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정비구역 해제 비화 공개]②박원순표 도시재생… 1조 혈세 붓고 1600억은 이미 ‘공중분해’
골목길 페인트칠·벽화 그리다 끝… 도로ㆍ인프라 방치에 소방차조차 못 들어가

[대한경제=임성엽 기자]‘전면 철거 없는 따뜻한 재생’을 내세우며 1조원 넘는 혈세를 쏟아 부었던 ‘박원순표 도시재생사업’이 수천억원의 매몰비용만 남긴 채 사실상 정책적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근본적인 주거환경 개선과 필수 인프라 확충이라는 ‘수술’을 외면한 채 벽화 그리기와 골목길 포장 등 ‘화장’에만 치중하다 막대한 재정을 낭비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생사업을 벌이던 구역들이 속속 전면 철거 재개발로 회귀하면서, 이미 공중분해된 손실금만 1600억원을 넘어섰고 앞으로 손실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16일 ‘서울 주택공급정책 20년의 평가와 성찰’ 백서에 따르면, 박원순 시정 당시 이른바 ‘도시재생 마중물 사업’ 등에 투입된 재정은 총 1조960억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시는 과거 도시재생사업이 관련 법 제정 취지와 달리 ‘보존’ 일변도로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도시재생은 기존 건축물의 보전뿐 아니라 기반시설 확충과 정비(철거ㆍ재개발)를 아우르는 개념인데, 지난 10년간 시정은 ‘정비’ 카드를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물리적 보존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도시재생 1호 사업지였던 종로구 창신ㆍ숭인동의 경우 가파른 구릉지에 단차만 50~60m에 달해 계단 이용이 불가피한 노인 거주 비율이 높았지만, 정작 보행 약자를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free·무장애)’ 환경은 전혀 구축되지 못했다. 소방차가 진입할 도로조차 확보되지 않아 골목길 화재 사고 시 지금도 안전에 위협을 받고 있다.
공원과 도로, 생활 SOC 확충이라는 근본적 처방 없이 수백억원을 들여 앵커시설(주민공동시설)을 짓고 골목 벽화만 칠하다 주거 슬럼화를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이렇게 쏟아부은 1조여원의 혈세가 고스란히 ‘매몰비용’으로 날아갈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과거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가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신속통합기획 등을 통해 정비사업으로 재추진되는 곳만 현재 177곳에 이른다.
재개발이 본궤도에 올라 전면 철거 방식의 공사가 시작되면, 그동안 도시재생 명목으로 닦아놓은 골목길 포장과 가설 건축물 등은 매몰비용으로 처리된다.
서울시가 이들 구역을 분석한 결과, 이미 도시재생 마중물 사업 등으로 투입됐다가 회수 불가능하게 허공으로 사라진 확정 비용만 1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명노준 서울시 주택실장은 “안전하고 쾌적해야 할 주거환경의 본질은 외면한 채 1600억원이 넘는 비용을 매몰시킨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아직 방향을 확정 짓지 못한 나머지 도시재생사업 구역들은 추가 손실의 ‘뇌관’이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던 389곳 중 정상화 궤도에 오른 177곳을 제외한 212곳 역시 극심한 노후화와 인프라 부족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주택공급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도 이들 212개 구역의 정비구역 재지정 및 개발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들 지역까지 재개발을 추진할 경우, 매몰비용 규모는 2000억~3000억원대를 훌쩍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성엽 기자 star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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