창신9·10구역은 구릉지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주민 피드백을 받아 어렵게 결정한 구역인데, 구청장이 바뀌고 4개월째 사업시행자 지정 인가가 틀어지고 있다”며 “시에서 공문을 두 번이나 보내 행정 처리 촉구를 요청했지만 요지부동”이라고 토로했다.

김 부시장은 “사업시행자 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핑계로 전임 시장처럼 사업을 지연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업을 진행할 동력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지만 지연할 수 있는 권한은 99가지다. 방해하기가 훨씬 쉽고, 그 권한을 지금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행정 지연을 근거로 서울시는 최근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 거론되는 ‘자치구 정비사업 권한 이양(500가구 미만 또는 3만㎡ 미만)’ 요구에 대해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자치구가 쥔 기존 인허가권만으로도 공급망이 마비되는 상황에서, 도시계획의 핵심 권한까지 넘겨줄 경우 행정 혼선과 사업 지연이 걷잡을 수 없이 심화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 부시장은 “현장 실무진들은 다 안다. 자치구는 인력도 없고 전문가도 부족하며 운영 체계나 제도도 갖춰지지 않았다”며 “도시계획법상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규모, 용도 같은 권한을 자치구청장에게 다 넘긴다는 것은 광역적 도시계획 체계를 무력화하겠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를 구청 권한으로 넘기려면 관련 법을 모두 다 고쳐야 하는데 차라리 무소불위의 특별법을 만드는 게 나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자치구청장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인허가를 쥐고 버텨도 상급 기관인 서울시가 이를 통제할 법적 수단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자치구의 인허가는 지자체 고유 사무로 분류돼 있어 서울시가 직권으로 처리하거나 강제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다.

명노준 서울시 주택실장은 “자치구에 직접 있어 보니 구청장의 의향에 따라 정책 방향이 좌우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하지만 도시정비법상 감독권 행사를 넘어서 시가 구청에 직접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어, 현재로서는 공문을 보내고 설득하는 것 외에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결국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인허가권자가 법정 처리 기한 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인허가 여부를 통보하지 않을 경우 인허가가 난 것으로 처리하는 ‘인가간주제’(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법안이 제출돼 있다.

명 실장은 “(인가간주제 도입은)당연히 도움이 된다. 기한이 지나면 당연 처리가 되기 때문”이라며 조속한 법안 통과를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임성엽 기자 star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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